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TODAY 스크랩】

【TODAY 스크랩】풀죽은 꽃들아, 어떻든 좋은세상 만들자

피나얀 2007. 4. 2. 20:51

 

출처-2007년 4월 1일(일) 9:19 [오마이뉴스]

 

 

▲ 제비꽃, 막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꽃망울들이 봄비에 신이났다.

 

ⓒ2007 김민수

 

봄비가 봄비답지 않게 장대비처럼 내리더니만 밤새 천둥번개까지 요란스러웠습니다. '하필이면 오랜만에 산야로 나갈 수 있는 휴일에 비가 올 것은 뭐람?"하며, 작년에도 주말이면 비가 오는 바람에 많은 꽃들을 만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꽃샘추위도 좀 지나치다 싶었는데 게다가 봄비가 자주 내리다 보니 꽃의 빛깔도 빗물에 씻겨 내려가 제 빛을 내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변덕스러운 것이 봄날이라고는 하지만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에는 좋은 날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햇살이 좋아야 꽃의 빛깔도 좋고, 햇살이 비춰주어야 꽃잎을 활짝 여는 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3월의 마지막 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우산을 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봄이 오다 못해 가고 있는 듯 피어난 꽃들이 빗물에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습니다. 물론 제비꽃처럼 신나는 것들도 있습니다.

▲ 진달래, 활짝 피었던 꽃들이 봄비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꽃이다.
ⓒ2007 김민수
한미FTA협상이 48시간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빗물에 떨어진 진달래, 색 바랜 진달래,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달래가 고난의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가는 이 땅의 약자들처럼 느껴집니다.

어른인 우리들이야 어떻게든 산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입니다. 자본의 논리, 맘몬의 논리로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선한 일로 둔갑된 현실이 두려울 뿐입니다.

자연은 아무리 연약한 것이라도 짓밟아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것이라도 그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이겠지요. 그런데 자연의 일부인 사람은 어떠한가요?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것이 진리인 양, 조금이라도 연약한 것은 무능력하거나 죄인처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 개나리, 피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지는 꽃들도 있다.
ⓒ2007 김민수
고개 숙인 개나리, 간밤 내린 비에 낙화한 꽃들도 있지만 그들은 또 피어날 것입니다. 지난 봄 어느 아파트단지 담장이 노란 개나리로 장관을 이뤘습니다. 올해도 기대를 했는데 굵은 가지만 남기고 가지치기를 해서 드문드문 노란빛이 돌 뿐입니다. 다시 몇 번의 봄을 맞이하다보면 어느 날 노란 개나리가 또 장관을 이루겠지요. 그것이 자연입니다. 뿌리가 뽑히지 않는 한 죽지 않고 다시 피어나는 것, 그것이 자연입니다.

약소국가의 설움, 고개를 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그런데 더 분노하게 되는 것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 중에서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사람들,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이 되는 것처럼 생각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 돌단풍, 빗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어나는 것은 그들의 고향이 계곡바위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7 김민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돌단풍은 이번 비에도 꿈쩍하지 않고 당당하게 꽃잎을 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번 한미FTA의 광풍에도 이렇게 당당하게 맞서 싸워 마침내 승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협상(?)을 보면서 협상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하고 대화를 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습니다. 강요하고 협상하고는 다른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강요하기도 전에 먼저 줄래 줄래 하는 협상대표들의 배포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이것이 나의 무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들은 미국 과학축산의 허구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요?

▲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신 분들은 아마도 이 꽃을 보는 순간 쓴맛이 입에 돌 것이다.
ⓒ2007 김민수
이번 협상을 미각으로 표현한다면 마치 라일락 이파리를 씹은 듯 쓴맛입니다. 씀바귀 같은 쓴나물이 주는 맛과는 다른 맛이지요. 씁쓸합니다. 도무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나의 미래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말입니다.

무한경쟁의 시대, 극소수의 승리자들만 웃을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아 씁쓸합니다.

▲ 홍매화, 나무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미 봄은 저만치 가고 있는 중이다.
ⓒ2007 김민수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고,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을 보면서 희망을 봅니다. 그래도 한미FTA의 실체를 보는 이들이 있고, 저항의 촛불을 밝히는 이들이 있으니 희망을 봅니다. 그 희망의 불길이 꽃망울 하나 둘 맺다가 온통 꽃나무가 되듯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 명자나무, 립스틱 짙게 바른 누이의 입술을 보는 듯하다.
ⓒ2007 김민수
붉다 못해 새빨간 명자나무의 꽃망울, 그를 보면 립스틱 짙게 바른 여인네를 떠올립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짙게 바른 립스틱이면서도 천하게 보이지 않는 그런 여인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이의 입술이라고 하면 될까요?

▲ 영춘화, 만나지 못하고 봄을 떠나보낼 줄 알았는데 비오는 날 그를 만났다.
ⓒ2007 김민수
영춘화,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더니 어느새 끝물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춘화가 많이 피면 풍년이라고 하던데, 끝물이라서 그런지 많이 남질 않았습니다. 우리 농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 들어도 한 숨을 거둘 수 없는 현실, 정말 좋은 나라라면 제대로 된 나라라면 땀 흘려 일한 만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땀 흘려 일해도, 최선을 다해도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없고, 불안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런 나라는 나쁜 나라입니다.

▲ 조팝나무, 작은 꽃몽우리가 매력적이다. 이제 며칠 후면 하얀 눈처럼 피어날 것이다.
ⓒ2007 김민수
조팝나무의 꽃 몽우리가 이렇게 작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작은 물방울보다도 더 작은 꽃 몽우리, 저것들이 하나 둘 피어나 온통 흰 눈 내린 듯하고, 하얀 이팝이 지천인 것처럼 만들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이제 한 주 혹은 두 주만 지나면 조팝나무의 하얀 물결을 볼 수 있겠지요. 그 작은 꽃망울을 보면 그들의 미래를 보는데 지금 나는 나의 미래는 너무 희미합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은 고사하고 우리 아이들이나 제대로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혹시라도 조팝나무를 보면서 하얀 이팝을 생각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 찔레, 가는 것과 오는 것의 경계사이에서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찔레의 하얀 꽃, 그 꽃이 보고 싶다.
ⓒ2007 김민수
봄이 저만치 앞서 가고 있습니다. 사는데 치여 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며 봄 마중을 다닌다고 했는데도 놓쳐버린 봄의 흔적들이 많은데 그저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이들이야 오죽하려구요.

빗방울에 고개 숙이고 피어도 여전히 꽃입니다. 한미FTA가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이 땅의 사람입니다. 희망의 사람으로 남아 자연의 섭리가 통하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