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TODAY 스크랩】

【TODAY 스크랩】‘주의사항’ 홍수시대를 사는 법

피나얀 2006. 4. 7. 21:20

 

 


우리는 매일 무엇이든 상품을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무심코 포장지를 뜯고 제품을 사용한다. 포장지 안에 첨부된 사용설명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버린다. 그 설명서의 주의사항에는 얼마나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아는가.

 

소심녀 A양의 하루 생활을 따라 주의사항을 들여다보자.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녀. ‘침대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를 접했다. 양치질을 위해 칫솔 포장을 뜯는 순간 ‘심하게 문지를 시 잇몸이 상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안내문이 팔목의 힘을 뺀다. 어디 그뿐인가? 헤어드라이어를 켜는 순간 ‘감전의 우려가 있으니 주의’하란다.

 

겨우 출근 준비를 끝내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중량 초과시 추락 위험이 있다는 경고. 버스 안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온통 ‘주의해야 할 사항’투성이다.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른 테이크 아웃 커피점의 종이컵에는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친절한 주의사항. 휴대폰을 사용하려다 갑자기 떠오른 주의사항.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 간지럼, 습진, 붓는 증상 등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의사와 상담 후 사용하라.” 그렇다면 의사에게 물어보고 휴대폰을 써야 하는 건가?

 

물론 소심녀 A양의 상황은 가상이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 생활을 살펴보면 온통 주의사항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위험에 노출된 정글 같은 삶, ‘문명의 이기(利器)’가 아닌 ‘문명의 무기(武器)’ 속에서 곡예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공급자 위한 면피용 ‘주의사항’

 

휴대폰의 두께보다 더 두꺼운 사용 설명서와 주의사항. 돋보기를 가지고도 잘 해독이 되지 않는 의약품의 깨알같은 글씨의 주의사항. 가시 없는 포장 생선을 팔면서도 ‘가시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황당한 경고문. 손세탁이 가능한데도 구태여 드라이크리닝을 권하는 의류 제품들의 무책임한 주의 표시.

 

대체 소비자들을 위한 주의사항인지 제품 결함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공급자의 면피용 주의사항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과거엔 예사로 넘길 법한 사안이지만 PL(제조물책임)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권리 찾기에 나서게 됨에 따라 기업들도 소송 대응 차원에서 황당하고 장난처럼 여겨지는 경고 문구라 할지라도 붙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2년 7월 PL법이 시행된 이후 제조물 결함에 따른 신체상, 재산상의 손해를 제조사 책임 원칙으로 하면서 사소한 문제로 배상을 요구하는 사례들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품 설명서에 경고 및 주의 사항을 강화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진짜 ‘주의’해야 할 주의사항들

 

 


제조사는 제조물 사용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안전 문제를 구두나 표시 등의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표시에 대한 기준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글씨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거나 화려한 제품 포장에 표시 사항이 가려 미처 소비자가 인지할 수 없기도 하다는 것이 국제 PL센터 백원식 전문위원의 설명.

 

그러나 최근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이 제기되면서 각종 가공식품이나 청량 음료에 들어가는 원재료나 원산지 확인은 필수. 식품의 원재료를 통해 인체 유해여부나 제품의 오염 및 신선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솜방망이’ 주의사항은 가라!

 

여성환경연대의 김선미씨는 각종 제품에 기재되는 표시 사항들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씨는 우리나라 담뱃갑에 표시되는 흡연 경고문은 캐나다에 비해 너무 형식적이라는 것. 캐나다 담뱃갑에는 흡연으로 인한 치명적인 뇌손상 사진을 곁들여 담배에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나라 담뱃갑에는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밋밋한 문자 경고문에 그치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인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 김씨는 또 각종 표시 사항의 용어들이 지나치게 전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을 알기 쉬운 용어로 바꾸어서 게재하거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재료명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유발에 대한 경고나 주의사항을 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량생산, 대량판매 시대가 가져온 카탈로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제품에 대한 사용 설명과 주의가 아닌가 싶다. 과거처럼 무조건 만들면 팔리던 시대는 지났다.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 질서도 재편되고 있다. 더이상 공급자 중심의 편의와 책임 회피를 위한 ‘주의사항’은 자칫 무시되거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는 소비의 이해가 같은 다수의 사람들이 권리의식을 가지고 생산공정 기준을 지키라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소비자 주권시대다. 진정으로 사람을 걱정하고 소비자들이 올바른 소비결정을 하기 위한 ‘주의 사항’에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글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경향신문 2006-04-06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