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패션】

안경없이 못살아, 정말 못살아

피나얀 2006. 1. 22. 14:37

 


 

 

 


[한겨레]

 

 라섹 수술과 바꿀 수 없는 ‘프레임 악세사리’의 즐거움
단조로운 금테·무테 대신 뿔테 유행… 얇으면 차분, 투박하면 펑키

 

▣ 심정희/ 패션 에디터

 

안경이라는 사물이 인간의 신체적 결함(혹은 부족함)을 보완해주기 위한 생겨난 도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안경을 착용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그야말로 특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안경이 무엇인가?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 사용하는 교정기구나 고르지 못한 치열을 바로잡기 위한 치아 교정틀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남에게 알려서 그다지 좋을 것 없는 자신의 약점을 겉으로 드러내는 물건이 아니던가?

 

내 나이 열한 살, 안경잽인 시집못가?

 

“너도 해. 진짜 좋아.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딱 떴는데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선명하게 보일 때의 기분이란! 안경을 찾느라 손으로 머리맡을 더듬을 때마다 느껴지는 초라한 기분을 더 이상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상상해봐!”

 

선배는 벌써 한 시간째 라섹 수술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콩밭, 아니 ‘안경밭’에 가 있다. 백화점 안경 코너에서 보았던 잠자리처럼 동그란 모양의 검은 뿔테 안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45만원? 너무 비싸지? 그래도 예쁘긴 해. 에이, 말자. 지난번에도 50만원이나 주고 사놓고 몇 번 끼고 말았잖아. 아냐. 그건 프레임이 너무 작았어.

 

이건 오래오래 잘 끼고 다닐 수 있을 거야. 에이, 사지 뭐. 45만원 없다고 어디 세상이 무너지나!’ 선배는 마치 라섹 수술 홍보대사라도 된 것 같다. “야, 수술하라니까. 나 아는 병원이야. 싸게 해주라고 말할게.” “얼마? 200? 돈이 어딨어? 먹고 죽으려도 없어!”

 

한때, 사람들이 안경의 지속적인 존재 가능성을 염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콘택트렌즈 제조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엑시머레이저’라는 공상과학(SF) 영화적인 이름의 수술이 막 세상에 소개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러한 염려야말로 쓸데없는 노파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존재 가능성마저 위태롭던 그때, 아이러니하게도 안경의 전성기가 시작됐던 것이다.

 

엑시머레이저나 라식 수술 같은 시력 보정술의 발달은 불완전한 시력이라는 신체적인 결함을 약만 먹으면 언제든 나을 수 있는 감기처럼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기능적인 목적에서 안경의 필요성은 감소됐다. 반면, 사람들은 액세서리로서 안경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안경은 이제 더 이상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신체적 결함을 보완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한 사람의 외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액세서리였다. 몇 년 전부터 트렌드 리더들 사이에서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몇 개의 안경을 구비해놓은 다음, 그날그날의 옷차림에 따라 바꿔가며 착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옷을 입은 모델들에게 안경을 씌움으로써 독특하고 스타일리시한 패션쇼를 완성시키기도 했다.

 

 


 

내 나이 열한 살. 처음으로 안경을 맞춰 끼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랄랄라랄랄라” 하는 만화 주제곡이 절로 흥얼거려졌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눈을 위로 치켜떴다 아래로 내렸다 했던 기억도 난다. 신기했다. 안경 렌즈를 통해 시신경으로 들어오는 사물들과 렌즈를 투과하지 않고 직접 시신경에 와 닿는 사물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컸다.

 

안경이 끼고 싶어서 매일같이 엄마가 보지 않는 틈을 타 TV 브라운관에 눈을 바짝 붙이고 있곤 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던 내 기분과는 관계없이 그날,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칠판 글씨가 안 보여서 공부를 못한다 캐쌌는데 우얍니꺼. 즈그 반에서 눈이 제일 나쁘다 카드마는.” “누가 안경 맞춰줬다고 뭐라 카나. 아 눈이 저래 나빠질 때까지 니는 집에서 뭐했노? 안경잽이 가시나가 어데 시집이나 가겠나? 어이?”

 

시력 보정용에서 상류층의 사치품으로

 

거짓말 같지만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자식 셋 모두가 안경을 쓴다는 이유로 아버지에 비해 시력이 좋지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시절, 기억력 나쁜 선생님들이 이름 대신 “어이! 거기 안경잽이!”라고 우리를 부르던 시절, 그리고 한 인기 가수가 시력 보정을 위한 것이 아닌, 순전히 미관상의 이유로 알 없는 안경을 끼고 다닌다는 사실이 연예 프로그램의 뉴스거리가 되던 시절.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3세기 후반 무렵, 이미 사람들은 시력 보정을 위해 안경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니 안경의 역사 앞에 ‘유구하다’라는 단어를 붙여주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 유구한 시간 동안 안경은 마치 조울증 환자의 심리상태처럼 급격한 위상의 변화를 겪어왔다. 어떨 때는 책을 사랑하는 모든 학자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대접받았는가 하면(13~14세기), 또 어떤 때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착용한 사람의 신분과 재력을 나타내주는 도구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안경의 제조 기술 측면에서나 그것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의 측면 모두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싸구려 안경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한편으로 상류층 사람들은 상아나 가죽, 또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고가의 안경을 착용했다. 이 시기의 상류층들에게 안경은 훌륭한 액세서리가 되어주었는데, 그 사치 정도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안경 케이스에까지 보석을 박았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굳이 역사 속의 기록을 들춰내지 않아도 우리는 몸소 안경의 위상 변화를 체험하지 않았나. 결혼 적령기가 되려면 족히 15년은 더 있어야 할 딸이 안경을 끼게 되었다는 이유로, 혹여 그 안경이 딸의 결혼에 장애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던 아버지 세대와 안경을 끼지 않을 수 있는 길(콘택트렌즈를 끼거나 라섹 수술을 받는 것 등)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미관상의 목적으로 안경을 고집하는 젊은 세대가 함께 2006년이라는 시간 위에 공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야흐로, 지금이 안경의 전성시대라는 것은 알겠는데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귀띔해주고 싶은 말은 “트렌드에 발맞추되 트렌드를 완전히 무시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좇아야 할 트렌드란 이런 것이다. 액세서리로서 안경의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고 100% 활용하는 것. 비범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가급적 유행하는 소재나 디자인을 따르는 것.

 

한때 지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금테를 비롯한 금속 프레임과 깔끔한 느낌을 주는 무(無)테는 유행이 지나갔다. 플라스틱이나 짐승의 뿔, 혹은 플라스틱과 비슷한 형태를 띠지만 강도는 훨씬 뛰어난 신소재 등으로 만들어진 뿔테 안경이 요즘엔 인기다. 지난 가을까지는 ‘잠자리 안경’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모양이나 타원형 프레임보다 직사각형 프레임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요즘엔 전형적인 직사각형에서 벗어난 디자인의 프레임들도 자주 눈에 띈다.

 

윗부분은 직선적인데 아랫부분은 둥근 형태를 띠는 것들 말이다. 뿔테 안경을 고를 땐, 크기가 작고 프레임의 두께가 얇을수록 차분하고 깔끔한 느낌이 나는 반면, 프레임 모양이나 두께가 투박할수록 펑키하고 캐주얼한 느낌이 강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고를 것.

 

 


 

스무 개든 서른 개든 얼굴과 맞춰보라

 

간혹 “저에게 어울리는 안경은 어떤 걸까요?”라고 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들이 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야말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써보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안경을 골라낼 수 있는 사람, 남이 쓴 것을 보지 않고 어울리는 안경을 추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사각 프레임이 유행한다고 무조건 사각 프레임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다.

 

전반적으로는 트렌드를 따르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트렌드를 완전히 무시하라. 아무리 안경을 쓰는 것이 트렌드라고 해도 당신의 얼굴형에 어울리지도 않는 안경을 쓰는 건 안 쓰느니만 못하다. 얼굴형에 따라 어울리는 프레임의 형태는 변수가 많아 팁을 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얼굴이 각진 사람에게는 둥글거나 부드러운 타원형이(그중에서도 끝부분이 살짝 위로 올라간 것이 좋다),

 

둥근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각형의 프레임이 잘 어울린다. 광대뼈가 튀어나와 강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면 프레임이 지나치게 작거나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안경을 고를 땐, 주저하지 말고 스무 개든 서른 개든 써보는 것이 좋다. 이것저것 써보면 자신의 얼굴형에 어울리는 안경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고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얼굴형의 문제점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나는 점찍어둔 안경이 잘 있는지 보러 간다. 가는 길에 ‘안경찬가’나 좀 흥얼거려볼까. “튀어나온 광대뼈와 사나워 보이는 외꺼풀 눈을 가려주는 안경! 납작한 콧대와 넓은 미간도 가려주는 안경! 스타일리시해지고 싶지만 옷차림에 변화를 주기 어려운 직장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도 안경!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하는 직업(가령 패션 에디터 같은)을 갖고 있지만 차려입기는 귀찮은 이들이 간편하게 스타일리시한 인상을 완성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안경!”

 

이 무슨 시답잖은 노래냐고? 뭐 어때서? 누군가는 김치 없으면 못 살겠다고 노래도 하드만(“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안경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라고 노래하지 말란 법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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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1-17 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