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강릉② 주문진항, 태양보다 먼저 떠오르는 포구

피나얀 2007. 7. 5. 18:43

 

출처-연합르페르 2007-07-05 10:23


강릉 북쪽의 주문진 해안도로는 두터운 시멘트 담이 가드레일처럼 이어진다. 일몰 이후 특정 시간대에는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 파도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백사장으로 들어서면 어디선가 자동차 전조등 같은 불빛이 나타나 정신 사납게 비쳐댄다. '냉큼 그 자리를 떠나라'는 의미의 해안부대 서치라이트다. 그래도 배짱 좋게 버티고 있으면 지프를 탄 군인들이 출동해 앞을 막아선다. 분단국가의 비애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순간이다.
 
밤바다가 민간인에게 다시 열리는 시간은 새벽 3시다. 여름 동해안 포구의 하루는 어느 곳이나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주문진도 마찬가지다. 출항신고를 마친 배들이 하나 둘 포구를 떠난다. 두세 명이 조업하는 소형 어선은 당일치기로, 20t 이상의 큰 선박들은 2~3일에서 1주일 동안 바다를 누빈다.
 
주문진항에는 약 900m 길이의 방파제가 전갈꼬리처럼 바다로 길게 뻗어나가 있다. 새벽녘 이곳에 서면 수십 척의 배들이 일시에 출어하는 장관을 목도할 수 있다. 적막한 어둠을 헤치고 바다로 나가는 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외등을 단 작은 통발 어선부터 수십 개의 집어등을 밝힌 채낚기 어선까지 다채롭다. 제각기 몸집에 맞는 엔진소리와 함께 물살을 일으키며 주문진 포구 양 끝에 선 등대 사이를 빠져나간다. 포구에서 출항한 배들은 얼마 후 수평선에 금빛으로 점점이 박힌다. 밤하늘 별들이 수면 위로 내려앉아 노니는 듯 보인다.
 
방파제 끝에서 출어 행렬을 보다보면 정체 모를 사내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해양경찰도, 낚시꾼도 아니다. 랜턴이 달린 헬멧을 쓰고 창처럼 생긴 장대를 하나씩 들고 방파제를 오간다. '문어 사냥꾼'이다. 방파제 아래 수면 위로 불빛을 비춰 문어가 보이면 장대를 내려서 찍어 올린다. 서너 명의 사냥꾼들이 밤새 시계추처럼 방파제를 오가며 문어를 찾는데, 운이 좋은 날이어야 1~2마리 건져 올린다고 한다.
 
◆선상에서 즐기는 감칠맛


주문진은 오래 전부터 오징어로 정평이 났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 유명세에 걸맞은 면모다. 오징어 조업이 한창인 계절에는 해안 전체가 오징어 덕장으로 변모한다. 나무꼬치에 한 마리씩 꿰어 긴 줄에 빨래 널듯 걸어 놓는다. 여름 햇볕과 바람에 수분은 날아가고 쫄깃함과 짭조름한 감칠맛이 남는다.
 
현재 주문진의 오징어잡이 선박은 약 100척이다.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선박은 서너 배 늘었고 오징어는 그만큼 감소했다. 하루에 두 번씩 조업을 나가 만선으로 돌아오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 얘기가 되었다. 연근해 오징어가 줄어들면서 어장이 자꾸만 멀어져 조업을 해도 사실상 손에 쥐는 것은 푼돈이라고 한다. 실제로 주문진 오징어잡이 선박 선원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수입은 월 평균 약 100만 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태평양 오징어와 중국 선박들이 동해 북한 수역에서 잡은 오징어가 대량 수입돼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오징어 어획량은 줄었지만 횟집은 급증했다. 현재, 주문진에는 횟집이 약 300개다. 메뉴와 가격은 식당마다 별반 차이가 없다. 주방장의 회 뜨는 솜씨와 매운탕 양념이 약간씩 다를 뿐이다. 광어, 우럭, 놀래미 등 일반적인 횟감에 주문진 해녀들이 건져 올린 성게, 전복, 해삼이 식탁에 올라온다. 시원한 물회와 서해안에서 나는 대하, 러시아산 대게를 내놓는 곳도 있다.
 
회는 테이크아웃(Take-out)으로도 즐길 수 있다. 2만~3만 원이면 스티로폼 김밥 포장지에 회를 가득 담아준다. 방파제나 백사장, 해안 바위 위에 걸터앉아 마늘과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소박한 정찬이 마련된다. 주문진 북쪽에 위치한 소돌해수욕장은 회도시락을 장만해 소풍 나온 여행객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너럭바위가 많고 물이 얕아 오순도순 모여 쉬기에 좋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인지 이런저런 기념비와 조각품도 여럿 세워져 있다. 1970년대를 풍미한 요절가수 배호의 대표작 '파도' 노래비도 화강암으로 조성돼 있다.

 
횟집이나 해변에서 먹는 회가 성에 안 찬다면 낚싯배를 타면 된다. 주문진의 낚싯배들은 파도가 높지 않은 날이면 언제나 출항한다. 5t 안팎 소형 어선으로 10여 명이 함께 뱃놀이를 즐기며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팔뚝만 한 우럭도 맛볼 수 있다.낚시로 잡은 물고기는 식당 수족관에서 뜰채에 담겨 식탁에 오른 녀석들과 확연히 다르다. 생선회는 일정 시간 숙성을 시켜야 제맛이라지만 바다 위에선 다 객쩍은 소리다. 망망대해에서 파도와 바람을 버무려 즐기는 회맛은 씹히는 질감부터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