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까탈스러운 여자의 ‘나 홀로’ 세계여행 김남희

피나얀 2006. 4. 22. 19:52

 

“스페인 산티아고는 평생에 꼭 한 번 걸어볼 만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전업 도보 여행가인 김남희씨는 서른네 살이 되던 해에 세계 일주 여행길에 올라 3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지난해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를 36일간 도보로 여행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산티아고와 단단히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 ‘연애사’를 책으로 발표했다. 걷고 또 걸으며 자신과 대면하고 돌아온 그녀의 여행 예찬, 그리고 그 치유의 힘에 대하여.

 

“야곱의 발자취 따라 36일간 800km 순례“

 

“다양한 만남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 걷기 여행의 묘미예요. 만남의 밀도가 단연 깊죠. 오로지 걸어서만 하는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래요. 꽃 하나도 제자리에 멈춰 서서 오래오래 바라볼 수가 있잖아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깊게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스스로를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럽다’고 말하는 김남희(37)씨는 버젓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 곳곳을 혼자, 그것도 걸어서 여행 중이다. 중국을 시작으로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진 여정. 그렇게 3년을 꼬박 여행길에서 보낸 그녀가 잠시의 ‘쉼’을 갖고 여행기를 한 권 썼다.

 

지난해 펴낸 우리 땅 850km 종단기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의 제2권이다. 마치 연애편지와도 같은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가 걸었던 땅,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36일 동안 약 800㎞를 걸으며 만났던 스페인의 아름다운 길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길을 걸어봤지만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어요. 그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건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자기와 대면하고 싶을 때 평생에 한 번쯤은 이 길을 걸어볼 만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산티아고 가는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걸어왔던 길이다. 1천 년 전부터 유럽의 순례자들이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걷던 이 길은 지난 199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처음엔 종교적 의미가 강한 순례길이었지만 요즘은 신자들의 비율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 인생의 위기에 빠져 있다거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활짝 열린 이 길을 걷는 것은 속도에 구애받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여행길이다.

 

그런 만큼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특별하다. 남과 나눌 준비가 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 내밀 준비가 된 사람들이 그 길을 찾아온다. 아픈 이에게 약을 나눠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건네고, 배고픈 이에게 밥 한 그릇을 덜어주고, 아픈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주는 사람들. 그 길에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다.

 

물론 끝까지 그 길을 걸어 ‘완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과 작열하는 스페인의 태양은 때로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반면에 그 길은 보행자들을 위해 가장 걷기 편하게 터 있고, 돈을 내지 않고도 잘 수 있는 숙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래서 항공료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국토를 종단하는 비용보다 더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완주 증서까지 받을 수 있다.

 

“그 길을 다 걷고 난 직후 감정의 격랑을 겪었어요. 삶에 대한 감사로 압도되는 경지라고나 할까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요동치듯 올라오는 것 같았죠. 스스로가 어여쁘고 장한 기분도 들었어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을 걷고 난 뒤 마치 내 인생의 전반부가 끝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순례길에서 또다시 어떤 큰 변화가 찾아올 것만 같더군요. 무엇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했어요.

 

사지가 멀쩡하고 몸이 건강해서 이렇게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죠. 여행을 마치고 나자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그것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욕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산티에고가 갖는 힘은 바로 그런 ‘치유의 힘’이에요. 오랜 시간 걷고 자연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결국 스스로가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외국인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청소년 여행 학교 만드는 게 꿈”

 

산티에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배낭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샤워 젤을 비롯해 틈날 때 읽으려고 가져갔던 유일한 책 ‘도덕경’을 뺐다. 하다못해 선글라스와 지퍼백까지 뺐다. 대신 여행 내내 빨래, 샤워, 세수를 비누 하나로 해결해야 했고, 입고 있는 옷 외에는 달랑 한 벌의 여벌이 있을 뿐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 짐을 꾸리는 것부터가 작은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특히 그녀와 같은 장기 여행자는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다 넣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는 것. 그러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고 욕심도 버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김남희씨가 여행에 중독된 것은 1993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 67일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80년대 후반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 사회에 대한 갑갑증이 그녀의 가슴을 억눌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남들과 다르게 살 자신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유럽 여행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유럽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 피우는 여자들의 모습, ‘생양아치’의 차림새를 하고 도서관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의 모습은 획일된 문화에 익숙한 그녀에게 낯설면서도 통쾌했다. ‘삶을 사는 방식이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하는 문화적 충격으로 가슴이 뛰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의 감흥을 잊지 못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관광정책 대학원을 마쳤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취직한 곳은 터키 대사관. 대사관에서는 그녀의 영어회화 능력을 높이 샀고, 매년 한 달간의 여름휴가가 주어진다는 점이 그녀와도 잘 맞았다. 터키 대사관에 근무하는 6년 동안 그녀는 휴가 때마다 한 나라씩 정해 한 달씩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듬해 여름휴가 때까지 또 1년 동안 부지런히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생활이었다.

 

잘 다니던 터키 대사관에 사표를 던진 건 2002년 여름 해남부터 고성까지 꼬박 29일간 국토 종단 걷기 여행을 감행한 직후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 그녀는 당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실했던 ‘여행’을 택했다. 그녀에게 직장이나 가정, 알토란 같은 적금통장보다 절실한 건 바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 캄보디아, 터키 등 10개국을 도보로 여행했고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후 책을 내기 위해 국내에 잠시 머물렀다. 물론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 3월 27일자로 그녀는 또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를 종단할 예정이다. 그녀에겐 아직도 여행이 가장 절실한 걸까?

 

“앞으로 3~4년은 더 여행할 생각이에요. 마흔 살이 되는 해에 아마도 정착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여행 자체가 목적이기도 했지만 여행하는 동안 또 다른 인생의 목표를 얻었거든요. 우선 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화 체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땅, 우리 흙을 무대로 ‘청소년 여행 학교’를 세울 거예요. 아이들에게 여행은 가장 큰 학교이자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믿거든요. 프랑스에선 비행 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할아버지 자원봉사자와 함께 2000㎞를 걷는 ‘벌’을 준대요. 여행이 갖는 치유의 힘을 믿는 아주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한 해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는 그녀지만 매년 가을에는 귀국해 갖가지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행하면서 갖게 된 아시아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그 모티브가 됐다. 2004년에는 지인들과 기획한 ‘작은 음악회’에서 기금을 모아 티베트 노인들을 위한 공동체를 짓는 데 보냈고, 2005년에는 인도 보드가야의 ‘석가모니 부처 공동체 건강 병원’ 운영비를 지원했다. 불교 단체 능인선원과 함께 지진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 북서부 카와이 마을에서 구호 활동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저 판을 벌였을 뿐이라는 게 그녀의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이를 도와주고 싶은 갸륵한 마음이 있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돕지 못한다는 것.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판을 벌였고 사람들은 기꺼이 자기가 가진 돈과 물건, 그리고 시간을 내놓았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내 인내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게 돼요. 내가 어떤 일에 분노하는지, 어떤 상황을 못 견디는지 새삼 발견하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랄까요. 그러면서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거든요.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충전된 에너지를 안고 떠난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거죠. 결국 여행이란 건 떠나기 전보다 더 잘살기 위해 떠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요.”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박형주·김남희

출처-[레이디경향 2006-04-20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