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베이징④ 만리장성, 용틀임을 시작하다

피나얀 2007. 6. 14. 19:15

 

출처-연합르페르 2007-06-14 09:51

 


장성(長城)은 대륙의 등줄기에 난 갈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산마루를 따라 굽이치며 흘러가다 잠시 숨을 고르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선 아예 터를 잡고 눌러 앉았다. 그렇게 철 따라 꽃 보고 눈비 맞으며 지내온 세월이 수천 년이었다. 성벽이 산맥을 헤집고 파고들어 그 일부로 동화되는 동안 베이징에선 숱한 왕조가 명멸을 거듭했다.
 
◆구름 속으로 사라진 용머리
 
올림픽 준비 바람이 거센 베이징을 뒤로하고 장성 투어에 나섰다. 베이징 북부 팔달령(八達嶺)에 쌓은 장성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베이징 도심에서 버스로 1시간을 달려 팔달령 발치에 이르렀다.
 
팔달령 장성 투어는 세 살 먹은 아이부터 여든 살 노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돼 있었다. 산마루까지 걸어 올라갈 것으로 지레짐작했지만 기우였다. 소형 케이블카가 장성 턱밑까지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물론, 성벽 위 계단을 오르내리며 망루와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관광객의 선택사항이었다.
 
망루에서 바라본 장성은 용의 몸통처럼 느껴졌다. 용 한 마리가 길고 긴 몸을 이끌고 구불구불한 산마루를 기어가다 일순간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 형국이었다.말 다섯 필이 횡렬로 서서 지날 수 있는 큰 폭이지만 시야가 멀어지니 성벽은 실오라기처럼 얇아졌다.
 
팔달령을 비롯해 현재 볼 수 있는 장성은 대부분 명대에 축조된 것이다. 장성은 축조 초기인 진(秦), 한(漢) 시대에는 현재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했다. 그러던 것이 거란(契丹)과 돌궐(突厥)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위치로 남하했다. 당(唐) 대에는 장성 너머까지 중국의 판도가 넓어지면서 방어선으로서 의의가 상당 부분 축소됐다.
 
장성은 그야말로 노점상의 천국이었다. 해발 888m의 팔달령 장성은 창을 들고 망루를 지키던 병사 대신 조악한 기념품과 삶은 계란, 핫도그로 무장한 노점상들이 점령해버렸다. 풍경이 좋은 곳에 펜스를 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해 장성 투어 증서를 판매하는 '중국판 봉이 김선달'도 보였다.
 


◆장랑(長廊)에서 황제처럼 거닐다
 
현재, 자금성 주변에는 다수의 세계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베이징 북서부에 자리한 이화원도 그 중 하나다. 서태후(西太后)의 여름 별장이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화원은 12세기 중반 금나라 정원(貞元) 원년에 지은 행궁이 그 시초다.
 
왕조가 바뀌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것을 19세기 후반 서태후가 해군 예산을 유용해가며 대대적으로 보수해 이화원으로 개칭했다. 수십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파낸 인공호수 곤명호(昆明湖)는 안개가 서린 날이면 바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광대하다.
 
황실의 유희를 위해 국고까지 탕진해가며 조성한 덕분인지 이화원은 현재 베이징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황실원림으로 꼽힌다. 중국 북방원림의 웅대한 기상을 살렸을 뿐 아니라 강남 정원의 수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겸비했다는 평가다.
 
수변에 버드나무가 즐비한 곤명호에선 여름이면 항저우 서호(西湖)처럼 뱃놀이 유람을 즐길 수 있다. 지춘정(知春亭) 앞에서 배를 타고 유유히 노닌다. 곤명호 수역 내에는 모두 3개의 섬이 자리하는데, 화려한 난간 조각이 일품인 교각과 우아한 정자가 뱃놀이의 운치를 더해준다.
 
서태후의 침전 겸 집무실인 낙수당(樂壽堂)에서 시작되는 장랑(長廊)은 이화원 투어의 백미다. 총 273칸, 728m에 이르는 긴 회랑으로 이화원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로 꼽힌다. 회랑 좌우로 곤명호와 측백나무 숲이 어우러지고 기둥과 들보, 천장에 중국의 자연과 설화를 소재로 한 채색화가 그려져 있다. 1만4천개가 넘는 그림을 감상하며 천천히 회랑을 거닐다 보면 황실의 일원이 된 기분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베이징 세계문화유산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천단(天壇)이었다. 베이징 노인들이 아침 운동 장소로 애용하는 이곳은 명, 청대 황제들이 하늘에 오곡풍양(五穀豊穰)을 바라는 제를 올리던 곳이다. 명 영락제는 베이징 천도에 앞서 자금성을 중심으로 사방에 천단, 지단, 일단, 월단을 조성했다.
 
천단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그 설계자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조화와 통일을 추구했는지 확연해진다. 자금성 면적의 4배에 이르는 광대한 공간에 중국인들의 자연관과 세계관이 응축돼 있다. 중국인들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그렇고 땅은 네모지다고 여겼다. 그래서 제천의식을 올리는 원구단(圓丘壇) 주변에 방형(方形)의 담을 두르고, 하늘과 소통하는 공간인 황궁우(皇穹宇)와 기년전(祈年殿)은 둥근 원추형 건물로 축조했다. 기단과 건물 기둥 배치에는 주역의 양(陽)에 해당되는 홀수가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천단 투어는 팔작지붕의 남문에서 시작해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을 거쳐 동문으로 빠져나가는 코스로 진행됐다. 황궁우에는 역대 황제와 자연 제신(諸神)들의 위패가 보관돼 있는데, 벽면을 타고 소리가 전달되는 회음벽(回音壁)이 볼거리다. 두 사람이 회음벽 양쪽에 서서 담벽에 귀를 대면 나직한 목소리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민심이 황제를 거쳐 하늘에 상달되길 바라는 의미로 설계했다고 한다.
 
기년전은 천단의 중심 건물로 천지만물을 상징하는 3층 기단, 3층 처마로 이루어져 있다. 청나라의 퇴장과 함께 신전에서 관광지로 전락했지만 가끔 옛 영화를 회복하기도 한다. 베이징 올림픽처럼 국가적인 이벤트를 앞두면 이곳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행사가 빈번해진다. 관련 인사들의 발길도 잦아진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수록 절대자를 찾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황제나 민초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