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뼈대 있는 가문의 생일케이크는 달라

피나얀 2007. 4. 6. 22:08

 

출처-[매거진t 2007-04-06 21:00]

 

KBS 드라마 <헬로 애기씨>

백설기를 맛있게 먹어본 적은 몇 번이나 되는지 지금 한번 생각해보시라.
가끔 잔칫집에서 얻어오는 백설기는 항상 남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깜빡 잊어버리고는 몇 달이 지난 후 냉장고 냄새를 흠뻑 머금은 채 벽돌처럼 딱딱하게 되어서야 발견되니, 늘 음식물 쓰레기통의 차지. 그나마 떡집에서도 형형색색 예쁜 빛깔과 달콤한 고명으로 장식한 쫀득한 찰떡들에 밀려 그저 밋밋할 뿐인 백설기에는 그리 손이 가지 않는다.
 
어릴 적엔 마르고 푸석한 백설기조차 달디 단 간식이 되기도 했는데, 그리 길지 않은 세월에 백설기 신세가 시드는 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정녕 백설기의 운명은 이렇게 사그러들고 마는 것인가 싶을 때, 우리 떡 백설기를 지켜주는 백설기 지킴이가 나타났으니 그 이름은 이수하요, 칭하기를 애기씨라 한다.

촌스러운 백설기, 촌스러운 애기씨

화안당의 애기씨 수화(이다혜)는 홀로 종갓집 화안당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종손녀다. 화안당에 대한 책임만큼이나 애정도 많고 늘 밝은 애기씨지만 평탄치 못했던 가정사 때문에 조금은 그늘이 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서울에서 다른 살림을 차린 아버지 곁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수화는 한번도 가까이 지내본 적 없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남매들까지 함께해야 하는 서울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다. 화안당의 주인이자 가문의 적자이면서도, 오히려 서자 같은 심정으로 살아야만 하니 차라리 화안당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더 나을 것도 같다.
 
 
그래도 한 집안의 종손녀로서의 나눔과 베품, 살뜰하게 가족을 챙기는 것을 덕으로 배운 수화는 이복동생의 생일날, 화안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넉넉하게 떡을 준비한다. 금방 쪄서 나와 하얀 김을 품어내는 뽀얀 백설기를 포장해서 그 온기가 식을까 얼른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서울 아버지의 집에서는 수화를 뺀 가족들이 달콤한 크림과 과일로 장식한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수화는 그 예쁜 케이크 앞에 따끈하게 쪄 온 백설기를 꺼내 놓지만 동생 준희(이민)는 ‘촌스러운 떡’이라며 시큰둥하기만 하니 어쩐지 그 백설기가 시골에서 갓 상경했던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해진다.
애기씨가 알뜰히 준비한 백설기, 케익 앞에 무너지다.

백설기 지킴이 애기씨

하지만 수화의 얼굴을 화끈하게 만든 그 ‘촌스러운 떡’은 사실 우리 인생에 참 많은 축복을 전해주고 있다. 예로부터 집안의 경사스러운 일에는 꼭 백설기를 만들도록 했다. 그 이유는, 우선 백설기의 흰색이 무탈함을 말하여 백설기를 받는 사람의 인생이 평탄하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100이라는 수가 장수와 더불어 온전한 인생의 완성을 말하여 큰 일을 이루기를 기원하기 때문이었다.
 
고로 아기가 태어나 삼칠일에 처음 백설기를 나누고 백일, 돌이 될 때 까지는 반드시 백설기를 만들어 먹는 것이 우리네 중요한 풍습 중의 하나였다. 그 이외에 매년 생일을 맞을 때를 비롯하여 회갑, 고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귀한 축하의 인사와 같은 것이 백설기였다. 보기엔 밋밋해 보일지 몰라도 화안당 애기씨 수화가 생일케이크로 백설기를 선택하는 데는 깊고 깊은 뜻이 있었던 것. 이쯤 되면 화안당 애기씨가 아니라 백설기 지킴이 애기씨로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백설기 지킴이란 것은 누구나 될 수가 있다.
 
금방 쪄 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먹음직스러운 모양에, 그 유명한 일본의 나가사키 카스텔라보다 더 폭신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갓 만든 백설기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키지 않아도 백설기 지킴이가 되어 생일상에 케이크 대신 백설기를 대령하라 명령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떡집 앞에 턱을 받치고 앉아 백설기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돌잔칫집에 일찍 도착해 금방 배달 온 답례품 백설기를 미리 맛보지 않는 한 금방 만든 따끈한 백설기을 맛보기란 그리 쉽지는 않은 일. 그렇다면 또 이것을 만들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배우기만 하면 빵보다 쉬우며 케이크보다 맛있고, 심지어 설거지감도 적고 설거지감에 기름기도 없으니 얼마나 착한 음식인지. 조금 더 일찍 백설기 만들기를 배우지 못한 것을 탓하게 될 것이다.
 
여하튼, 애기씨의 그 커다란 백설기는 새어머니가 접시에 한 조각 썰어온 것이 확인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으니 아마 냉동실에 고이 누워 냉장고 냄새 흡수에 애쓰고 계시지 않을까 싶다. 아, 불쌍한 백설기여!

백설기

재료>

 

멥쌀가루 600그램, 설탕 7큰술, 물 약간

 

 

1. 찜통에 물을 올려 김이 올라오도록 팔팔 끓인다.

 

2. 쌀가루에 물을 약간씩 넣고 손으로 비벼 물이 잘 섞이게 한다.

 

3. 물을 섞은 쌀가루를 손으로 꾹 쥐어 공 모양을 잡은 뒤 통통 튕겨보아 네 번째쯤 튕길 때 부서지면 물의 양이 알맞게 섞인 것이다. 물의 양은 쌀가루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쌀가루가 말랐으면 많이, 촉촉하면 조금만 넣도록 한다.

 

4. 물을 넣은 쌀가루는 체에 내려 덩어리를 없애고 고운 가루로 만든다.

 

5. 체에 내린 쌀가루에 분량의 설탕을 넣어 고루 섞는다.

 

6. 떡을 찜기에 시루 밑을 받치고 여기에 설탕을 넣은 쌀가루를 평평하게 담는다.

 

7. 김이 오른 찜통에 찜기를 얹고 김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한 뒤 센불에서 20분을 찌고 약불에서 5분 뜸을 들여 익힌다.

 

8. 완성된 떡은 접시에 뒤집어 담아 모양을 가다듬어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