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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진풍경 펼쳐진 에프게니 키신 독주회>

피나얀 2006. 4. 9. 20:12

 

 

에프게니 키신 독주회


앙코르만 10곡, 커튼콜 30여회 '신기록'

 

놀라운 현상이었다. 4월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예프게니 키신의 첫 번째 내한 리사이틀은 온갖 이례적인 풍경을 선보이며 한국 클래식 공연계의 많은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현존하는 '분더킨트'(신동)가 한창 최전성기일 때 한국을 찾아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기는 했다.

 

공연기획사가 10년 간 공을 들여 성사시킨 이번 독주회는 뚜렷한 홍보없이 입소문만으로 공연 한 달 전에 이미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의 공연 티켓은 심지어 인터넷 경매에 부쳐져 무시못할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공연은 오후 8시부터 시작이었지만 공연장 로비는 이미 6시 즈음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찾아와 행여나 하는 심정에 기웃거렸지만 티켓을 이미 다 팔아버린 것인지 구할 수 없던 것인지, 오늘 공연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던 암표상마저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는 티켓을 구하지 못한 150명 가량의 사람들이 콘서트홀 로비 바닥에 진을 치고 앉아 모니터로 키신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악보나 음반이 들려 있었다. 공연은 보지 못하더라도 사인회에는 참여하겠다는 의도였다.

 

바르톨리며 오터와 같은 바로 직전에 다녀간 스타들의 콘서트와 비교할 때 키신의 관객층은 10대 중반에서부터 40대 중반의 남녀들로 다양한 분포를 보였지만 그 분위기는 다른 두 공연에 비해 훨씬 자유분방하고 젊었다.

 

관객들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연주자가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환호성과 더불어 아낌없는 박수를 쳤으며 이런 분위기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면서도 연주자의 손이 피아노 위에 올라가 있는 동안은 최대한 집중하고 몰입하는, 참으로 훌륭한 관객의 태도를 연출했다.

 

이는 몰려든 관객이 다만 키신의 명성을 듣고 호기심에 찾아온 '허수'들이 아니라 음악을 음미하고 키신의 연주를 알고서 찾아온 진지한 계층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베토벤과 쇼팽으로 이루어진 공연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노출된 키신의 음악성과 개성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구성이었다.

 

특히 키신의 베토벤은 "천재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호연이었다. 두 번째로 연주한 '고별 소나타'도 그랬지만 일반인들에게 익숙치 않은 '3번 소나타 C장조 Op.2-3'은 정말 훌륭한 연주였다.

 

30대 중반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으로 그 역량과 음악성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탄탄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연주는 그 자체로 개성이 넘쳤다.

 

여기에 템포의 유동성, 프레이징, 페달링 그 무엇 하나 흠잡을 수 없고 나무랄 데 없이 자연스럽고, 견고하고, 탄탄했다.

 

반면 2부에 연주된 쇼팽 스케르초 전곡은 훨씬 자유롭고 낭만적이었다. 전 세계 콘서트 고어들을 감동시켰던 빨간 스카프를 맨 신동 시절로 돌아간 듯 그는 순수 한 표정으로 화려하고 박력이 넘치면서 젊음 특유의 낙관주의가 가득한 찬란한 쇼 팽을 들려줬다.

 

이날 최대의 진풍경은 메인 프로그램 이후에 드러났다. 최소 30여 회의 커튼 콜 과 무려 10곡의 앙코르로 이루어진 키신의 소문난 '스페셜 서비스'는 공연 '3부'로 쳐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흥미진진하고 또 가공할 만큼 길게 진행됐다.

 

메인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기립 박수와 열렬한 환호성은 앙코르가 장장 1시간 반이 넘도록 이어질 때까지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키신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펑크 머리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고 객석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는 거의 사이키델릭 조명을 연상 시킬 만큼 현란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자 결국 예술의전당 하우스 매니저들은 관객의 촬영을 제지하는 노력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흥미롭게도 연주자는 이런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겸손한 태도로 한바퀴 빙 돌며 합창석 구석구석까지도 일일이 인사를 하는 키신의 모습은 지칠 때도 되었건만 가면 갈수록 여유가 돋보였다.

 

바르톨리 공연 당시 사인회가 11시까지 이어져 예술의전당 공연장 매니저들을 긴장시켰다지만, 이날 키신의 사인회는 무려 11시 반이 가까워졌는데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열 번째 앙코르와 그 후로도 몇차례 이어진 커튼 콜 후 사인회는 시작되었지만 그 행렬은 너무나 길게 이어져 반대쪽 출입구를 넘어서 야외까지 늘어서 있었다. 사인회는 결국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을 정도였다.

 

무엇이 관객들을 이토록 열광시켰는가. 그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피아니스트이긴 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그는 이런 진풍경과 현상을 경험해왔다. 일본 도쿄 콘서트에서는 무려 14곡의 앙코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최고의 공연을 위해 최적의 조건을 세팅한다. 이번 내한 공연을 위해서 그는 시차적응을 위해 화요일 서울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닷새 동안 내내 연습실과 숙소만 오갔을 뿐 아무런 사적인 여흥을 시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폐기질까지 엿보이는 그의 연습량은 두 살 신동시절부터 이미 전 세계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그런 키신이 온전하게 기쁨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순간은 역시 무대 위 밖에는 없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alephia@hotmai.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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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2006-04-09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