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발리① 신(神)과 인간이 공존하는 섬

피나얀 2007. 7. 3. 19:56

 

출처-연합르페르 2007-07-03 10:04

 


출발하기 전 결심한 것이 있다. 발리의 별칭인 '신들의 섬'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발리를 다루는 글이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절대로 빠지지 않았기에, 반항하는 심정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십자가의 붉은색 네온사인이 도시의 하늘을 점령하고 깊숙한 산마다 사찰이 들어앉아 있는 땅에서 성장했던 만큼 이미 종교에는 익숙하다고 자부했던 터였다.
 
그런데 발리에서의 종교는 차원이 달랐다. 발리 사람들은 사원에서 숙식하는 성직자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언제나 신과 함께 생활했다. 그들은 신에게 행복을 기원하고 고민을 토로했으며, 급기야 신을 보호하기까지 했다.
 
발리의 신은 도저히 닿을 수 없을 만큼 지고지순하지 않고, 항상 사람과 붙어 다니는 죽마고우 같았다. 2만여 개에 달하는 사원에서는 끝없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음식물과 꽃이 바쳐졌다. 실제로 발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신들인 것 같았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종교는 이슬람교이지만, 발리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는다. 10세기 인도문화와 힌두교가 인도네시아에 전래됐으나, 16세기 이슬람 세력이 영역을 확장하면서 힌두교의 승려들이 발리로 피신했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와 토착신앙이 합쳐지면서 '발리 힌두교'라는 유래를 살펴볼 수 없는 독자적인 종교가 탄생하게 됐다. 기독교가 가톨릭과 신교로 분리되었듯, 발리의 힌두교 역시 본향인 인도 힌두교와는 엄연히 차별화된다.
 
힌두교는 다신교로 알려져 있다. 족보가 복잡하기로 유명한 그리스와 로마의 신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다. 하지만 발리의 힌두교는 기독교처럼 꼭대기에 '상 향 위디'라는 최고의 신이 자리하고, 상 향 위디가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등 3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발리의 힌두교를 들여다보면 온갖 종교의 교리가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 길손이 북쪽으로 간 까닭은


발리에서는 집, 식당, 상점을 막론하고 사람이 왕래하는 문 앞에 차낭(Canang)이라는 공양이 놓여 있다. 야자수 잎으로 만든 작은 접시 위에 꽃과 음식이 담겨져 있는데, 크래커나 사탕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간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차낭에는 술을 제외하면 어떠한 음식을 넣어도 상관없다. 따라서 밥과 함께 한국인이 좋아하는 김치나 깍두기를 야자수 잎에 올려도 무방하다. 발리 사람들은 매일 차낭을 꾸미면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한다.
 
차낭은 사원의 탑이나 나무 앞에도 많다. 신이 살고 있는 곳에 공양이 따라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발리에는 고샅마다 사원이 있지만, 섬의 북쪽과 동쪽에 크고 볼만한 사원이 흩어져 있다. 보통은 우붓(Ubud)을 사원 여행의 거점으로 삼는데, 대개 1시간 안팎이면 닿는다.
 
사원으로 가는 길에는 초록빛 계단식 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푸른 논 한가운데에서 삿갓을 쓴 농부들이 쌀을 수확하는 목가적인 정경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해발 1천500m의 고지에 위치한 브라탄(Bratan) 사원은 '쌀과 곡물의 신'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풍작을 바라는 행사를 올릴 때면 농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이처럼 발리의 사원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고, 사원마다 주인이 되는 신이 다르다.
 
발리의 사원에는 유독 탑이 많은데, 특히 발리에서 두 번째로 큰 타만 아윤(Taman Ayun) 사원이 그러하다. 탑은 주로 홀수 층으로 쌓는다. 타만 아윤 사원에는 3층탑부터 11층탑까지 높이가 다른 탑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다.
 
사실 발리를 여행하다 보면 담 위로 삐죽 튀어나온 탑들이 어디에나 있어서 굳이 사원을 방문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사찰이나 교회에 가면 볼거리가 많듯, 넓고 웅장한 발리의 사원을 찾아갈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예부터 축적된 명성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고로 명불허전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