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고운 임 바삐 오셨네

피나얀 2006. 2. 25. 18:33

 

 

[중앙일보 성시윤]

 

"금둔사에 홍매(紅梅)가 피었다." 순천에서 온 전언을 듣고 허겁지겁 배낭을 꾸렸다. 섬진강 줄기 따라 요란스러운 꽃잔치가 벌어지기 한발 앞서 먼저 봄을 알리는 게 금둔사 매화다. 어김없이 오고 가는 계절이건만 꽃 소식에 가슴 뛴다 해서 경망하다 흉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암사.송광사 등 순천의 이름 굵직한 절에 비하면 금둔사(金屯寺.전남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는 자그마한 절이다. 절집 건물이라곤 네다섯 채 정도다. 이른 아침 경내는 텅 비었는데 가끔 울리는 풍경(風磬) 소리가 그윽하다.

 

매화를 찾아 돌아다니다 등짐 가득 나무를 진 노스님을 요사채 앞에서 마주쳤다. 차 좋아하기로 유명한 지허 스님이다. 인근 선암사의 주지 임기를 마치고 2005년 4월부터 이곳에서 홀로 지낸다.

 

"매향(梅香)을 맡으러 왔다"는 인사에 스님이 앞장을 서준다. 금둔사 경내에 매화나무는 모두 다섯 그루다. 설선당(說禪堂) 왼편에 두 그루, 대웅전 오른편에 두 그루, 유리광전(瑠璃光殿) 입구에 한 그루가 서 있다.

 

여기 매화나무는 인근 낙안읍성에 있던 600년 된 노목에서 씨를 얻어다가 1983~85년에 지허 스님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씨를 수십 차례 얻어다 심었는데 그중 다섯만이 뿌리를 내렸다. 원래 음력 12월에 피어 '납월매'라고 하는데 이곳에 옮겨심은 것은 부실한 탓인지 음력 12월을 넘기고 핀다. 낙안읍성의 어미 나무는 지금도 있을까.

 

"조씨 성 가진 사람이 나무 주인이었는데, 그이가 세상 뜨고 나서 몇 년 뒤에 나무도 시들어 죽었어요.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더니 매화가 꼭 그래요. 꽃이 신하인지 사람이 신하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아직 꽃망울을 달고 있는 상태인데 볕이 잘 드는 유리광전 입구의 나무에서 먼저 매화 세 송이가 터졌다. 신기하게도 한 가지에서 난 것들이다. 설선당의 옆 나무에도 두어 송이가 폈는데 새가 건드린 탓에 땅에 떨어졌다. 겨우내 매화 가지를 손질해 주었는데 새들이 꽃을 따 먹으니 스님도 안타까웠나 보다. 새들 먹으라고 돌담 위에 과자 부스러기를 뿌려줬는데 그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정말 꽃이 신하인지 사람이 신하인지 모르겠다.

 

'아프게 겨울을 비집고 / 봄을 점화(點火)한 매화/ 동트는 아침 앞에/ 혼자서 피어 있네/ 선구(先驅)는 외로운 길/ 도리어 총명이 설워라' (이호우 '매화')

 

분홍잎을 펼친 홍매는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거리는데 그 모습이 앙증맞다 못해 애처롭다.

그러니 군락 같은 장관을 기대하고 여기 온다면 실망하게 마련이다. 원래 매화의 감상은 눈보다 코라 했던가. 향이 가장 진한 때는 오전 9~10시라 한다. 금둔사 경내에선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코도 귀도 즐겁다.

 

"아름다움의 완성은 무(無)로 돌아가는 데 있어요. 꽃도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죠. 하지만 향은 영원해요. 향은 원래 매화의 것이 아니죠. 일시적으로 매화라는 것에 담겨 있을 뿐이에요. 향이 담길 만한 조건을 매화가 만들어낸 것뿐입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이해할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홍매에서 눈을 떼 주변을 둘러보니 금둔사는 금전산(金錢山.667m)이라는 명산 품에 안겨 있었다. '금전'은 500나한 중 한 명의 명칭인데, 금전산에는 500나한을 연상케 하는 기암들이 곳곳에 솟아 있다.

 

유리광전 입구에 동그마니 앉아 꽃을 바라본다. 선구는 외롭지만 따르는 벗이 있는 법. 점심을 넘긴 햇살이 따스했는지 세 송이 외에 추가로 두 송이가 또 꽃잎을 펼쳤다. 이 주말이면 얼마나 많은 꽃망울이 하늘 향해 꽃잎을 열지 모르겠다.

 

순천 글.사진=성시윤 기자 copipi@joongang.co.kr

 

*** 여행정보

 

■ 금둔사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 → 낙안읍성 향해 857번 지방도로 따라 11.1㎞ 진행→ 금산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7㎞ 더 가면 절 이정표 나옴.

 

■ 인근 볼거리=금둔사에서 낙안읍성 민속마을(061-749-3347)까지 불과 2㎞ 거리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석성과 동헌·초가 등이 원형대로 보전돼 있는 사적지다. 내부에 사람이 살며 민박집과 식당도 많다. 금둔사와 낙안읍성 사이에 낙안온천(061-753-0035)도 있다.

 

■ 대중교통=순천역 광장에서 매일 1∼2회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면 순천시 주요 관광지를 한번에 돌아볼 수 있다. 월∼금요일 오전 9시50분에 1회, 토·일요일 오전 9시40분과 50분에 2회 각각 출발한다. 경유지는 드라마 세트장, 선암사, 낙안읍성,순천만 등이다.

 

주말 오전 9시40분에 출발하는 버스는 선암사 대신 송광사를 들른다. 경유지에서 30분∼1시간 동안 개별적으로 구경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시티투어를 마치고 다시 순천역 광장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5시쯤이 다.

 

현재는 무료로 운영되나 4월부터 유료화될 예정이다. 관광지 입장료 및 중식비는 각자 부담한다. 시티투어 예약 및 순천시 관광 문의는 순천역 광장 관광안내소 061-749-3107, 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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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2006-02-25 0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