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3-21 11:03]
도시도 사람처럼 성격이 있는 듯하다. 어느 곳은 순해서 이방인을 쉽게 받아들이는 데 비해, 어떤 곳은 문을 단단히 잠그고 좀체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쪽은 포근한 어머니의 품 같아서 여행하기가 수월하지만, 반대쪽은 빈틈없이 정비된 철옹성 같아서 머무르는 것조차 껄끄럽다. 물론 이러한 감정은 여행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넓은 범주에서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목포가 어느 쪽이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머뭇거리면서도 일단은 후자를 고를 것이다. 상찬을 늘어놓고 싶지만, 아무래도 솔직한 편이 낫겠다. 목포의 첫인상은 거친 남도 사투리처럼 날카롭고 투박했다. 친숙하게 다가와서 이내 마음을 풀어헤치는 고장이 아니었다.
관광객이든 누구든 먼저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목포가 받아온 상처와 회한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흔히 '남도' 하면 떠오르는 풍요로움과 따뜻함을 이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슬렁슬렁 다녀본 첫날은 차가워서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 유달산, 목포 여행의 시작
흔히 목포에서 볼만한 곳을 아는지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달산이라고 답한다. 그네들은 유달산에 올랐다가 맛있는 음식 한 끼 먹으면 목포 여행이 끝나는 것이라고 무심코 단정해버린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목포는 '볼 게 없다'고 말할 것이다. 오해는 오해를 낳고, 실망은 실망을 낳는다.
아마 유달산만큼 최고봉의 높이가 낮으면서도 이름이 알려진 산은 없을 듯싶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절벽이 첩첩하여 '호남의 개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는 유달산의 높이는 고작 228m에 불과하다.
남쪽 지방이 대체로 평평하다고는 하지만, 목포를 상징하는 명산인데도 지나치게 낮은 듯하다. 그래도 바다와 바로 붙어 있어서 조금 솟아 보이기는 한다. 유달산의 정문 격에 해당되는 노적봉에서 약간만 걸어 올라가면 서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유달산은 인간에게 위압적인 산이 아니다. 어찌 보면 동네 뒷산처럼 아늑하고 부담이 없다. 목포 사람들은 산책도 하고 나들이도 즐기려고 겸사겸사 유달산을 찾는다.
능선을 따라 설치된 도보 코스를 걷거나, 일등바위에 올라 시내를 굽어본다. 등산을 위해서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가벼운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슬슬 오르면 족하다. 유달산을 대하면 딱딱하고 굳어 있던 목포의 인상이 시나브로 풀어진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낮도 좋겠지만, 야간 산행을 결정했다. 유달산에서 보는 목포의 야경이 예쁘고, 밤에도 별로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숨이 헐떡거릴 때쯤 유선각이 등장했다. 목포 시가지를 조망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다. 앞으로는 구시가의 낮은 가옥들이 옹기종기 밀집해 있었고 항구 주변에서는 작은 점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배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뒤로는 목포해양대학교와 고하도가 눈에 띄었다. 목포의 야경은 평평한 검은색 종이 위에 반짝거리는 색색의 돌들을 무질서하게 뿌려놓은 것처럼 화려했다.
목포 시내를 오른편에 두고 정상인 일등바위로 향했다. 낮은 산이라고 하지만, 산봉우리로 가는 길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명이 다하면 심판을 받는 장소였다는 일등바위에 올라서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비록 땀은 나지 않았지만, 운동으로 따스해진 몸이 금세 식었다.
◆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지는 곳
일제 강점기에 부흥했던 목포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제의 폭정이 극에 달했을 무렵 목포는 가장 번영했으나, 역설적으로 주권을 회복한 후에는 줄곧 쇠퇴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는 광주보다 커서 전라도에서 으뜸가는 도시였지만 새옹지마의 인간사 같이 급속히 성장했다가 빠르게 퇴보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 것처럼 지긋한 목포 시민들에게는 당시의 추억과 자긍심이 여전히 살아 있다. 찬연했던 과거와 초라한 현실은 그들의 뇌리 속에서만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근대사와 현대사에서 굴곡을 많이 겪었기 때문일까, 목포에서 살고 있는 문인들은 자신의 모향을 애잔한 심정으로 노래했다.
문병란 시인은 '목포'라는 시에서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버리는 곳'이라고 읊은 뒤 '잘못 살아온 반생이 생각나고 헤어진 사랑이 생각나고 배신과 실패가 울고 싶게 만드는 곳'이라고 했다.
인생에서의 모든 우여곡절이 떠올라 자살을 결심해도 실행하지 못하고, 나약하게 술만 마시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지난날에 대해 집착하는 듯하지만, 이러한 감회도 목포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목포라는 도시가 타지에서 들어온 여행객에게 개방적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포도 여느 도시들처럼 기차역 주변으로 번화가가 형성돼 있었다. 지금은 동쪽에 생긴 하당 신도시로 상권과 사람들이 몰려가서, 예전의 도심은 행인의 왕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옛 정취를 향유하려면 중앙동, 대의동 같은 구시가로 가야 한다. 가끔 일본식 가옥이 보이고, 한참 동안 방치해뒀을 법한 녹슨 간판이나 허름한 지붕이 정겹게 느껴진다. 무미건조한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대도시의 거리에 익숙한 이에게는 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목포에 왔다면 당연히 바다에 들러야 한다. 이곳에는 그림엽서나 달력에 나올 만큼 예쁜 모래사장이나 멋진 풍경은 없다. 하지만 동명동 어시장을 방문하면 왁자지껄하고 활기 찬 분위기 속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봄나물을 파는 아주머니는 냉이와 달래를 실은 손수레를 끌면서 고함을 질렀고, 홍어를 파는 상점의 여주인은 두툼한 홍어를 턱턱 썰어서 상자에 담았다. 홍어에 조금만 관심을 보일라치면 칠레산 홍어 몇 점을 인심 좋게 건네주기도 했다. 항구도시여서 만날 수 있는 정경이다.
결국 헤어지는 날까지 목포는 속마음을 완전히 털어놓지 않았다. 사연이 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친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한 번 조우할 것을 기약하면서 냉담하고 낯설었던 첫 대면의 기억은 잊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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