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공 없이 수백년 강을 넘은 줄나룻배
미로 탐험하듯 99칸 조선 양반집 구경도
올 봄, 섬진강을 좀 더 특별하게 만나 보자.
가능하다면 2박3일 어떨까. 구례나 하동, 광양 매화마을만 점 찍고 오는 게 아니라 구례의 서쪽으로 좀 더 올라간 곡성에서 출발해 섬진강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일정.
시작은 섬진강
기차마을(061-360-8850). 1933년의 풍경을 간직한 옛 곡성역에 들어서자 ‘은하철도 999’에 나올 법한 증기기관열차가 나타났다. 더
기쁜 건, 실제로 타 볼 수 있다는 사실. 부웅~.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덜컹덜컹 옛 전라선 구간을 달린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히기도 한 17번 국도와 부드럽게 흐르는 섬진강 줄기가 내려다 보인다(왕복 요금 어른 5000원·어린이 4000원, 평일 오전11시·
오후2시 출발, 주말엔 4회, 왕복 70분).
증기기관차는 곡성군에서 개발한 ‘관광상품’이지만
호곡나루터에 있는 줄나룻배는 수백년째 그대로 사용되는 교통 수단. 곡성역에서 17번도로를 따라가다 침곡가든에서 왼쪽 강변으로 내려가면 허허로이
떠있는 작은 나룻배가 나타난다.
노도 없고 뱃사공도 없지만 강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한다. 마치 케이블카처럼 강을 가로질러 연결한 줄에 배를 걸어 놨기 때문이다. 8대째 호곡리에 살고 있다는 김창현(75)할아버지. 가방에서 빨간 목장갑을 꺼내더니 줄을 끌어 배에 탔다. “나 태어날 때부터
있었제. 수백년 됐을 것이여. 섬진강에서 여기 딱 하나 남아 있는겨.”
섬진강 지류 보성강에 있는 태안교를 건너 마을로
올라가면 사진작가 임소혁씨가 폐교를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사진 갤러리(섬진강문화학교, 061-363-0269). 임씨가 16년간 섬진강 일대를
돌며 찍은 100여장의 사진이 ‘구름·섬진강·지리산·야생화’라는 4가지 테마로 전시돼 있다.
곡성에서 지리산 아랫 문턱인 구례로 넘어오면 논두렁 사이로 드문 드문 피어난 노란 산수유 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산수유는 뭉쳐야 예쁘다. 노란 꽃에 파묻힌 마을을 보고 싶다면 산동면으로 간다. 산동면 상위마을이 대표적인 산수유마을이지만 좀 더 은밀하고 소박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현천마을로 간다. 산동면사무소에서 왼쪽으로 빠져 작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때묻지 않은 비경이 눈을 홀린다.
19번 국도를 타고 토지면으로 가기 전 들를
곳은 99칸짜리 조선시대 양반집 운조루. 대문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길게 뻗은 기와지붕이 230년 전 당시 양반 가문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집 전체가 문화재이면서 류씨 후손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 이웃집 주민들이 마실 나와 안주인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미로 탐험하듯 집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례의 마지막 코스는 연곡사. 연곡사 가는 길이
더 멋지다. 연인과 함께 있다면 외곡삼거리 입구에서 잠깐 왼쪽을 보시라. 섬진강 지류 연곡천 한가운데 섬처럼 볼록 솟아있는 한적한 소나무 숲이
있다. 정자에 앉아 솔향 맡다 시냇물 보이는 갓길 따라 산책해도 좋다.
광양 매화꽃 축제가 끝나면 강 건너 하동에서
벚꽃 축제가 막을 올린다. 사람들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지역을 오가며 꽃구경하기 바쁘다.
이른 아침, 섬진강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마루
그리워(061-772-7071)를 찾았다. 광양 다압면 무등암 근처에 있는 조그만 카페. 섬진강의 일출·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을 서서히 드러내며 해가 고개를 내밀자 매화가 얼굴을 붉혔다. 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061-772-4066)
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다. 섬진강 물줄기와 하동송림, 매실농원의 3000개 장독이 한 눈에 펼쳐진다.
백운산 동편 자락은 봄의 동선 따라
청매화·홍매화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매화 천지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핀 산수유가 오히려 사진 동호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 축제
분위기를 내려고 일부러 달아놓았다는 형형색색의 연은 어색하기만 하다. 최근 이곳에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이 생기면서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다음은 하동쪽으로 가 송림공원을 둘러볼 차례.
섬진교 옆 강가에 300년 이상 된 울창한 노송이 우거져있다. 현재 일부는 자연휴식년제(2006년 8월 31일까지)로 통행금지지만 후문 매표소
쪽은 반 정도 개방해 놓은 상태(입장료 1000원). 공원 앞 섬진강변엔 흰 모래톱이 펼쳐진다. 강변 ‘로댕벤치’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맞은 편
무등산 무등암의 목탁과 불경소리가 들린다.
간 김에 인근 하동공원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날씨 좋으면 남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 길 양쪽으로 벚꽃이 늘어서있는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소설 ‘토지’ 속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누군가 앙칼진 목소리로 주인공 서희의 명대사 “찢어죽이고 말려 죽일테야”를 흉내 내
한바탕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참판 댁 대문을 열어젖히면 멀리 악양 들판과 섬진강의 봄이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참판댁 구경보다 인근에서 봄나물 캐는데 열중인
관광객도 더러 있다. 화개약수터도 명소.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 화개천 한 가운데 돌바닥에서 유황천이 나온다. 인근 사찰 스님들이 단체로 나와
약수를 떠 마시는 풍경이 재미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 쌍계별장(055-883-1665)은 쌍계사 아래 90년 된 고택. 암자처럼 고즈넉하다.
주인 윤석우씨는 ‘편리한 것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이곳에 오면 실망을 많이 할 것이니 알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곳. 객(客)에겐 시골집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랑방을 내어 준다(1박에 3만원~4만원). 군불을 때 난방 하기 때문에 3~4일 전 예약 필수.
일명 ‘영호남 화합의 다리’로 불리는
남도대교를 건너 861번 지방도를 타고 섬진강 물줄기의 종착역 망덕포구에 이르렀다. 강 주변에 있던 참게탕, 재첩국집이 횟집으로 바뀌는 풍경.
바다와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10월 전어 축제 때면 흥청거리는 포구가 지금은 좀 썰렁하다. 일몰 시간대에 맞춰 태인대교에 도착하면 가슴 속까지
‘짠하게’ 물들이는 석양을 만날 수 있다.
(글=곡성·구례 류정기자 [ well.chosun.com])
(하동·광양 여성조선 박근희기자 [ yaya.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adamszone@chosun.com )
(김승완기자 wanfoto@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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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2006-03-23 09:06]
<한국 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출처-[조선일보 2006-03-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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