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패션】

한국화에 한복을 담았나…한복에 한국화를 입혔나

피나얀 2006. 4. 15. 19:51

 

 


[패션뷰티] 미스코리아 민속의상 담당 18년째…한복 연구가 김희수씨

 

한복에 동양화를 담는다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한복연구가 김희수씨는 한번 만난 사람은 잘 기억하질 못한다. 상대성 이론을 창시한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아인슈타인 역시 남의 집으로 퇴근하는 심한 건망증 환자였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김희수씨는 자신의 부족함을 ‘99%의 노력’으로 채우려고 ‘몸부림’ 친다.

 

그래서 그의 탁자 위엔 늘 수백장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 자신을 찾은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함께 사진을 찍어두기 때문이다. “참 실례도 많이 했어요. 직업상 늘 많은 사람과 마주치는데 재회했을 때 못 알아보니 너무 미안하잖아요.”

 

많은 패션쇼를 선보였고, 국제무대에 여러 번 상도 탔지만 그의 전공은 디자인이 아니다. 뒤늦게 품은 염색에 대한 관심이 오늘까지 왔다. “결혼하고 첫아이까지 낳고 시작했죠. 결혼이 제 삶의 끝은 아니잖아요. 무엇인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평소 관심을 가져던 염색 공부를 시작했어요. 밤에 아이를 재워놓고부터는 나만의 시간이었죠.”

 

초보적인 기술부터 하나씩 익혀가던 그가 첫 전시를 연 것은 혼자 염색공부를 시작한 지 10년 째인 1983년. 주로 천에 염색을 해서 만든 생활용품들을 선보였다. 독특한 모양에 한국적인 색채를 띤 그의 작품에 사람들은 주목했고,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염색기술을 한복에 접목시키는 것. 더구나 자신의 동양화 전공을 살려 한복 위에 한국화를 그려낼 생각을 했다. “공부하는 게 싫어서 미술을 했거든요.

 

대학 때도 전공보다 국악에 심취해 늘 공연을 보러 다니고 그쪽 사람들을 자주 만났죠.” 그렇다. 그의 관심은 늘 ‘한국성’에 있었다. 그런 성향은 특히 버선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양말 대신 꼭 버선을 신었다. 생활하는데 불편할만도 하건만 그는 버선만 신으면 이상하게도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버선을 벗으면 옷을 다 벗은 기분이었다니까요. 결혼해서도 계속 그래서 버선을 즐겨 신었어요.”

 

첫 한복쇼를 가질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84년 예지원 행사에 초청 받았어요. 당시 1부는 제 쇼였고, 2부는 앙드레 김 선생님이 했죠. 그래서 더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이후 직접 만든 한복 몇 벌을 두고 작은 숍도 열었다. 그림을 새겨넣은 한복은 하나하나 손이 가는데다 한벌을 완성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 시장에 파는 물건처럼 싸게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 가격이 비싸다 보니 어쩌다 가끔 한벌이 팔릴 정도였다.

 

 

그러던 중 마침내 3년 후 단독쇼를 열었다. 그러나 미스 코리아들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기는 것까지는 그의 적극적인 성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좋은 작품 정말 많이 나왔어요. 쇼가 끝나고도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까워 미스 코리아 행사 주최 측에 제안을 하러 직접 찾아갔죠.” 한복에 동양화가 담겨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니 주최 측에서 반색을 보였다.

 

그 다음해부터 미스 코리아 민속의상 부문은 김씨에게 맡겨졌고, 그로부터 벌써 18년째 책임져 왔다. 이후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 미스 아시아 퍼시픽, 미스 유니버시티 등 국제대회에서 베스트 드레서상과 민속의상상을 두루 수상했다. 지금까지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은 총 13회. 특히 2001년 미스월드 대회에서는 민속의상상은 물론 드레스상까지 받았다.

 

“110개국 그 쟁쟁한 디자이너들 중에 상을 받다니 믿기지가 않았죠. 한복을 하는 제가 드레스상을 탔으니 더 감회가 새로웠어요. 제 작품을 한국의 민속의상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한벌의 드레스로 두고 평가한 것이니까요.”

 

이 일에 뛰어든 초반기에 그가 한 일은 투자밖에 없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어서 실패해 버리는 천의 양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월금쟁이 남편에다 스폰서도 따로 없어서 첫 쇼도 모두 자비로 준비해야 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한창 일할 땐 많이 자면 3시간 잤어요. 늘 밤중에 일어나서 일을 해야했기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죠.”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 그가 창출한 한복이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 10월엔 서울 평창동 아트 브리덜에서 열린 ‘한복을 위한 그림의 세계’ 발표회에서는 뉴질랜드, 캐나다, 브라질 대사 부인들이 직접 그의 작품을 입고 무대에 섰다. 김씨의 손에서 한복은 우아한 웨딩드레스는 물론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도 변신했다. “대사관 부인들이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파티할 때도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참석할 정도였으니까요. 한복 입고 있으니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최근엔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자선 패션쇼도 선보였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이두식 교수가 직접 한복에 그림을 그린 작품은 즉석 경매로 팔려 눈길을 끌었다.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을 불태우는 그는 11월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쇼를 열 예정이다. “보아처럼 해외활동이 활발한 연예인에게도 내 한복을 입힐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한류에 한복 인기를 보탤 생각이에요." 단아하면서도 역동적이고 고전미와 현대적 감성이 묻어나는 그의 한복이 ‘패션 한류’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
-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헤럴드 생생뉴스 2006-04-15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