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든 물.
고향집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구수한 이 음료가 맛과 함께 영양도 높다는 사실을 아는지? 식당마다 인기 후식으로 내놓는가 하면 해외에도 우리
숭늉이 수출되고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하루 중 2끼를 식당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조미료 범벅인 반찬들은 몇 번 먹다보면 질리기 십상. 이럴 때면 어머니가 식후에 내주시던 구수한 숭늉 한대접이 간절해진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 요즘 식당가에서는 후식으로 숭늉이나 누룽지를 내놓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도 전에는 탄음식이라 하여 먹지 않았던 것을 요즘은 일부러 밥을 눌려 숭늉을 만들어 먹는다. 숭늉이 수출길에 나섰다는 얘기도 이미 낯설지 않다. 한국 전통 음료, ‘숭늉’이 그야말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숭늉은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든 물. 밥을 지을 때 일정한 분량의 물과 쌀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가 여분의 물이 없어질 때까지 뜸을 충분히 들이면, 쌀의 갈변현상이 일어나 누룽지가 생기는데 여기에 물을 붓고 푹 끓이면 숭늉이 된다.
숭늉은 고유어처럼 보이나 실은 ‘숙냉(熟冷)’이라는 한자어가 변한 말이다. 우리가 숭늉을 즐기게 된 것은 구들 시설이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라고 한다. <임원경제지>의 숙수(熟水), <계림유사>의 이근몰(泥根沒, 익은 물)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나 중기에 즐겨 마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 소화 촉진, 황산화작용 뛰어나
숭늉은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한국 고유의 독특한 것이다. 천하일품요리라 불리는 중국의 누룽지탕도 있고, 17세기 일본 문헌에 ‘식탕’이라는 숭늉 비슷한 음식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쌀로 밥을 지어먹는 문화권에 누룽지와 숭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누룽지를 숭늉으로 만들어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고종황제도 밥보다 솥바닥의 누룽지와 숭늉을 즐겼다고 할 만큼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고유의 맛인 것. 그렇다면 똑같은 쌀, 똑같은 솥으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어째서 한국 사람만이 숭늉을 만들어 마셨을까? 이어령 교수는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밥을 푼다는 것은 밥을 짓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이때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밥이 눌지 않게 솥을 개량하거나 눌은밥을 마이너스 현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플러스 요소로 바꾸는 사고의 창조성이다. 일본사람들은 누룽지를 마이너스 요인으로 여겼기 때문에 전기밥솥을 만들어 냈지만, 눌은밥을 플러스로 받아들이려는 중국인은 ‘누룽지탕’을 만들어 냈다. 한국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숭늉을 마시는 풍습을 창조해 냈다.”
예부터 선인들은 숭늉을 ‘맵고 짠 음식을 중화시키고 입 냄새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고 글로 남겼다. 또한 예전에 며느리가 시집가서 좋은 밥과 반찬 모두 시집식구에게 먼저 상을 올리다보니 자신은 제대로 먹을 것도 없어 허구한날 누룽지와 숭늉만 먹었지만 그래도 몸이 허해지지 않았던 까닭은 누룽지와 숭늉에 워낙 영양가가 많아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수한 맛에서 오는 추억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숭늉에는 어떤 영양효과가 있을까?
숭늉의 원료가 되는 누룽지는 밥이 솥바닥에 눌러 붙어서 만들어진 것. 그래서 대부분의 영양소는 밥과 비슷하다.
숭늉에 들어있는 가장 많은 성분이 탄수화물로, 탄수화물은 단당류, 이당류, 다당류로 분류된다. 다당류로 된 음식을 섭취하면 분해되어 단당류로 변하는데 이 단당류는 소화를 촉진하는 요소다.
누룽지와 숭늉에는 단당류 중 특히 덱스트린성분이 많은데 이 때문에 누룽지를 먹으면 소화가 매우 빨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화불량에 자주 걸리는 사람에게 안성맞춤.
또 숭늉의 에탄올 추출물은 강한 항산화작용을 하여 산성체질을 알칼리성으로 중화시켜준다. 쌀눈에 많이 함유된 성분인 가바라는 신경을 안정시키고 지방분해를 촉진시켜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밥이 익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아래로 몰려 누룽지에 영양가가 많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중에서 나오는 식품 누룽지는 그냥 밥을 돌판에 펼쳐서 누린 것으로 밥을 하는 과정에서 밑에 영양분이 몰리며 생기는 누룽지와는 좀 다르다.
이런 소화효과와 항산화작용 탓에 요즘은 한식코스에서 숭늉이 후식으로 빠지지 않는다. 음식의 전체 구성을 볼 때 육류보다는 야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 따뜻하면서 구수한 숭늉은 우리 식으로 입맛을 개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누룽지나 숭늉 역시 음식이 탄 것으로 몸에 유해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식품영양학과 교수들은 “밥이 타면 일부 발암물질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고기가 탈 때 발생하는 다이옥신 등에 비한다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면 태운 부분은 숭늉 끓이기 전에 들어내는 게 좋다”고 전한다.
# 식사대용?다이어트식으로도 인기
숭늉은 끼니 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박인로의 소설 <누항사>에 보면 ‘빈 배 속엔 숙랭(숭늉) 뿐’이라는 말로 가난을 표현했다. 밥이 없으면 죽을, 죽도 없으면 숙랭으로 배 속을 채웠다는 말로, 배가 고플 때 맹물을 마시기보다 한 그릇의 숭늉으로 요기를 대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숭늉은 혼자 살아서, 입맛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체중조절을 위해서 아침밥을 챙겨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식사대용으로도 유용하다.
가마솥 대신 전기밥솥을 사용하면서 누룽지와 숭늉도 없어지는가 싶더니 최근엔 누룽지 기능이 추가된 밥솥, 누룽지 제과기, 누룽지 프라이팬까지 나왔다. 뿐만 아니라 누룽지 정식이며 누룽지 백숙 전문점이 유행하고 있으며, 누룽지로 만든 과자와 숭늉 음료도 등장하고 있다. 얼마전엔 컵라면 형태의 누룽지탕도 출시됐다.
일부 주부들 사이에선 ‘숭늉가루 만들기’도 유행이다. 돌솥에 쌀과 보리를 섞어 누룽지를 만든 후 모아서 햇볕에 바짝 말렸다가 방앗간에 빻아 보관하다가 그때그때 끓여먹는 것. 대형마트마다 상품이 나와 있지만 영양과 위생을 고려해 직접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맛의 대명사라고 해도 좋은 누룽지와 숭늉. 밥이 덜 눌었을 때는 빛깔이 희끄무레하지만 바짝 눌면 치자빛이 돌고, 마시고 나면 씁쓰레한 뒷맛이 남는다. 숭늉의 참맛은 이 씁쓰레한 데 있다는 게 미식가들의 평가.
바쁜 현대인의 기억 속에 따스하고 구수한 어머니 품과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숭늉이 최근 ‘정서’와 함께 ‘영양식’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제휴사/메디컬투데이(www.mdtoday.co.kr) 이윤원 기자 ‘mybint@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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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쿠키뉴스 2006-03-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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