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패션】

"깔끔女 세련男 더는 매력없어" 투박한 게 좋아

피나얀 2006. 1. 1. 14:55

 


 

 

 


[동아일보]

 

《올 하반기 패션계의 히트 상품은 단연 '뿔테 안경'이었다. 최근 종영된 KBS 2TV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주인공을 맡았던 가수 비가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 뿔테 안경을 쓰고 나오자 인터넷에는 '비의 뿔테 안경'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영화배우 이정재, 강동원, 류승범도 연말에 열린 '대한민국 영화대상'등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육봉달'로 알려진 개그맨 박휘순은 얼굴의 반을 덮다시피 하는 촌스러운 뿔테 안경을 끼고 개그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얻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안경점 '홀릭스'의 브랜드 매니저 김성원(32) 씨는 "최근 매장에 들어오는 신제품의 80% 이상이 뿔테 안경"이라며 "여성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35·인트렌드 대표) 씨는 "굵고 둔탁한 선글래스가 인기를 얻더니 안경까지 투박해졌다"며 "안경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옷 등 2005년의 패션 트렌드는 투박함"이라고 말했다.

 

올 겨울 남성복 인기 아이템인 헤링본 체크 코트도 두텁고 투박한 느낌이다. 롯데백화점 본점 영 캐주얼 매장의 염동호(34) 바이어는 "한동안 곱고 예쁘장한 메트로섹슈얼 스타일이 인기를 얻었으나 올해는 강하고 무뚝뚝한 느낌의 코트가 대세"라고 말했다.

 

● '투박미(美)'가 뜨는 사회

 

투박함이 세련미를 앞섰다. 도시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던 사회가 뭉툭하고 투박한 것을 좇고 있다. 뿔테 안경이나 코트 등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투박함은 문화 전반에 뿌리 내렸다.

 

11월 '바이 바이 바이'란 노래로 데뷔한 남성 신인 듀엣 '먼데이 키즈'의 경우 노래 가사, 창법 모두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어쩔 수 없이 연인을 떠나보낸다는 신파조의 노래 가사, 텁텁한 목소리, 우는 듯한 창법 등이 어우러졌다. 같은 달 데뷔한 여성 3인조 신인 그룹 '가비 엔제이' 역시 우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청순미나 섹시함을 강조해온 과거의 여성 신인 그룹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두 그룹은 각종 가요 순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기존의 세련된 주류 음악과는 다른 촌스러움과 투박함으로 차별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연말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한 영화배우 황정민이나 '웰컴 투 동막골'의 정재영도 올해 '투박함'에 승부를 걸었다.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36세 시골 노총각으로, 정재영은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38세 시골 노총각으로 각각 출연해 투박하지만 순박한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다.

 

영화제작자 겸 카피라이터 정승혜(40·영화 제작사 '아침' 대표) 씨는 "두 배우의 성공 요인은 포장마차에서 마주쳐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금세 털어놓을 것 같은 이미지에 있다"며 "같은 멜로 영화라도 두 사람의 외모나 말투에서 묻어나온 투박함이 영화의 현실성을 살렸다"고 말했다.

 

● 투박함은 인간의 본성

 

투박함이 인기를 얻는 이유에 대해 문화평론가들은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아날로그적 인간미를 찾고자하는 본성 △세련됨, 날카로움을 강요하는 사회로부터 탈피하려는 의지 △각박한 일상에 대한 위로 희구 등으로 분석했다.

 

투박함 자체를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신세대도 있다. 뿔테 안경을 수집하는 대학생 김미희(21·여) 씨는 "유행 때문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지만 빨간색, 보라색 등 남들과 다른 뿔테 안경으로 개성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39·심리학 박사) 씨는 "변화무쌍한 시대에 인간적인 면모를 호소하는 것이 투박함이란 코드로 드러난 것"이라며 "대중은 투박함이 담긴 것들로부터 위안을 얻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44·徐二鍾) 교수는 "한국사회가 민주화, 평등의 과제를 이룬 것 같지만 내면에 숨겨진 모습은 여전히 권력 지향적이고 기계화된 부분이 많다"며 "투박함은 땀 냄새와도 같은 것이고 이는 인간 중심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모습 중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동아일보 2005-12-29 1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