출처-[경향신문 2007-03-15 09:57]
‘…피었습니다.’
동사만 적어놓고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운다. 매화, 라고 쓰려니 보름 빨리 핀 산수유가 걸리고, 산수유, 라고 쓰려니 한달 빨리 피어난 선운사 동백이 밟힌다.
사람의 세상처럼 꽃의 세상에도 질서가 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 동백이 먼저 피고, 섬진강변의 매화가 피고, 지리산 자락 구례의 산수유가 핀다. 이어 하동 들녘의 벚꽃이 피고, 그 꽃이 숨막히게 흐드러질 때 목련이 꽃등을 든다. 산과 들에 진달래가 돋고 그제서야 배꽃, 복사꽃, 자운영, 할미꽃, 얼레지, 철쭉, 그리고 이름 아는 모든 봄꽃이 피어난다. 꽃불이 매화에서 산수유, 산수유에서 벚꽃으로 옮아붙는 데 일주일, 열흘씩 걸린다.
꽃의 법칙이 올 봄만은 비켜간 모양이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 계절이 헷갈렸는지 꽃들은 피어야 할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한번에 화르르, 피어버렸다. 전남 광양 매화마을 매화는 지난해보다 열흘 빨라 지난 10일 만개했다. 그것도 빠르다고 했는데, 구례 산수유는 보름 이상 빨라 매화보다 먼저 만개해버렸다. 전남 순천 금둔사 선방 옆 동백이 채 다 떨어지지도 못했는데, 매화 꽃잎이 먼저 흩날리고 있었다.
꽃이 늦어 한식께나 절정에 이를 것이라던 경북 봉화 띠띠미마을의 산수유도 20여일이나 빠르다. 마을에서 걸려온 전화는 다급한 목소리로 “이달 초부터 폈으니 15일 지나면 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꽃소식을 알렸다. 동백 북방한계선에 있어 시인 서정주가 ‘아직 일러 피지 안했’다던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도 한달이나 먼저 피어버렸다.
이달 초엔 난데없는 ‘눈꽃’까지 내렸다. 먼저 나온 매화와 산수유는 ‘설중매’ ‘설중산수유’가 돼야 했다. 따뜻해서 활짝 피었다 추워서 움츠리기를 거듭했으니, 예년만큼 꽃 때깔이 곱진 않겠다. 그래도 올 봄은 시작부터 꽃대궐이다. 불안할 만큼 갑자기, 한꺼번에 꽃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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