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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천수만 ‘새조개
축제’
무작정 바닷가로 떠났습니다. 가는 겨울이 아쉽기도 하고, 행여 오는 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충남 홍성군 남당항에 당도하니 서해 천수만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은 겨울 바다가 평화스럽게 출렁입니다. 때마침 올해 ‘새조개 축제’ 날짜가 결정돼 남당리 어촌계가 조금은 들뜬 표정입니다.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는 새조개는 양식이 안 돼 금값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어황이 좋지 않아 값이 더 뛸 수밖에 없을 거랍니다.
이 때문에 남당리 주민들은 벌써 열었어야 할 축제를 보름이나 미뤘답니다. 축제 결정 하루 전에도 주민들 사이에서 “외지인들에게 바가지 인상을 줄 바에야 차라리 축제를 포기하자”, “한 해라도 거르면 외지인들이 새조개 축제를 잊을지 모른다”며 티격태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올해는 거의 이문을 보지 말자”는 것이었죠. 새조개 장(오는 24일부터 달포가량)이 서는 동안 지난해 수준인 ㎏당(껍데기 제외) 3만5000원선을 지키기로 결의한 상태입니다. 도매상들이 끝까지 가격을 지켜 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새조개는 ‘귀족 조개’답게 맛을 따를 조개가 없습니다. 무, 팽이버섯, 대파 등 야채를 듬뿍 넣고 물이 펄펄 끓을 때 껍데기에서 까낸 조갯살을 적당히 데쳤다가 꺼내 먹으면 신선한 갯내가 입 안 가득 묻어나지요.
이른바 영양 만점의 보양식 ‘새조개 샤브샤브’입니다. 살집이 크면서도 부드럽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것이, 봄의 미각을 돋우는 데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요. 1㎏으로 샤브샤브를 해 먹고 남은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입니다.
왜 새조개냐고요. 조가비는 여느 조개와 똑같이 생겼는데 조갯살이 영락없는 새부리 모양을 하고 있지요.
남당리에는 130여개의 식당이 있습니다. 바다 쪽으로 ‘파라솔’로 불리는 천막 식당들이 줄지어 있는 게 인상적이죠. 몇몇 식당에서는 새조개 샤브샤브에 커다란 개조개를 넣어 그윽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을 우려내기도 한답니다.
주꾸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요즘 한창 제철이어서 알이 가득 밴 주꾸미 요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남당리 어촌계 신건식(53) 계장은 “천수만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남당리는 복 받은 동네”라고 말합니다. 그가 15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뼈 묻을 각오로 사는 것도 어족자원이 풍부한 천수만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발길을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천북항으로 돌렸습니다. 버스를 타면 광천을 거쳐야 하고 버스 시간도 맞지 않아 걷기로 했습니다. 길은 천수만을 끼고 두 차례나 굽이돌아 나 있지요. 호젓한 뚝길에 갯바람이 상쾌합니다. 배낭을 멨지만 발걸음은 마냥 가볍습니다.
갑자기 방파제 어딘가에서 트럼펫 소리가 흘러나와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길가에 빈 구급차 한 대가 서 있고, 방파제 아래서 40대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청바지 차림으로 끝없는 바다를 향해 트럼펫을 부는 모습이 보입니다. 곡은 추억의 영화 ‘대부’ 주제곡이었습니다.
가슴이 아련해 옵니다. 구급차 운전사로 보이는 그의 낭만이 천수만에 울려 퍼집니다.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데도 애잔한 트럼펫 소리가 귓전에 맴돕니다.
바다 위 수평선을 바라보고 가다가 문득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니 길가 밭 이랑이 파릇파릇합니다. 붉은 황토를 힘차게 밀어내고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제법 봄나물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에게 겨울 바닷가 풍경은 도시 생활의 찌든 때를 씻어 줍니다. 몸은 대자연에 취해 선계를 거니는 듯합니다.
승용차로 5분이면 닿을 곳을 도보로 40여분 걸려 도착한 천북항에는 산 밑으로 굴구이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항구에는 고깃배들이 힘든 하역작업을 끝냈는지 달고 곤한 잠에 떨어졌습니다. 굴구이는 굴을 껍데기째 구워 속살을 까먹는 천북 지역의 별미랍니다.
이집 저집에서 “탁 탁 탁” 굴 껍데기 터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한 대야(2만5000원)면 네댓이 족히 먹을 수 있는 분량이고, 굴밥(6000원)이나 굴칼국수(3000원)를 곁들이면 더 없는 포만감을 느끼죠.
빨간 연탄 불 위에서 구워지던 굴이 어느새 익었는지 향기가 진동합니다. ‘바다의 우유’라더니, 입 안에 넣으니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그만입니다. 여기저기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굴구이를 초고추장에 찍어 서둘러 입으로 가져갑니다.
천수만 기름진 갯벌에서 자란 싱싱한 굴을 먹으려고 멀리 인천에서 왔다는 두 쌍의 부부가 술을 권하며 다정스럽게 굴을 까 줍니다. 이 땅의 넉넉한 인심을 천북항에서 다시 느껴 봅니다.
남당항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대나무섬으로 유명한 죽도가 있고, 인근 결성면에 만해 한용운 생가, 갈산면에 김좌진 장군 생가가 있지요. 안면도와 철새의 군무를 볼 수 있는 서산 천수만도 지척입니다. 남당리 어촌계 017-702-5248, 천북면사무소 (041)641-8716.
글·사진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 찾아가는 길
남당리를 가려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홍성나들목으로 빠져 나가고, 천북으로 가려면 광천나들목으로 나간다. 나들목에서 목적지까지는 승용차로 30여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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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세계일보 2006-02-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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