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아! 여기가 바로 仙境이로세”

피나얀 2007. 5. 11. 20:10

 

출처-[세계일보 2007-05-11 09:24]

 


북유럽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멀고 낯설게 느껴지는 여행지 중 하나. 유럽여행깨나 했다는 사람도 북유럽을 처음 찾게 되면 이국적인 정취에 놀라곤 한다. 이 북유럽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게 바로 노르웨이, 그 중에서도 피오르다. 미당 서정주도 생전에 노르웨이의 풍광을 접하고는 “여기가 바로 선경(仙境)”이라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피오르는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크루즈선 외에도 기차, 버스, 산악열차, 유람선을 통해 속살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어느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좀처럼 입을 다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거칠면서도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노르웨이의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감동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기차와 버스로 즐기는 피오르
 
세계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인 네뢰위 피오르 여행도 예이랑에르 피오르와 마찬가지로 대개 베르겐에서 출발한다. 여행 코스는 베르겐∼보스∼구드방엔∼플롬∼뮈르달로 이어진다. 오슬로에서 출발하면 역순이 된다.
 
폭이 250m인 네뢰위는 예이랑에르에 비하면 웅장한 맛은 떨어지지만, 신비한 풍경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펼쳐지는 데다 다양한 각도에서 피오르를 즐길 수 있어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서해안의 항구도시 베르겐을 출발한 기차는 동북쪽 내륙 도시 보스로 향한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이 코스도 범상치 않다. 구불구불한 피오르 해안을 끼고 내륙으로 달리는 철로변을 따라 바다와 절벽이 이어진다. 빙하가 만든 지형이 워낙 변화무쌍해 철도는 S자를 반복해 그리며 달린다. 또 수없이 터널을 드나든다. 창밖의 빼어난 풍광에 넋을 잃어 1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키오스포센 폭포(왼쪽)◇뮈르달역 주변의 설원.
 
작은 시골역인 보스역. 네뢰위 피오르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다시 버스로 1시간30분을 달려 구드방엔으로 가야 한다. 이 구간에서도 절대로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 두께가 최대 3㎞에 달했던 빙하가 찍어누르고 뜯어낸 지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형상의 연속이다. 산 정상에 집채만 한 구멍이 파여 있는가 하면, 수백m에 달하는 수직 절벽도 나타난다. 이 구간에서는 빙하가 녹은 시퍼런 강물이 기기묘묘한 바위들 사이로 호호탕탕 흘러가고, 유리같이 투명한 호수에 하얀 설산이 투영된다.
 
이 구간의 압권은 스텔하임 호텔에서 굽어보는 대협곡. 깊이가 1㎞는 족히 넘어 보이는 협곡은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에게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아스라한 협곡을 굽어보자니 숨이 멎을 듯하다. 독일에서 온 여자 여행객은 “놀랍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뒷걸음질친다.
 
버스는 마치 곡예라도 하듯이 굴곡이 심한 S자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대협곡 아래로 내려간다. 버스 옆으로 까마득한 절벽이 내려다보여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지만, 양 옆으로 수십개의 폭포가 잇따라 나타나 여행객들은 몸을 일으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이 모든 게 1만년 전 빙하가 잉태한 ‘명품’들이다.
◇플롬 선착장 근처에 정차한 산악열차.(왼쪽)◇설산 사이로 올라가는 플롬 산악열차.
 
#가장 좁은 피오르, 네뢰위의 유람선
 
첩첩산중을 넘고 넘어 도착한 곳은 중세풍의 소도시 구브방엔 선착장. 네뢰위 피오르 여행의 출발지다. 네뢰위 피오르는 세계에서 제일 길고 깊은 송네 피오르의 일부분으로, 최근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송네 피오르는 전체 길이가 204㎞, 깊이는 1308m에 달한다.
 
평일인데도 네뢰위 피오르를 오가는 유람선은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로 가득차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여행 온 3명의 여대생들은 “너무 너무 멋있다”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2시간 남짓한 항해 내내 갈매기들이 따라 붙어 유람선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북구의 겨울이 유난히 길어서일까. 유람선에 오른 관광객들은 피오르에 시선을 고정하면서도 일광욕을 즐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랫배를 햇볕에 내놓은 중년 여인도 눈에 띈다.
 
유람선은 콸콸 쏟아지는 폭포에 뱃머리를 바짝 댄다. 승무원은 긴 파이프를 통해 폭포수를 양동이에 받더니 관광객들에게 한 컵씩 나눠준다. 청정 빙하수 아닌가. 관광객들은 자신에게 차례가 오지 않을까 싶어 너나없이 손을 뻗어 컵을 받는다.
◇피오르드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왼쪽)◇스텔하임 호텔에서 바라본 대협곡.
 
# 입이 딱 벌어지는, 플롬 산악열차
 
네뢰위 피오르 여행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산악열차.
 
두 시간여를 항해한 유람선이 플롬에 정박한다. 플롬은 전체 인구가 450명밖에 되지 않지만, 바로 이 산악열차가 있어 세계적인 유명 여행지가 됐다. 거대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저 멀리 보이는 가운데 선착장 바로 옆에 기차가 대기하고 있다. 20개의 터널을 뚫고 수많은 협곡 위에 다리를 놓은 이 철도는 공사 기간만 20년이 걸렸다.
 
해발 2m인 플롬에서 해발 866m인 뮈르달까지 20㎞를 달리는 이 산악열차는 짜릿한 경험을 제공한다. 평균 경사도는 55도. 1시간여 동안 말 그대로 스릴 만점이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진 협곡에 철로가 놓여 있어 1시간 내내 마음을 졸이게 된다. 위로는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혀야 끝이 보이는 절벽이, 아래로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아스라한 계곡이 펼쳐진다. 모두들 1만년 전 빙하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빚어낸 작품들이다. 가히 ‘빙하의 축복’이라고 부를 만하다.
 
기차는 지그재그를 반복하며 가파른 산을 오른다. 산악열차에서 절경이 나타나면 곧바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한다. 잠시 망설이면 기차는 어느 새 또다시 터널로 들어가 버린다. 이 열차에서 주의할 점 또 하나. 절대로 한쪽에만 시선을 고정해서는 안 된다. 오른편의 희귀한 경치에 빠져 있노라면, 어느새 왼편 좌석 승객들도 탄성을 지른다.
◇유람선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왼쪽)◇트롤 피오르드호의 옆모습
 
플롬 산악열차의 최대 볼거리는 해발 699m에 있는 높이 98m의 폭포인 쇼스포센. 산 위의 호수에서 방죽이 터진 듯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기세등등하다. 30m나 떨어진 기차까지 물보라가 튈 정도다. 날리 터널에 들어서기 직전, 뮈르달산을 향해 21번이나 지그재그를 그리며 기어오르는 ‘랄라르 베르겐’ 도로에서도 탑승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감탄사를 연발한다.
 
플롬 선착장 주변에는 화사한 봄꽃이 만발했으나, 뮈르달에 오르면 온통 설원이다. 뮈르달에서 다시 베르겐행 기차를 타도 한동안 하얀 눈밭이 계속된다. 이같이 5월의 노르웨이 피오르 여행은 봄과 겨울이 함께하며 여행객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