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스포츠서울 2007-04-11 19:37]
전북 부안과 고창은 이를테면 현정화·양영자. 김동문·라경민같은 ‘환상의 콤비’다. 정경이 곱기로 둘째가라면 저마다 서러워할 내소사와 선운사가 서로 가까이 있는 까닭이다. 내가 살고있는 반도 복판에 바야흐로 봄이 내려와 앉을 때 한가닥의 짧은 여정으로 봄이 주는 여러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눈으로 코로 담아가기 좋은 여행코스란 뜻이다.
고즈넉한 선운사 동백을 보러가서 내소사를 안 들르면 김치없이 맨밥을 먹은 기분이랄까. 왠지 섭섭하고 심심하다. 반대로 벚꽃 화려한 내소사를 보고나서 시간없다고 선운사를 지나치려해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쉽다.
고즈넉한 선운사 동백을 보러가서 내소사를 안 들르면 김치없이 맨밥을 먹은 기분이랄까. 왠지 섭섭하고 심심하다. 반대로 벚꽃 화려한 내소사를 보고나서 시간없다고 선운사를 지나치려해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쉽다.
뭐 사실 모두들 밥먹는데 목숨내건 것은 아닐테지만. 비싼 기름 태워가며 변산반도까지 가서 유명한 젓갈백반 먹고 소금 한가마 산 다음. 고창 선운사로 넘어가 달콤한 복분자에 장어 한마리 뚝딱 ‘해치우지’않고 돌아왔다고 소문나면 주위에서 ‘끌끌’ 혀차는 소리깨나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변산의 꽃. 내소사’
부안이 고향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모임에서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아니 무슨 바닷가 이야기만 나와도. 곰소 젓갈이 어쩌니 모항해변이 어쩌니 하면서. 늘 변산반도 이야기에 목청을 세우느라 밥풀이 이리저리 튀어나온다. 그런데 “가만있자… 이 친구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잖아?” 알고보면 변산에서 왔노라는 이 친구는 사실 예전에 곰소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까지만 살았다는 게다. 그것도 아주 잠깐. 하지만 자신은 한결같은 변산사람이란다. 단풍보러 간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올해도 봄이 되어 내소사에 왕벚이 가득하다는 소릴듣고 짐을 쌌다.
◇이불 속 깊히 숨겨두고 싶은 곳
출장을 떠나와 사월 봄바람 불어오는 변산 내소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그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빨리 걷기 아까운’ 전나무 길을 걸어가다보니 왼편으로 직소폭포로 오르는 길이 있다. 빨간 등산복을 입고 바쁜 걸음으로 능가산으로 오르는 지각 등산객들도 벚꽃에 이끌려 흘긋흘긋 내소사 경내를 들여다본다.
쉬엄쉬엄 걸어 어머니 치마폭같이 포근한 고찰(古刹) 앞마당에 당도하니 이상하게도 낯이 익은. 탐스런 꽃망울을 뭉게뭉게 지닌 벚나무 한 그루가 떠억하니 섰다. 언더스로 투수 직구처럼 낮게 깔리는 오후 햇살에 홍매화 그림자가 대웅보전 꽃살에 걸린다.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만든 꽃잎이 바싹 말라버린 나무 속에서 다시 살아나 꿈틀꿈틀 움직인다.
고향집 앞마당같은 너른 절집마당을 돌하나 기둥하나 이리저리 둘러보다보면. 10분만 내려가면 만나게되는 속세의 고민거리로부터 멀리 떠나온 듯. 어느새 선경에 넋을 잃고야만다. 자신이 해병대 출신임을. 아니면 모 명문대 출신임을 죽을 때까지 내세우는 무수한 이들처럼. 그 친구 역시 이런 귀한 곳을 자신의 고향으로 분명히 남들에게 못박아두고 싶었을 게다. 아마도.
◇변산은 산이다.
전북 부안의 변산(邊山). 조선 정조 때 박지원이 지은 한문소설 ‘허생전’에 보면 ‘허생이 돈 삼십만냥을 들고 변산에 모여사는 군도(群盜)를 설득시켜 장기(長崎·일본 나가사키를 뜻함)로 떠났다’는 대목이 있는데 변산은 치안이 미처 못미쳐 도적이 숨어살 정도로 험준한 산세를 예나 지금이나 지니고 있다. 채석강과 모항 등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 늘 어촌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막상 돌아보니 역시 이름대로 산세가 매섭기 짝이 없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오다보면 보령을 지나서부터 널직한 평야가 펼쳐진다. 김제를 지나면 더욱 그렇다. 나주까지 이어진 드넓은 평야 가운데 변산이 우뚝 서 가로막고 서있다. 예로부터 변산반도가 산과 바닷물이 만나는 아름다움으로 칭송을 받아온 까닭이다.
채석강. 적벽강 등 눈에 담아가기도 미안할만큼 수려한 경관이 해안가 한 길을 따라 줄을 잇는 외변산. 그리고 직소폭포. 중계계곡 등 상대적으로 때가 덜 탄 내변산 등 반도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공원같다. 군데군데 신록이 오르는 30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일출이며 일몰. 야생화 꽃구경 모두 즐길 수 있다.
‘미당(未堂)이 사랑했던 선운사 동백’
누구나 선운사에 오면 동백부터 찾는다. 영국 튜더 왕조의 ‘천일의 앤’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울 때 이랬을까? 동백은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붉은 꽃망울을 잠깐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툭 하고 떨어져버린다. 이처럼 천연기념물(184호)인 고창 삼인리 동백숲. 이른바 선운사 동백은 그 활짝 핀 모습보다 뚝뚝 꽃송이째 떨어지는 모습이 더욱 장관이다.
고찰의 빛바랜 기둥에 부딪히는 향긋한 봄바람은 미당이 사랑했던 동백의 죽음을 모르는지 더욱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교태를 부린다. 널뛰듯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방정맞은 날씨 탓에 어느날 눈 뜨고나니. 이미 깊은 봄임을 뒤늦게사 깨달았다. 지각한 출근길에서처럼 황급히 선운사에 달려갔다. 노랫말처럼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가까스로 봤다. 선운사 뒷뜰. 미당이 사랑했던 그 동백은 그렁그렁 커다란 눈물방울처럼 맺혀 뚝뚝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동백 지면 봄도 진다.
이름은 동백(冬柏)이지만 춘백(春柏) 격인 선운사 동백은 4월이 한창이다. ‘미인박명’이랄까.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화려한 녹색 가운데라 왠지 더 슬퍼보이는 새빨간 동백은 그 고운 자태를 미처 뽐내기도 전에 선운사를 덮친 4월 노란 봄볕 속에 삼천궁녀처럼 흘러내리고 만다.
선운사에서 채 십리도 떨어지지 않은 고창 선운리에서 태어난 미당 서정주는 고향집 앞 동백을 그의 글 속에 자주 담아냈다. 특히 미당은 시 ‘선운사동구’에서 님처럼 보고픈 동백에 대한 아련한 동경을 읊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니다.’
또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도 잠깐 스쳐버린 인연처럼 져버린 동백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선운사에서’를 썼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없이 님한번 생각할 틈없이 아주 잠깐이더군…<중략>…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음유시인 송창식은 한술 더 떠 사랑하는 님이 절대 못 떠나게 하기 위해 슬픈 가슴을 찢어 보여주는 대신 ‘눈물처럼 지는 선운사 동백’을 보라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는 진달래꽃이 주는 이별의 슬픔과는 또 다르다.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못 떠나실 것같은 님은 결국 떠났고. 서러운 동백도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하릴없이 바쁜 척하는 ‘여행기자’만 노랫말만 뇌까리며. 선운사의 새 손님인 벚꽃만 가득한 길을 내려오고 말았다.
◇봄이 가득한 청보리밭
화려한 아픔의 눈물에 화장이 번졌다면 선운사에서 내려오던 길로 고창군 공음면 청보리밭으로 달려가서 새파란 웃음을 되찾아야 한다. 4월에서 5월까지 파랗게 올라온 30만여평의 보리밭은 이른바 ‘청보리’로 불리며 가장 아름다울 때다.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학원농장(학원관광농원)은 최근 보기 드물게 드넓은 청보리밭을 자랑한다. 보리가 채산성이 얼마 안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아직도 학원농원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육지 속 파란 바다에는 고불고불한 탐방로가 있고 언덕 위에는 그림같은 원두막과 전망대가 있어 사진작가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기세좋은 봄바람이라도 살짝 불어오는 날이면 허리춤까지 키가 껑충한 보리가 ‘쏴아’ 물결치는 가운데 ‘보리밭 사잇길’을 거닐 수 있는 행운(?)을 잡을 수 있다. 학원농장은 청보리밭 축제를 열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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