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아스팔트길을 달리는데 피곤함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가운데 뻥 뚫린 도로 양 옆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낮은 산세가 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고, 군데군데 자리 잡은 작은 마을 풍경은 졸린 눈꺼풀을 조금씩 깨우고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느껴지는 봄 풍경에 마음마저 포근하게 잦아들고, 한껏 여유가 생겼습니다.
▲ 곡성으로 가는 도중 특이한 비각을 발견했습니다. |
ⓒ2006 문일식 |
"어디 어디?"
일련의 호기심은 졸린 일행의 잠을 깨우고, 차는 다시 돌아 그 건물 앞에 이르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범상치 않은 문이 하나 있고, 문 사방엔 아담한 담이 둘러쳐 있습니다. 담 안에는 비를 보호하는 비각이 서 있는데 공포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단청은 죄다 벗겨져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희미한 채색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꽤나 오래전에 지어진 것 같았습니다.
▲ 비각에 물고기도 있습니다. |
ⓒ2006 문일식 |
▲ 계족산.. 일명 닭발산의 전경... |
ⓒ2006 문일식 |
산봉우리 하나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면 그 형세가 마치 닭발을 그려놓은 듯합니다. 계족산 뒤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시야를 모두 가렸지만, 언뜻 보아도 쉽게 닭발이 연상됩니다. 산 정상부엔 깎아지른 듯한 수직절벽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다하여 병풍바위로 불린답니다.
▲ 중평마을의 표지석과 예전 물레방아로 쓰였던 석물의 흔적 |
ⓒ2006 문일식 |
▲ 중평마을의 정경 1 |
ⓒ2006 문일식 |
▲ 중평마을의 정경 2 |
ⓒ2006 문일식 |
앞서가던 일행이 중평마을의 한 어르신 한 분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조용한 마을에 찾아든 낯선 이방인들을 별 거부감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비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올해 연세가 82세이신 그 어른은 환갑에 이른 아드님이 세 분이나 계신다고 했습니다. 모두 외지에 계시고 연로하신 어르신 내외만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 가옥의 처마에 지어진 제비집... 작년의 제비가 다시 찾아올는지... |
ⓒ2006 문일식 |
어렸을 적만 해도 서울에서도 흔치않게 본 조류였는데, 서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이제 시골에서도 그 흔적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습니다. 변화와 발전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잊혀져 가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효행비각의 우람한 공포 |
ⓒ2006 문일식 |
▲ 학을 타고 피리를 부는 비천상 |
ⓒ2006 문일식 |
▲ 비각의 정문에 새겨진 귀면상... |
ⓒ2006 문일식 |
비각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 새겨진 귀면상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석과 비각이야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더라도 중평마을의 정감어린 풍경과 여든을 훌쩍 넘기신, 너무나도 정정하셨던 어르신과의 만남은 비석의 내력을 덮고도 남았습니다.
계족산 뒤편으로 떨어지는 태양의 마지막 기운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오후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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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4-18 09:42]'♡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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