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Just try it. 산토리니에서

피나얀 2007. 7. 3. 19:49

 

출처-조선일보 2007-07-03 16:59

 


::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38가지 방법 :: 기회가 왔을 때 해 보아라
 

리스 산토리니 섬의 페리사 블랙비치로 기억된다. 조금 이른 시간에 비치를 찾은 나는 매우 그리스적인 짚으로 지붕을 만든 파라솔 아래에 자리를 잡고 바다 내음을 간직한 선선한 바람을 즐기며 독서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곳은 누드 비치가 아님에도 내가 찾은 그날 오전은 마치 누드 전용 비치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나랑 가까운 곳 오른쪽 파라솔에 모녀로 추측되는 세 여인이 와서 자리를 잡자마자 스스럼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입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 버렸다.
 
그리고 한 여인은 바다로 뛰어들었고, 나머지 두 여인은 파라솔도 한쪽으로 치워 버리고 누워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토플리스도 아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벗은 몸을 이 한적한 비치에서 목격하고 있자니 처음엔 당혹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조금 후 바닷물에서 딸로 보이는 여인이 돌아오자 어머니와 두 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즐기며 그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 모녀들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 탓인지 조금 있다 내 좌측으로 자리를 잡은 역시 혼자 온 여인이 스스럼없이 금새 토플리스 차림이 되어 정면으로 누워 태양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 나는 수영을 할 생각이 없어 수영복도 아닌 민소매티에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바로 자연주의 왕국의 낯선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마치 내가 인간의 원초적인 자유를 실현하게 해 주는 어느 낯선 섬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짙푸른 바다와 그보다 옅은 파란 하늘이 이루는 저 너머 수평선에 있을 것 같은 곳 말이다.
그런데 나를 처음 당혹하게 했던 여인네들의 자태는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다. 오히려 자연과 너무나 잘 어울려 동화된 모습에서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들의 몸매는 객관적으로 누드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아름다운 몸매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감 있는 태도로 건강한 육체를 자연 속에 드러내며 그대로 자연이 되는 모습, 순간 아름다워 보였다. 그 아름다움은 8등신 몸매가 뿜어내는 자극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유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스 현지인들로 보이는 그들에게서 수치심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 비치의 모습 또한 참으로 그리스적이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 작품들에는 유독 누드 조각들이 많다. 육체에 대한 신뢰와 자연의 마음이 느껴진다.
 
바닷물로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우측의 한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가운데 끼여서 온몸에 무장을 하고 이곳에 조화되기를 거부하는 내가 그들에게는 눈에 띄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의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발하는 그녀가 나에게 옷을
벗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건다.

“너도 한번 해 봐. 한번 자연을, 자유를 느껴 봐.”

그녀는 내 머릿속의 생각의 흐름을 읽기라고 한 걸까. 나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 기회에 할게."

 


"지금 못하는 것은 다음에도 못할 수 있어.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야. 기회가 왔을 때 해 봐."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야. 기회가 왔을 때 해 봐.’ 계속해서 그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다.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누드 비치가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이렇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도 흔한 것이 아닐 테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 자연에 동화되지 못했다. 돌아온 후 그곳이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뒷북의 대가처럼 한 번쯤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과 그대로 마주해 보았으면 좋았지 않았겠냐고 자신도 탓해 본다. 그럴 기회가 앞으로 또 있을까?

그 후에 무슨 일을 망설이게 될 때 그녀의 말이 속삭이듯 스치곤 했다.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야. 기회가 왔을 때 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