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여, 올봄 벚꽃놀이를 가시려거든 장성 백양사에 한번 다녀오시라. 백양사 하면 새빨간 단풍이 압권인데, 대체 벚꽃도 있느냐며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사실 단풍이 너무 유명한 까닭에 벚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웬만한 벚꽃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진해 군항제나 쌍계사 벚꽃놀이처럼 사람 몸살을 겪지 않아도 되니 그게 어딘가?. 봄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고찰도 구경하고, 봄볕에 헐거워진 땅을 지긋이 밟고 백양사 암자에 오르며 봄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장성 백양사 벚꽃길은 바로 매표소 앞 옛길이다. 길이는 500m. 벚꽃길은 약간 굽어서 한 번에 다 볼 수 없다. 뻥 뚫린 신작로보다 이런 길이 호젓해서 좋다. 앞에 걷던 젊은 여행자들이 벚나무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고, 벚나무 뒤에서 처마밑 풍경처럼 맑은 목소리가 들리는 이런 봄길이 정말 좋다. 게다가 이 길의 벚나무 중엔 아름드리 고목도 많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수령이 100년 가까이 된다고 했다. 매화도 고매(古梅)가 풋매화와 격(格)이 다르듯 벚나무도 마찬가지다. 나무도 늙으면 꽃은 적다. 늙으신 어머니의 야윈 팔처럼 몸통에 간신히 붙어있는 가느다란 가지. 숱한 풍상을 이겨낸 이런 검은 가지에서 피어난 꽃송이는 작아도 기품이 넘친다.
오래 묵은 벚나무는 만나기 쉽지 않다. 물론 수백년을 이어온 벚나무도 있지만 대개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오래 살지 못한다. 허리가 제법 굵어보여도 100년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이야 조물주가 정한 자연의 섭리. 허나, 벚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래 못사는 것은 너무도 화려한 꽃을 봄마다 피워대니 수령이 짧은 것이 아닐까’란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백양사 길은 값지고 소중하다.
절에 피는 꽃들은 다 의미가 있다. 선운사의 가을 꽃무릇은 탱화의 소재로 쓰였고, 대웅전 앞에 많이 보이는 배롱나무는 부처에 바치는 꽃을 의미한다고 한다. 꽃이 제물인 셈. 그렇다면 절앞에 벚나무를 심은 까닭은 무엇일까? 때론 벚꽃이 극락을 상징한다. 옛날엔 절에 피는 벚꽃을 두고 ‘피안앵(彼岸櫻)’이라고 했다.
세상근심을 잊고 극락을 생각하게 하는 꽃이라…. 벚꽃은 실제 그런 힘이있다. 하늘을 가린 벚꽃길을 걷다보면 속진의 세상을 잠시나마 잊는다. 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흩어질 땐 마치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세상에 필 때도 질 때도 다 아름다운 것은 벚꽃과 매화 뿐일 것이다.
백양사에서 하나 더 눈여겨 봐야할 꽃이 있다. 주차장 앞 관광식당거리 뒤편에 있는 산목련이다. 알록달록한 식당의 간판때문에 눈에 거슬리지만 산목련은 곱다. 그늘진 산자락의 ‘은목련’은 수십그루에 불과하지만 옛날 비단처럼 은은하다. 짙푸른 침엽수림 속에 있으니 더 눈에 띈다. 백양사 벚꽃과 목련은 4월 중순 만개한다.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도 많이 고치고 법당을 새로 세우긴 했어도, 벚나무처럼 늙었다. 백제 때인 633년 지었다니 1400년 세월 한자리에 터를 박고 서 있다. 총림이란 참선수행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 강원(講院), 계율을 가르치는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로 국내에선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등 딱 5개 뿐이다. 절이 너무 크면 사람을 주눅들게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위압감이 없어 좋다. 들머리 2층 누각인 쌍계루와 연못도 다른 사찰에선 볼 수 없다.
백양사에 가시거든 약사암에 한번 올라보시라. 약사암은 백양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백양사 전망대쯤 된다. 길도 호젓하다. 아직 부토로 돌아가지 못한 낙엽이 뒹구는 숲길을 지나 약사암까지는 20분 정도. 여기서 바라보는 백양사는 마치 미니어처처럼 작고 앙증맞다.
이제, 천지사방이 꽃으로 번질 것이다. 서울도 며칠새 벚꽃이 필 게다. 1년에 딱 한 번 꽃에라도 눈길을 주고 살자. 세상에 벚꽃도 볼 틈이 없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불행한가.
▶여행길잡이
백양사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빠진다. 담양 방면으로 9.6㎞를 달리다 장성 북하면 소재지에서 891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면 백양주유소. 주유소 맞은편 길로 4㎞ 정도를 더 달리면 백양사다. 내장산관리사무소(061-392-7288). 용산역에서 백양사역까지 기차가 다닌다. 백양사역에서 백양사까지는 12㎞ 정도 떨어져 있다.
백양사 앞에 백양관광호텔(061-392-2114)과 백운각(061-392-7531) 등 여관이 있다. 백양사 관광단지 앞에는 정읍식당(061-392-7427) 등 산채백반집이 많다. 반찬이 20~30가지 나온다. 값은 8,000원. 우리테마(02-733-0882)가 백양사와 고창읍성 벚꽃여행 상품을 판다. 8·9·12·15·16일 당일 일정. 4만원.
〈장성/글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경향신문 2006-04-04 15:30]'♡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문사의 매력은 새벽예불만이 아니다 (0) | 2006.04.06 |
---|---|
4월, 진분홍 꽃바람 속 향긋한 봄 즐기기 (0) | 2006.04.06 |
동남아 기차여행 어때요? (0) | 2006.04.04 |
동남아 각국 ‘찍는’여행 코스짜기 (0) | 2006.04.04 |
여의도는 벚꽃의 향연…8일부터 벚꽃축제…700만명 이상 찾을 듯 (0) | 2006.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