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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상옥 감독, 납북ㆍ탈북ㆍ할리우드행...영화같은 인생역정

피나얀 2006. 4. 13. 21:04

 


52년 영화 ‘악야’로 데뷔한 신상옥 감독은 이듬해인 53년 평생의 배필을 만나게 된다. 당대 최고의 스타 최은희였다. 그녀는 이미 촬영기사 김학성을 남편으로 두고 있었지만 둘의 뜨거운 사랑은 결혼이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들은 이후 배우와 감독으로서 5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한국영화의 아름다운 시절을 이끌었다. 비극은 78년에 찾아왔다. 이해 1월 11일 최은희는 홍콩과의 합작 영화 제작을 위해 홍콩을 방문한다. 당시 국내 모 영화사 홍콩지사장이었던 김모씨의 초청이었다. 최은희는 퓨라마 호텔에 투숙하던 중 도착 3일 후인 1월 13일 갑자기 실종되었다.

 

수사 결과 최은희를 초청한 김씨는 북한 대남공작원이었으며 다른 공작원 이모씨가 최씨를 강제 납치한 뒤 배편을 이용해 황해도 해주로 납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상옥은 같은 해 1월 27일 최씨의 실종 연락을 받고 출국 그녀의 신병을 찾아헤매다 7월 14일 홍콩에 입국한다.

 

그들에게 다시 질긴 운명의 끈이 던져진 것이 이 때였다. 그 역시 5일만인 19일 북한 공작원에 의해 강제 납북된 것이다. 이에 대해 납북인가 자진 월북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신 감독은 당시 노동당 총비서였던 김정일의 지원 하에 총 7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13편의 제작을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신 감독의 영화제작을 위해 ‘신필름영화촬영소’의 설립을 지시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촬영소의 완공을 볼 수 없었다. 인생의 또다른 전환점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묵고 있던 중 감시를 피해 미국 대사관에 은신을 요청함으로써 납북 8년 만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북한 공작원들이 이를 막기 위해 추격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가 북한에서 영화 ‘탈출기’를 연출했던 것이 일종의 복선이었던 셈이다.

 

8년 간의 북한 체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북한 영화계에서의 활동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으나 북한 당국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던 것으로 판단돼 지난 90년 불기소 처분 받았다.

 

북한 체류시 연출한 탈출기는 이적표현물 통보를 받고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의 상영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들의 인생 역정은 96년 뉴욕타임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2000년에는 ‘신상옥의 북한영화 이야기’가 조선일보에 연재되기도 했다.

 

이들 부부의 그늘에 가려져 비운의 사랑을 한 여배우도 있었다. 신 감독의 73년 작 ‘이별’의 주연을 맡았던 오수미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92년 미국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인생을 마쳤다.

 

얼마 전에는 신상옥의 55년작 ‘젊은 그들’의 조감독으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던 박상호 감독이 별세하기도 했다. ‘남남북녀’와 ‘비무장지대’ 등의 연출자로 유명하다. 지난 3일의 일이다.

 

 

 

 

 

 

임희윤 기자(imi@heraldm.com) 사진=배선지 기자(sunji@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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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헤럴드 생생뉴스 2006-04-12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