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조릿대는 못 찾고 봄꽃들만 만나다

피나얀 2007. 3. 20. 18:56

 

출처-[오마이뉴스 2007-03-20 09:42]

 

 

▲ 상큼한 생강 냄새를 풍기는 생강나무꽃

 

ⓒ2007 유진택

 

원래는 용화산으로 부르다가 미륵사를 창건한 후에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미륵산. 산봉우리 형상이 사자의 형상을 닮아 사자봉이라고도 부르는 미륵산(430m). 우연한 길에 전북 익산의 미륵산을 타게 된 것은 순전히 조릿대 때문이었다. 야생화 모임인 '들뫼풀'에서 계획한 3월의 답사는 야생화가 아닌 특이하게도 조릿대였다.

암, 당뇨병, 고혈압, 위궤양 등 난치병에 특효라는 조릿대. 잎을 달여 마시면 불면증, 신경쇠약에도 효과가 좋다는 조릿대. 그 효능을 체험하기 위해 조릿대를 찾아 나서게 된 길이었다. 대나무의 일종인 조릿대라면 대전 근방에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대전의 경계를 넘어 익산까지 오게 된 것은 같은 회원인 청죽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 산골짝 개울물이 만들어낸 바위의 이끼
ⓒ2007 유진택
그 분의 시골집이 마침 익산과 가까워 덤으로 미륵사지를 구경하는 행운도 얻게 되었고 멀리 갈 필요 없이 미륵사지를 떠받치고 있는 미륵산으로 목적지를 정하게 된 것이다.

노란꽃물이 화르륵 타오르는 미륵사지의 산수유를 옆 눈길로 스치며 도착한 미륵산의 주차장. 주말(17일)이라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미륵산 오르는 길은 몇 개의 코스가 있지만 주차장 약수터에서 정상으로 연결된 길을 택했다.

생각보단 산길이 험했다. 입구의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실 때까지는 온 몸이 시원하고 몸이 가뿐해서 좋았지만 본격전인 산행에 접어들자 사정이 달라졌다. 길은 온통 암반 투성이었다.

날카롭게 뒹구는 암반을 밟으며 오르는 길은 스릴마저 느껴졌다. 경사조차 급해 양 옆에 설치해 놓은 철제 난간을 잡지 않고 산길을 올랐다간 다치기 십상이었다.

꾸역꾸역 철제난간을 잡고 산길을 올라도 조릿대는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산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조릿대였지만 웬일인지 흔적조차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을 바로 이 때에 쓰는가 보다. 그 흔한 조릿대 하나 찾을 수 없으니 오늘따라 그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 대신 드문드문 노랗게 꽃물을 들인 생강나무 꽃이 눈빛을 환하게 달궈 주었다.

노란 빛깔이 너무 연하고 고와 산길을 오르다 말고 철제난간을 넘어 생강나무 곁으로 갔다. 다복히 핀 꽃냄새를 맡았더니 '훅' 하고 알싸한 생강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강나무 꽃은 빛깔을 보면 산수유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한다. 주로 산 아래 마을에 피는 산수유는 꽃잎이 4개지만 주로 산에 피는 생강나무는 꽃잎이 6개다.

▲ 암반위에서 내려다보면 익산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2007 유진택

 
▲ 생강나무꽃에 앉은 벌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2007 유진택
철제난간을 잡고 '헉헉' 대며 올라오니 산길 옆으로 툭 튀어 나온 거대한 암반이 보였다. 그 암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희뿌연한 스모그에 쌓인 익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미륵사지도 보였다. 놀랄 정도로 광활하던 미륵사지 절터가 꼭 학교 운동장만큼 작게 보였다.

암반 옆 비탈에 쓰러질 듯 노란 꽃을 피운 생강나무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내려서는 길, 미륵산 정상 아래 주상절리처럼 솟아오른 바위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이름이 미륵산이라 그런지 신비롭게 보였다. 장차 강림한다는 미륵이 저 바위 위로 내려와 이 세상에 불국토를 건설할 것 같았다.

▲ 미륵산 중턱의 주상절리처럼 생긴 바위
ⓒ2007 유진택

하산하는 길은 내내 본격적인 야생화 탐사로 이어졌다. 조릿대를 찾지 못하고 헤맨 아까운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산길을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꽃은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신기한 꽃나무 하나를 발견했는데 일행 중에 이름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로 옥신각신만 했다.

 
▲ 무슨 꽃일까요
ⓒ2007 유진택
"국수나무꽃인 거 같은데…."
"아닌데요, 국수나무꽃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요."

나뭇가지의 모양을 훑어 보기도 하고 희고 고운 꽃냄새를 맡아보기도 했지만 끝내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다. 나도 이에 질세라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이파리를 따 잘근잘근 씹었더니 쓰디쓴 맛이 스며 나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건 인동초,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인권대통령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아주 좋아했던 풀이었지. 저건, 찔레순, 어릴 적 껍질 벗겨 배고플 때 신물나게 많이도 먹었지. 아, 저건 또 뭔가. 저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다양한 빛깔로 곱고 화사한 꽃을 피우리라.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왔지만 일행들은 또 조릿대 타령이다. 묵은 밭가에 혹시 조릿대가 있을까 싶어 어슬렁거리다가 오른쪽 소림사 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보라색 꽃잎에 연한 줄기가 실핏줄처럼 쭉쭉 그어진 앙증맞은 꽃이 보였다. 큰개불알꽃이다.

개불알 중에서도 큰개불알이라니, 이름을 부를 때마다 민망했지만 꽃은 아주 작고 귀여웠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꽃들은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혀야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은은한 빛깔을 물들이고 있는 꽃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면 내 마음도 꽃처럼 순수하고 착해짐을 느낄 때가 있다.

소림사로 향하는 길가는 완전히 큰개불알꽃 군락지다. 보라색 꽃들이 길가를 덮고 있어 하늘에서 금방 떨어진 별들이 차갑게 식어 길가에 흩어져 있는 듯하다. 그 옆에 광대나물도 지천이다. 연분홍 고깔처럼 생긴 꽃봉오리를 받치고 있는 꽃받침이 어릿광대의 턱받이를 닮아 이름이 붙여졌다는 광대나물. 여린 봄바람에 흔들거리는 것이 어릿광대들이 모여 북과 장구를 치며 신명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다.

▲ 큰개불알꽃
ⓒ2007 유진택

 
▲ 광대나물
ⓒ2007 유진택

 
▲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엔 절제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2007 유진택
거름냄새가 물씬 풍기는 밭둑길을 타고 근방을 훑었지만 조릿대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모양이다. 미륵산을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와 눈을 크게 뜨고 봐도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는 조릿대. 그 대신 4월의 들뫼풀 모임 때는 다래수액을 맛보기로 했다.

고로쇠처럼 줄기에서 수액이 흘러나온다는 다래, 항암작용이 뛰어나고 부종이나 신장병 환자들한테 효력이 있다는 다래. 이제 3월 중순 여기저기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산자락의 꽃들이 4월의 산을 온통 꽃물로 뒤덮이게 할 것만 같아 가슴이 몹시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