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 【인테리어】

컴퓨터를 끌어냈다, 거실서재가 생겼다

피나얀 2006. 5. 2. 18:19

 

 


텔레비젼과 소파의 단순한 공간에서 홈 워크스테이션으로

트인 베란다, 붙박이 선반 활용하면 지식의 전초기지

 

바야흐로 한국은 정보통신 대국이다.

 

국민 1인당 PC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인터넷 사용 인구는 전체 국민의 50%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전 세대에 낚시 과부가 있었다면 요즘에는 컴퓨터 과부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쇼핑하러 밖으로 나가면 구세대, 방으로 들어가면 신세대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왜 쇼핑하러 방으로 들어가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대가 한 지붕 아래 있는데도 왜 나는 과부가 되어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컴퓨터가 방에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행여 함께 쓰는 침실에 컴퓨터가 있을라치면 밤마다 “제발 불 좀 꺼줘”를 외치며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 빠끔히 열린 방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자판 두들기는 소리는 쓸데없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영화 <접속>이 괜히 나온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굳은 신념 때문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 1위가 컴퓨터란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방에 들어앉아 마약보다 심한 중독 증세를 보인다는 컴퓨터 게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지, 강도를 더해 ‘부적절한’ 사이트를 탐닉하는지 도대체 짐작할 수 없다. 방문 열고 녀석들의 책상까지 이를라치면 단축키로 조작하는 화면 가리기가 혜성보다 빠르다. 통제 불능. 해결은 간단하다. 컴퓨터를 방 밖으로 끌어내어 같이 쓰면 된다.

 

컴퓨터, 같이 씁시다.

 

리모델링 열풍, 세 자매의 거실 개조

 

언제부터인가 리모델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데 우리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다. 리모델링 천하통일이다.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리폼 등의 외래어뿐 아니라 개수, 개축, 증축, 보수 등의 용어를 통틀어 리모델링이라고 딱 한 마디로 지칭한다. 간편해지긴 했다. 그런데 왜 리모델링이 열풍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공간의 세팅이 현재 거주자의 생활을 잘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쌍둥이도 세대차를 느낀다는 시대다. 3년 전에 훌륭하다 감탄하며 분양받았던 아파트에 입주하자면, 어느덧 유행이 바뀌고 덜 세련돼 보이는 마감재에 새집 사는 흥이 덜 오른다. 사람 사는 방식이 철 따라 유행을 따르는 것은 아니어도, 5~6년, 길게는 10년을 주기로 보면 몇 가지 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컴퓨터와 얽힌 재택근무, 여성의 사회 참여폭이 확장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변화, 자녀들 중심의 생활 패턴과 그에 대한 공간적 대응 등이 우선 떠오르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겠다. 그래서 턱없이 큰 안방과 너무 작고 어두운 자녀방, 구석진 곳에 자리한 좁은 주방과 보조 공간, TV와 소파를 마주 보도록 놓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거실 공간은 언제나 리모델링 제1순위 공간으로 물망에 오른다.

 

 


여러 해 전, 한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아왔다. 자매 셋이 사는 집이었는데 거실의 고전적 기능에 홈오피스 개념을 추가하고 싶다고 했다. 일하면서 TV도 보고 싶고, 작업대를 넓게 써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 방에까지 가기가 힘들어 일하다 지쳐 쓰러져 잘 만한 공간도 있어야 한단다.

 

일반적으로 거실 공간의 모듈은 4×4m에서 조금 더 줄거나 늘거나 하게 마련이다. 이 4m라는 길이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길다. 한 줄로 벽에 붙어앉으면 넉넉하게 7~8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길이다. 아주 컴팩트하게 디자인한다면 3인용 소파를 놓고도 책상 하나쯤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라는 결론이었다. 작업 공간을 넓게 쓸 때를 대비해 소파는 인출식으로 벽에 수납될 수 있도록 했고, PC테이블은 소파와 나란히 일자형으로 배치돼 일체형 홈오피스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실현되지 않은 미완의 프로젝트다. 몇 해가 지난 지금이라면 충분히 상용화될 수 있는 제안을 너무 빨리 했던 탓일 게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거실에 컴퓨터를 놓을 수 있을까에 대해 간간이 고민하게 됐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므로.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놀아라

 

거실 발코니를 터서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넓어진 거실 공간이 시원해 보이긴 한데,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용도에 실망스럽다. 이 공간에 인포메이션 데스크처럼 생긴 홈 워크스테이션 박스를 넣어보자. ㄷ자 파티션이 감싸고 있는 부피감 있는 박스 공간을 만든다.

 

컴퓨터 테이블을 감싼 파티션의 높이는 모니터의 절반쯤과 책상 위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가리는 정도의 높이, 그 위로는 오픈해서 작업 중에도 TV를 보거나 소파에 앉은 다른 가족과 대화하는 등 함께하는 공용 공간 거실의 효율을 배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워크스테이션은 본격적인 작업 공간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어디까지나 생활의 일부로 TV를 혼자 방 안에서 집중해서 보지 않듯, 컴퓨터 작업도 이제는 너무나 일상적인 행위로 발전될 것이기에 가능한 제안이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가 디자인한 레이지워킹 소파(Lazy working sofa). 참 멋진 사람이다, 스타르크는. 나른하게 일하기 위해 고안된 이 디자인에는 얼마나 날카로운 예지력이 번득이는가. 저 날렵한 선과 디테일, 그리고 우아한 작업조명은 거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최고의 디자인이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 줄 아는 사람을 최고로 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21세기 신인류는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노는 생활방식을 택하고 있다. 필리프 스타르크의 레이지워킹 소파를 하나 구비해 거실에 둔다면?

조금 더 공간적 여유가 있다면, 독립적인 서재를 꾸밀 생각을 해봄직하다.

 

10년 전, 나의 혼수 품목에는 책상과 책꽂이 세트가 끼어 있었다. 결혼할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갖고 있었고, 거기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책상은 필수품이었다. 장롱과 식탁에 책상을 끼워 팔던 가구집 아저씨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나 역시 학생가구 이외의 쓸 만한 책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었다.

 


일상의 감각이 변했다. 이제 아무도 여자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집에까지 일을 들고 오는 사람을 일에 중독된 사람 취급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직업과 그 이외의 일, 가령 취미이거나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언제나 즐겁게 열려 있는 공간과 시간 개념이 필요하게 됐다. 그곳은 어른들의 꿈을 위한 땅이다.

 

서재는 우리 주거 공간에서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한다. 그저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잠자리에 드는 것밖에. 기실 한국의 주거 공간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이른바 안방에서는 잠밖에 안 자니까 크고 밝은 안방을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작은 방을 부부침실로 쓰는 집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과외공부를 위한 방을 만들어준다고도 하지만, 난 반대다. 물론 가족 공동체에서 아이들의 몫이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그 공동체의 중심은 남편과 아내, 부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가 사랑의 절반만큼을 뚝 떼어내 스스로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자라기 위해.

 

부부가 따로 쓰는 독립 서재는 어떨까

 

하나는 방 하나를, 거실 하나를 서재로 만든다면 하고 싶은 일들이다.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수납과 컴퓨터, 멀티미디어, 작업 면적의 확보를 어떻게 해결할까이다. 사면을 책꽂이로 만들고 한쪽 면 정도는 비디오 가게처럼 이중 책장을 만들어 수납 공간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중 책꽂이 앞에는 가벼운 느낌의 슬라이딩 패널을 설치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디스플레이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프로젝트 리마인드 세팅인 셈인데, 흥미에 따라 여러 가지를 붙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책꽂이 한켠의 허리를 비워 컴퓨터를 둘 수 있게 한다.

 

빔프로젝터를 구입할 여유가 있다면 천장에 매입하는 형식을 택할 수 있다. 그리고 가운데 공간에는 아주 넓은 책상 하나를 툭 던져두고 싶다. 앞뒤도 없는 식탁 같은 책상 하나가 자유롭게 던져져 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올해 삼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출품작 ‘1+1=2’다. 이 신혼 공간의 핵심 아이디어는 부부침실의 침대 각 켠에 각자의 작업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재는 이렇게 시작된다. 온전히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자기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 꿈꾸는 어른들을 위한 공간, 그것이 서재다.

 

공간은 존재만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서재는 조금은 낭만적으로 이해돼왔을지 모른다. 성공한 남자들이 갖고 싶어하는 상징처럼, 극단적으로는 몽블랑 만년필쯤으로 여겨져왔을지 모른다. 아직까지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될 것이다. 미래 사회의 변화를 수용할 공간장치가 집에는 필요하다.

 

<넥스트 소사이어티>의 저자 피터 드러커는 지식사회의 도래와 특성을 이야기하면서, 이전의 근로자들이 일을 생계 해결 수단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다음 사회(Next Society)의 생산 주역인 지식 근로자들은 일을 인생 그 자체로 간주한다고 지적했다.

 

고도의 경쟁사회와 최첨단 지식을 견지하기 위한 계속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공간적’으로 보면 그들에게는 지식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서재다.

 

독립된 공간이어도 좋고, 침실의 부속 공간이어도, 혹은 12자 붙박이장의 일부를 잘라내어 서재 공간으로 할애해도 좋다. 온전히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떤 세팅이어도 좋다. 이 공간의 존재가 당신에게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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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5-02 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