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향긋한 봄 손님 … 소쿠리 한가득

피나얀 2006. 3. 17. 18:29

 

 


 “엄마가 어릴 적엔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을 보면 봄이 오는 줄 금방 알 수 있었단다. 어느 날 겨우내 먹던 김치찌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파릇파릇한 달래무침이 등장하지. 그리고 그날은 콩가루를 묻혀 끓인 냉이국도 함께 올랐단다.” “요즘은 겨울에도 슈퍼마켓에 가면 달래랑 냉이가 있던데….”

 

“그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지. 이 냉이 냄새 좀 맡아봐라. 진하지 않니?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는 향부터 다르단다.” 찬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의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노지에서 나물을 캐며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대화다.

 

"흔히 봄나물 봄나물 얘기하지만 제 맛을 내는 노지 나물을 맛볼 수 있는 때는 요 며칠밖에 안 된다."

"나는 아직 나물이 별로 맛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엄마도 너만할 때는 그랬지. 그렇지만 이제는 봄이 오면 늘 그립고 생각나는 게 봄나물이 됐단다. 쑥을 넣고 끓인 콩 쑥 죽, 튀김옷 입힌 따뜻한 냉이 튀김…. 생각만 해도 입맛이 도네. 오늘 열심히 따서 집에서 만들어 먹자."

 

노지 나물에 비타민 훨씬 많아

 

어머니의 나물 사랑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더니 전통음식연구가 윤옥희씨다. 봄바람도 쐴 겸 과년한 두 딸(채진주.하윤지)을 데리고 나물 나들이 나왔다고 한다. 사실 진주는 친딸, 윤지는 진주의 친구다. 둘이 어릴 적부터 양쪽 집을 오가며 가깝게 지내 남들에게 소개할 때는 딸이라고 한단다. "저는 주워온 딸이지요." 윤지의 말에 까르르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요즘이 일 년 중 신체 리듬의 변화가 가장 심한 때. 활발한 신진대사를 위해 비타민의 소모량이 겨울보다 약 3~10배가량 늘어난다. 졸음이 몰려들고 입맛이 떨어지는 것도 비타민 부족 때문이다. 이때 꽁꽁 언 대지를 박차고 나온 노지 나물만한 게 없다.

 

향.맛 살리려면 파.마늘 피해야

 

"나물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자극적인 마늘이나 파를 피해야 해. 소금이나 국간장으로 살짝 간을 해야 나물의 싱싱하고 담박한 맛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단다."

 

윤씨의 자상한 설명이 이어진다. 쓴맛이 강한 나물은 데친 다음 여러 번 헹구고 떫은맛이 있는 것은 물을 자주 갈아 떫은맛을 충분히 우려내 된장으로 무쳐도 어울린다. 해산물 등과 같이 무칠 때는 초고추장도 좋단다. 데치는 나물은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살짝 데쳐서 가볍게 물기를 짜야 한다. 나물로 국을 끓일 때는 진한 고기 육수보다 해물이나 멸치 육수를 쓰는 게 낫다고 했다.

 

독성 조심 … 생채 요리 때 주의를

 

열심히 냉이와 쑥을 따던 두 딸이 엄마의 맛있는 나물요리 만들기 설명에 연방 고개를 끄덕인다. 손이 분주한 가운데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 주의할 게 하나 있단다." 갑자기 윤씨가 두 딸에게 고개를 돌렸다. 새로 막 돋아나는 싹 나물에 숨어있는 미량의 독성에 대해 가르치려는 것이다. 거친 땅과 바람에 견디기 위한 물질인데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탈을 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나물을 먹고 배탈이나 설사를 하는 게 바로 '탈'이란다. 그래서 신선한 맛만을 고집해 아무 나물이나 생채로 먹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물별로 생채로 먹거나 끓이고 데쳐서 먹는 등 조리법을 달리하는 게 바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지혜에서 유래한 것이군요." 진주가 말을 받았다. 두 딸과 이런저런 나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쑥과 냉이가 한 소쿠리 가득 찼다.

 

안성 글=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노지 나물 vs 하우스 나물

 

요즘 수퍼마켓에 가면 곧고 예쁘게 잘 빠진 나물이 많다. 대부분 하우스에서 대량 재배한 나물이다. 반대로 노지에서 캔 나물은 못생기고 지저분하다. 그러나 맛과 향은 물론 영양도 노지 나물이 월등 뛰어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지 나물은 색이 진하고 향이 강하다.

뿌리가 짧고 잔뿌리도 많다. 모양이나 크기도 일정하지 않다. 반면 하우스 나물은 색이 연하고 곧고 반듯하다. 시골장터에서도 요즘 노지 나물로 둔갑한 하우스 나물이 많다고 한다. 사진으로 봐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 왼쪽이 노지 나물, 오른쪽이 하우스 나물이다.

 

*** 나물 따는 법

 

■'나물 캐기'는 금물

 

나물은 캐는 것이 아니다. 꺾거나 딴다는 개념으로 나물을 채취해야 한다. 뿌리째 캐는 것은 나물을 멸종시키는 행위다. 특히 산나물은 솎는다는 마음으로 어린 순도 놓아두어야 다음해에 또 나물을 딸 수 있다.

 

■ 도구는 손을 쓰도록

 

'캐는 호미'보다는 '자르는 칼'이 낫지만 노지 나물도 가능하면 손으로 따도록 한다. 줄기를 다치지 않게 입만 살살 따면 다음해에도 계속 자란다. 손으로 따려면 목장갑이 필수.

 

■ 발밑 다른 싹 주의

 

나물을 딴다고 다른 새싹이나 순을 죽이면 안 된다. 나물 주변에는 다른 싹이 자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더기 나물을 발견했다고 무작정 땄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땅주인이 상품화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 전문가 동행은 필수

 

노지의 풀이 다 나물은 아니다. 독이 있는 풀도 많다. 자칫 나물로 오인할 경우 가족은 물론 이웃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그래서 오랜 경험이 있는 나물 전문가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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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2006-03-17 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