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딸 이렇게 키우지 맙시다

피나얀 2006. 3. 2. 22:09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의식을 사회화하는 그릇된 양육방식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개인이 보다 성 평등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양육자의 자세는 어떤 것인가를 찾아보는 ‘아들 키우기’, ‘딸 키우기’에 관한 4개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강시현님은 부모를 위한 성평등 교육기관 ‘새울림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편집자 주>

 

“딸 키우기요? 그전에 딸을 낳았을 때 어땠는지부터 얘기해야겠네요.”

 

딸 키우기와 관련해서는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에 대한 이야기와는 달리 한숨부터 쉬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사례들로 채워진다. 딸을 낳았더니 시모고님이 오셔서 돈을 넣은 봉투를 휙 집어 던져 놓고 갔는데 마치 거지 동냥하듯 해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얘기, 너무 슬퍼서 눈물을 쏟은 남편, 제왕절개로 첫 딸을 낳았는데 배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했다는 시아버지, 이 엽기적인 얘기의 주인공들은 평생 못 잊을 상처가 됐다면서 아직 그 일을 되새기고 있었다.

 

여러 명의 여성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결코 이런 일들이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엽기적인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은 ‘딸’이라는 말과 동시에 ‘상처’를 들쑤시는 것 같은 느낌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탄생부터 환영 받지 못했던 딸, 그 딸을 낳아 인간으로서 모욕을 당했던 어머니들, 그러나 똑같은 상처를 받았는데도 그 이후에 ‘딸 키우는’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딸 기르기와 관련한 부모의 양육방식을 몇 가지 유형 별로 나누어 보겠다.

 

첫 번째는 ‘전통적 성차별’ 유형이다. 딸을 낳으면서 느꼈던 자신의 상처는 어디 갔냐 싶게 부모로부터 받았던 교육방식 그대로를 전수한다. “오빠 밥 차려줘라”, “남동생 물 떠다줘라”, “여자애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못하니, 칠칠치 못하게”, “여자애가 얌전하게 다녀야지, 어딜 뛰어다녀” 등. 딸은 늘 아들 뒤로 밀리고, 아들의 시중을 들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밤 10시 이전에는 반드시 들어와야 하며, 얌전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

 

살이 많이 쪄도 안 되고, 지나치게 똑똑해서 아들 기를 죽여서도 안 된다.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지도 않고, 미래의 남편을 잘 만나야 하며 시집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의 교육을 받아서 얼른 결혼해 아들을 낳는 것이 딸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부모가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표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마음 깊숙이 이러한 생각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2006년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약간 변화된 양상을 보이는 것이 두 번째 ‘성별 구분’ 유형이다. 무조건적으로 여자를 남자 뒤나 아래에 두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으로 받아왔던 설움을 생각해서 딸만은 반드시 커서 직업, 그 중에서도 전문직업을 갖길 바라고 남편에게나 시부모에 당당하게 할 말하며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여성다움, 남성다움이라는 성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딸은 발레, 아들은 태권도”, “딸은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 아들은 씩씩해야 하고”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딸이 직업을 갖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대신 “남편 밥 굶겨선 안 된다”고 덧붙인다.

 

아들이 할 만한 직업과 딸이 할 만한 직업을 구분해서 강조한다. “여자는 교사, 공무원, 약사가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담으며, 결국 딸이 되었으면 하는 전문직업을 몇 개의 직업군 안에 한정시킨다. 딸의 진로에 대해서는 한정적이거나 추상적이고 아들의 진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 어머니는 이제 9살 된 딸에게 끊임없이 앞으로 “약사”가 되라며 세뇌를 시킨다. 그래서 그 아이는 자신의 꿈을 적을 때 ‘자동적으로’ 약사라고 적어 넣는다. 이런 부모들은 자신의 교육방식이 성 평등하다며 자신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유형은 이른바 ‘공주로 키우는’ 유형이다. 딸 낳기를 원한 부모 가운데 상당수가 “순해서, 말을 잘 들을 것 같아서, 크면서 예쁜 짓을 많이 하고 애교를 잘 떠니까, 예쁘게 꾸며주고 싶어서” 등을 이유로 말한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게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이렇게 곱고 예쁘게 키워 공주처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시집 보내는 것이 부모 역할이라 생각한다. 공주처럼 키우는 이유를 “대접 받아봐야 나중에(결혼한 다음에) 대접 받거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여자가 굳이 힘들게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교육 받으면서 자란 딸은 커서 부부간 갈등을 겪게 될 소지가 많으며, 직장에서도 ‘조직인으로서의 감수성과 안목’이 떨어지고 쉽게 일을 포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과연 누가 딸을 부모처럼 공주로 대접해줄 것인가. 해답은 딸이 공주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외모를 꾸미고 애교를 부리는 데 에너지를 쏟는 대신 자기 내면을 살찌우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네 번째 유형은 반대로 ‘여전사로 키우는’ 유형이다. 여성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이라는 인식 하에 딸을 “남자처럼” 키운다. 스스로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소위 ‘여성적인’ 것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장애가 되고 사회에서도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딸은 ‘여성스러운 것’ 근처에 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남자애처럼 머리를 짧게 깎아주기도 하고, 치마를 입거나 머리띠를 하는 등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낸다. 딸만은 얌전하거나 순종적이지 않고, 조금은 거칠게 되더라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사회가 부당하게 부여한 여성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하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가부장적 시각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은근히 다른 여성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종종 “여자들은 저래서 안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란 딸들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긍정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한편 여성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나는 잘났지만” 다른 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명예남성’으로 자랄 가능성도 높다.

 

다섯 번째 유형은 ‘부정’ 유형이다. “너는 결혼 안 해도 된다. 경제력만 있으면 결혼하지 말아라. 결혼은 지옥이야.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 또는 “남자는 다 철이 없고, 일생 여자한테 도움이 안돼. 남자는 다 나쁜 놈이야.”라는 말을 자주 딸에게 한다. 자신이 겪어 온 삶에 대한 후회와 회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들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 라고 하지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 위해 현실이 어떻고, 그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돕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에 대해 쉽게 부정하고 낙담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눈물을 흘리며 신세를 한탄하는 어머니의 모습보다 그에 굴하지 않고 상황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딸에겐 훨씬 좋은 역할 모델일 것이다.

 

요즘은 성 평등의식이 확산되어 예전에 비해 딸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덜 사랑하거나 그래서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성차별적인 교육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들하고 똑같이 사랑하는 데 웬 차별?”하며 회피하게 되는 면도 있다. 과연 딸을 아들만큼 사랑하면 그것으로 되는 걸까?

 

여전히 ‘여성은 ~야 한다’는 성 고정관념, 성 역할의식은 뿌리깊이 자리잡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한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부정하거나 혹은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부족하다. 딸에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도 함께 가르치지 않으면 혼돈과 자기 부정 속에서 헤맬 지 모른다. 그러니 그저 ‘자식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성 평등한 시각을 갖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새울림 교육센터: arte2@naver.com, 031-815-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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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강시현 기자

출처-[일다 2006-03-02 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