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강릉① 한 번 가면 또 가고 싶은 피서지

피나얀 2007. 7. 5. 18:41

 

출처-연합르페르 | 기사입력 2007-07-05 10:21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그 모습 그대로 끌어안으면 그만이다. 숲 속 이끼 위 무당벌레가 칠성무당벌레이건 홍점박이무당벌레이건, 아래턱이 꿰어져 일광욕 중인 생선이 명태이건 대구이건 중요치 않다. 대관령 양떼목장과 자연휴양림에 들러 마음을 정화시키고, 경포호와 주문진 포구에 닿아 몸의 열락을 누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관령 양떼목장, 바람과 사람을 위한 쉼터
 
강릉으로 향하는 여정의 정점인 대관령은 적막하지 않다. 구름과 안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람을 타고 고개를 넘나든다. 높고 공활한 대관령을 기점으로 영동과 영서지방의 기압차가 심해 주야로 강한 바람이 분다. 백두대간 수많은 준령 가운데 바람이 가장 거센 곳으로 통한다. 능선을 따라 곳곳에 거대한 풍차 모양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해발 900m 안팎의 대관령 정상 부근에는 국내 유일의 양 목장이 자리한다. 옛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대관령휴게소 뒤편이다. 6만2천 평 면적에 300여 마리의 양이 방목되고 있다. 자작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목장은 12개 구역으로 나뉜다. 양 무리가 한 구역에서 4일 동안 풀을 뜯어먹으면 다른 구역으로 이동시키는 순환방목이다. 1988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대관령으로 내려온 전영대 씨가 양떼목장의 주인이다.
 
"20여 년 전 대관령에 놀러왔다가 이국적인 목장을 보고 반한 게 계기였습니다. 대관령은 그냥 소나 키울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주변 경관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목장을 예쁘게 꾸며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면 되겠다 싶었죠."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가을에 전 씨는 다니던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대관령으로 내려왔다. 물론, 주변에선 반대가 극심했다. 지인들마다 '미친 소리 마라. 축산이 관광이랑 무슨 상관이냐!'며 만류했다. 아내와도 수차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산골 오지에서 세 살, 다섯 살 두 아들을 앞으로 어떻게 키우느냐는 아내의 말에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이끌고 대관령으로 들어왔지만 막막했다. 북아일랜드 선교사가 운영하던 목장을 하나 매입했다. 물론, 축산 문외한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거의 방치돼 폐허나 다름없었던 목장에 목책을 설치했다. 강릉 일대 고물상을 이 잡듯 뒤져 장만한 철근을 길이 170cm씩 잘라 땅에 박고 줄을 쳤다. 아내와 함께 철근말뚝을 박아 울타리를 두르는 데만 꼬박 4년이 걸렸다.
 
대관령 세찬 바람에 지붕이 날아간 축사도 새로 지었다. 인근 용평스키장 콘도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면서 집 짓는 기술을 익혀 활용했다. 축사 한쪽에 가족이 기거할 살림집도 새로 꾸몄다. 양은 전북 남원 면양종축장에서 230마리를 분양받아 들여왔다. 농축산물 수입 개방을 앞둔 시점이라 1마리당 5만 원에 분양받을 수 있었다. 수십만 원의 시가를 감안하면 헐값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내 축산업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였습니다. 1970년대 정부의 축산 진흥책으로 전국 곳곳에 목장이 들어섰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특히, 양은 시설투자가 많이 드는데다 털만을 이용해서는 경제적 가치가 없어 목장이 대부분 문을 닫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내리막길이었죠."
 
십수 년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수입이라고 해봐야 봄에 양털을 깎아 만드는 이불 몇 십 채와 가끔 강릉 시내 계모임에서 찾아올 때 내놓는 양고기 판매가 전부였다. 아이들의 설빔도 남의 집 옷을 구해다 입혀야 했다. 하지만 목장을 떠날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 칼날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으니까 육체적으로도 힘이 부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반전이 일어난 것은 그 무렵이다. 2003년 벽두, 계미년(癸未年) 양의 해를 맞아 각종 매체에서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취재를 나왔다. 다른 양 목장은 이미 모두 문을 닫아 국내에서 양 무리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미디어의 힘은 셌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목장이 방송 이후 주말이면 발 디딜 곳 없이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후 목장은 연중 무료로 개방되었다. 철쭉, 조팝나무 등 계절을 따라 피고 지는 30여 종의 야생화가 펼쳐진 아기자기한 목장에서 누구나 양떼와 노닐며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양떼목장은 양에게 건초를 먹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입장료 대신 일정액을 받고 있다. 세찬 바람을 이기고 대관령에 알프스의 하이디를 재현시킨 한 가족의 20년 세월에 대한 급부인 셈이다.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횡계IC로 나가 횡계 방면으로 향하면 양떼목장 이정표가 보인다. 033-335-1966, www.yangtt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