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탈사이트통해 사연 알려진후 많은 사람들 찾아 조화와 묵념
"아 바로 그 인터넷 기사에 나온 추모비구나"(행인) "전에는 쓰레기만 가득했는데 올해는 전례없이 많은 조화가 왔네요."(시장주변 노점상)
지난 97년 1월 10일 오후 7시 20분 서울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소매치기를 잡으려는 경찰관을 돕다 범인의 칼에 찔려 사망한 故이근석(24)씨 추모비가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현장을 다시 찾았다.
"무심했던 것이 미안하네요"
서울시가 충무로 2가 사건 현장에 추모비를 세웠지만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존재는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날 이근석씨의 사연이 다시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9년 만에 그를 다시 기억해냈다
故 이근석씨의 기일(忌日)인 1월 10일 오후 7시, 다시 찾은 명동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서있는 추모비. 하지만 이날은 예년과 다르게 그 곁에 많은 꽃들이 놓여져 있었다.
비석 위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장미꽃과 작은 해바라기 꽃다발, 흰 국화꽃이 올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중구 명동사무소와 서울지방경찰청, 그리고 서울시 중구청장까지 보내온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추모비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주위에 꽃이 놓여진 것을 보고 신기해 하며 살펴보는 이도 있었고, “아, 이게 (인터넷에서 본)그 비(碑)였구나” 하며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추모비에 대한 홍보가 필요’
꽃이 놓여진 비석을 흥미롭다는 듯 살펴보던 강석남 학생(15)은 ‘어떤 비석인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비석의)사연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비석 위에 쓰여있는 문구를 읽고 난 후 “좋은 일을 하신 분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무관심했던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추모비 바로 옆에서 의류 노점상을 하는 김진성씨(39)는 평소 비석 주위에 쓰레기가 놓여 있으면 치워왔다고 한다.
그는 “매년 이근석씨의 생일과 기일에는 경찰관이나 가족들이 와서 꽃을 놓고 가지만 이번 만큼 많은 꽃이 놓여진 것은 처음”이라며 꽃이 놓여지는 날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또한 지나가는 시민들이 쓰레기 등을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명동을 찾은 이충근씨(25)는 “평소 명동은 자주 오지만 비석을 본 적은 처음이고, 사연 역시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이 비석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비석만 덩그러니 놓아 둘 것이 아니라 그 사연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안내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하며, 시 당국의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이근석씨가 의로운 죽음을 맞은지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동안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듯 했고, 추모비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오늘만은, 그를 위한 꽃들과 사람들의 관심어린 시선으로 둘러싸인 추모비가 결코 춥지 않게 느껴졌다.
◈사건개요
=97년 1월 10일 오후 7시 20분즘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명동상가 앞길에서 3인조 소매치기가 이모씨(52.여)의 핸드백을 훔쳐 달아나는 것을 서울 경찰청 도범계 서정표(38) 경사 등 사복경찰관 3명이 뒤쫒았다. 서 경사 등은 범인들을 가로막고
![]() |
격투를 벌이다 범인이 휘두른 회칼에 한차례 찔려 그자리에
쓰러졌다.
이때 인근 가게에서 선배들과 함께 악세서리점을 하던 이근석(당시 24. 서울 동작구 상도동)씨는 경찰관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곧바로 뛰쳐나가 범인들과 맞섰다. 중학교때 유도를 한 이씨는 키 1백 77cm, 몸무게 1백 10kg의 건장한 체구로 칼을 든 범인의 어깨를 뒤쪽에서 낚아채는 순간 범인이 한바퀴 돌며 이씨의 배를 찔렀다.
당시 현장에서는 수십명의 행인들이 있었지만 이씨처럼 범인을 잡으려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씨는 곧바로 인근 백병원으로 옮겨져 복부 봉합수술을 받았으나 출혈이 심해 같은날 오후 10시 40분쯤 끝내 숨을 거뒀다.
◈이근석씨는 누구?
=서울 중대부고를 나온 이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잠시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선배들과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응점(당시 58. 작고)씨의 3남중 막인 이씨는 서울 명문대학을 졸업한 형들과는 달리 리어카 행상길에 나섰다고 한다.
아들이 처음 리어카를 끌고 길거리로 나서자 어머니 안경자(당시 56)씨는 성당에 나가 아들의 무사기원을 빌고 가끔 가게에 나와 말없이 둘러 보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웬만큼 사는 집안의 막내였지만 이씨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며 장사를 성실하게 했고 이같은 친절함때문에 단골손님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평소 길가다 싸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리곤 했고 연말이면 팔다 남은 옷가지를 고아원과 양로원에 선사하는 천사같은 사람으로 인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씨는 특히 칼에 찔려 병원으로 실려가면서도 '부모님이 걱정하실테니 집에 연락하지 말라'고 동료들에게 당부, 부모들을 더 걱정하기도 했지만 끝내 상처가 깊어 숨졌다.
◈ 이근석씨 가족들 그후?
= 이씨의 의로운 죽음이 알려지자 당시 김영삼대통령과 이수성 국무총리등은 유족에게 조화와 위로금을 전달했고 조순 서울시장과 이필우 서울경찰청장, 이규증 국민은행장등 각계 인사들도 빈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씨의 용기있는 행동을 기리기 위해 장례를 구민장으로 할 것을 유족에 제안했지만 유족들은 이를 거절하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렀다. 이씨의 시신은 명수대 성당 교유와 친구등 50여명이 키져보는 가운데 경기도 벽제에 있는 서울시립장제장에서 화장됐다.
아버지 이응점씨는 그후 막내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다가 1년뒤 끝내 유명을 달리했고 어머니 안경자씨는 지금도 성당을 다니며 아들을 추모하고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두 형은 각각 직장생활과 해외 연수중이다.
가족들과 친지들은 매년 1월 10일 오후 명동 추모비 앞에서 간단하게 이씨를 기리는 추모 행사를 갖고 있다.
◈ 범인들은 어떻게 됐나?
= 소매치기를 하다 뒤쫒던 시민 이근석씨를 흉기로 숨지게한 범인들은 모두 사건발생 20여일만에 모두 검거됐다. 특히 3인조 소매치기 범인중 윤모(29)시는 범행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다 전남 담양군 남면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수면제를 먹고 동맥에 상처를 낸 채 자살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범인들은 대담성을 키우기 위해 필로폰을 투약한 채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줬다. 결국 이들은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노컷뉴스 박혜상 인턴기자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노컷뉴스 2006-01-11 09:41]
'♡PINAYARN™♡ 【TODAY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DAY 스크랩】 양희경 "사실 2002년 재혼" 힘겨운 고백 (0) | 2006.01.11 |
---|---|
【TODAY 스크랩】 [2006 연령대별 재테크전략] 나이에 맞춘 특화상품 찾아 (0) | 2006.01.11 |
【TODAY 스크랩】 창녀인가 성녀인가… 왜곡 있다면 누가 왜 (0) | 2006.01.11 |
【TODAY 스크랩】 부동산시장 꿈틀?..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폭 확대 (0) | 2006.01.11 |
【TODAY 스크랩】 ''투사부일체'' TV겹치기출연 눈총 (0) | 200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