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나미비아②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일몰, 나미브 사막

피나얀 2007. 5. 31. 19:01

 

출처-연합르페르 2007-05-31 10:12


 

 
태양은 건조한 열풍을 몰아 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뜨거운 바람은 뺨을 핥으며 지나가고, 모래 언덕 비탈을 오르는 다리에는 무게가 더해져간다. 까맣게 말라 비틀어진 사막에 선 고목처럼 목이 타들어갈 때쯤 사막은 아름다운 내면을 드러냈다. 사막 위를 걷는 고행에 대한 대가로 사막은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나미브 사막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세스리엠(Sesriem) 캠프장 위의 구름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하늘을 부유하던 흰색 구름이 이곳을 지나며 붉은빛의 사막을 닮아버린 탓이었다. 평평한 사막의 끝에는 모래언덕(사구ㆍDune)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다. 때때로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은 캠프를 이리저리 휘몰아치더니 결국 부드러운 모래에 박힌 텐트를 여지없이 뒤집어놓았다.
 
캠프장을 출발한 메르세데스-벤츠 트럭이 붉은 사막과 푸른 하늘 사이를 가로지른다. 태양의 각도가 한참 기울어가는 시간이지만 사막의 열기는 아직도 사물과 풍경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드넓은 붉은 평원의 풍경에 눈을 빼앗기며 30여분을 달리자 트럭은 어느덧 붉은 피라미드들이 둘러선 듯한 모래산맥 사이에 끼어 있었다.
 
 
◆ 'Dune 45', 황홀한 모래언덕에서의 일몰
 
트럭이 멈춰선 곳은 '모래언덕(Dune) 45'. 나미브 사막의 모래언덕 중 아름다움과 자태가 가장 탁월하다는 곳이다. 평평한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모래와 바람이 만들어놓은 '모래언덕 45'가 저물어 가는 햇살 아래 음영의 확연한 대조를 보이며 존재를 알린다.
 
절묘한 각도로 휘어진 모래언덕의 유연한 굴곡이 담금질 잘된 칼날같다. 이음새 없는 선녀의 옷을 짠 신기(神技)도 모래언덕의 순수함만 같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양옆의 다른 모래언덕들은 저마다 다른 각도로 다른 색깔로 황홀감을 더한다. 흰색에서 노랑으로, 다시 주황과 고동색으로, 짙은 검정의 암흑으로, 나미브 사막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되어 간다.
 
모래가 들어올세라 발목까지 올라오는 트레킹화의 신발끈을 꽁꽁 묶은 후 '모래언덕 45'를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모래 위에 물결무늬를 만들어놓았다. 티없이 매끈하던 모래언덕에는 서둘러 오른 일행의 발자국이 거대한 지네가 지난 흔적처럼 기다랗게 남겨져있다. 태양은 어느덧 뉘엿뉘엿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짓고 있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사막에 펼쳐지는 일몰 광경을 지켜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은 바빠졌지만 발목을 잡아당기는 모래비탈이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모래비탈을 오르며 숨이 가빠질 무렵 붉은 해가 떨어진다. 태양은 붉은 노을로 검붉은 사막을 태우며 서쪽 끝을 향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해넘이. 사위는 정적에 휩싸인다. 진한 갈색으로 사막을 물들이던 태양은 모래언덕의 실루엣만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렸다.
 
신발끈을 풀고 맨발로 비탈에 서자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사막은 생명이 다 해 체온을 빼앗겨버린 벌거숭이 송장같다. 이제 붉은 기운보다 검정 빛깔이 더 많아져버린 서녘을 바라며 부드러운 모래언덕의 가파른 비탈을 내리달았다.
 
모래는 더 이상 발길을 붙들지 않는다. 차곡차곡 비탈에 쌓인 모래가 탄탄하게 굳어버린 탓이었다. 모래언덕 아래는 이미 짙은 어둠이 장막을 드리우고, 사막 위로는 별들의 잔치가 불꽃놀이처럼 펼쳐지고 있다.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듯 반짝이는 미리내가 사막의 짙은 적막 속에서 화려함을 더하고 있었다.
 
 
◆고행을 넘어 죽음의 웅덩이까지
 
이글거리는 태양은 일행에게 다음날의 사막도보여행(Desert Walking)을 주저하게 했다. 죽음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메마른 사막이기에 그곳에서의 2시간은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우고 사막으로 등을 떼밀었다.
 
해가 떠오른지 1시간여가 지난 시각. 사막은 벌써부터 건식 사우나의 내부처럼 뜨겁고 건조한 기운을 뿜어댄다. 사막으로 난 도로가 끝난 지점에서 소형 트럭에 옮겨타고 5분여를 달리자 부시먼 출신 가이드는 일행을 모래언덕으로 안내했다.

한낮이면 표면온도가 70℃까지 오르는 불모의 사막. 그러나 사막은 죽음의 땅이 아니었다. 5분내에 사람을 쓰러뜨리는 독을 품고 있는 독거미와 등에 맺힌 이슬을 목덜미에 굴려 마시는 딱정벌레, 도마뱀, 그리고 물을 주면 오무린 꽃잎을 벌리는 식물 등 생각보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모래 속을 집삼아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만이 사막에서 죽음을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사막으로의 고행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데드블레이(Dead vlei)'를 찾아 떠나는 도보여행이다. 일행은 한 줄로 늘어서 모래언덕의 비탈을 터벅터벅 걸어오른다. 뺨을 간지럽히던 태양은 이제 머리 위로 한껏 치솟아 그림자마저 야금야금 먹고 있다. 물통의 물이 절반 이상 비워질 쯤 모래언덕을 넘어섰다.
 
갑자기 눈이 부시다. 붉은 모래언덕이 둘러싼 메마른 분지가 하얗게 반짝인다. 900여 년 전 사막화로 물이 마르자 자라던 커다란 나무들이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그대로 고사된 채 남아 기괴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위대한 자연이 만들어놓은 설치작품같다. 고행의 모래언덕은 어느덧 아쉬움의 귀로가 되어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트럭으로 이동한 곳은 소스서스블레이. '블레이'는 아프리칸스어로 '물웅덩이'를 뜻하는데, 대서양을 향해 흐르던 자우찹 강이 높다란 사구에 막히며 생긴 웅덩이의 흔적이다. 이곳을 넘어서면 광활한 사막의 바다가 펼쳐진다.
 
소스서스블레이에 오랜 시간 동안 모래가 쌓여 모래언덕을 이루면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소스서스블레이가 지금은 특정한 지역의 이름이지만 인류가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곳은 사막이 되고 또다른 소스서스블레이가 생겨나게 된다.
 
"소스서스는 모래늪처럼 한 번 들어오면 꼼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찾아 이곳까지 들어선 이방인들이 부시먼의 독화살에 맞고 이곳에서 죽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 들어오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게됐죠."
 
소스서스블레이에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커다란 나무가 죽은 듯 서 있고 웅덩이였을 바닥에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영양이 덩그라니 놓여 있다. 수천년이 지나면 이곳도 모래언덕이 차지하는 사막의 바다 한가운데 놓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스리엠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나무 아래 이르렀다. '위버'라는 참새만큼 작은 새가 큰 나무의 가지마다 주먹만한 둥우리들을 틀고 맑고 투명한 생명의 노랫소리를 들려준다. 죽은 것 같아 보이는 불모의 사막에서 만난 생명체들이 신기하게도 삶에 희망을 주는 감로수처럼 마음을 적셔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