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것도 한해에 입춘이 두번이라 길하다는 2006년의 5월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남녀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혼례를 올리고 있을 터. 덩달아 바빠지는 곳은 폐백과 이바지 음식을 주문 받는 업체들이다. 옛날에는 고이 기른 자식을 시집, 장가 보낼 때 집에서 손수 음식을 장만했지만 요즘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이런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종의 사관학교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서울 종로에 있는 ‘궁중음식연구원’이다. 1996년 봄 혼례음식 강좌를 개설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배출한 수료생만 해도 줄잡아 1,100여명이나 된다. 수료생들끼리 뭉쳐 ‘수강재’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올해 초 이런 제안을 했다. “4월에 음식 전시회를 열어볼까요?” 이름하여 ‘다시 보는 혼례음식 이야기 전’이다.
#하루 전날 지지고 볶고
‘혼례음식전’은 지난달 29~30일 운현궁에서 딱 이틀 동안만 열렸다. 되도록 오랜 기간 많은 관람객에게 선보이고 싶어도 작품이 음식인지라 장기 전시가 불가능한 까닭이다. 사실 이들이 혼례음식전을 여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에 한번 꼴로 실내에서 회원들 작품을 전시했다. 그러나 사방이 탁 트인 운현궁에 전시하는 것은 제1회 전시회 이후 10년 만이라고. 수강재 식구들은 감회가 새롭다. 게다가 운현궁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렸던 장소. 혼례음식전의 장소로 이보다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상에 올리는 음식 종류는 모두 200여가지다. 실제 잔치를 열고 손님을 대접했다면 1,000명은 거뜬히 먹었을 엄청난 양이다. 음식 종류가 많으니 식기의 개수도 많을 수밖에. 웬만한 건 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던 그릇으로 해결했지만 창고에서 꺼내 깨끗하게 닦고 운현궁으로 옮기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넉넉할수록 좋은 게 잔치 음식 아닌가. 수백가지 메뉴는 문제될 게 아니다. 관건은 시간.
어떤 음식을 누가 만들 것인지 기획과 준비는 연초부터 했어도 음식 만들기에 돌입하는 건 전시회 개막 1주일 전부터다. 과자류, 젓갈, 마른 반찬처럼 미리 만들어둬도 괜찮은 음식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개막 하루 전날, 두팔 걷어붙이고 밤이 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번 전시를 총 지휘하는 한복려 원장(중요무형문화재 ‘조선왕조 궁중음식’ 보유자 후보)과 음식을 직접 만들 수강재 회원 50여명이 제일 바쁜 시기도 이때다.
음식을 식기에 담고 예에 어긋나지 않도록 동서남북 알맞게 배치하는 일은 외부의 푸드 스타일리스트 4명에게 맡겼다.
디스플레이를 날마다 새로 해야한다는 것은 음식 전시회의 숙명이다. 야외에서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밤 사이 도둑 고양이가 생선전을 물고 달아나기라도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해가 지면 음식을 옮겼다가 다음날 아침 부랴부랴 다시 상을 차린다. 고된 일정이지만 전통 음식을 배우고 전수하는 건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랫녘에 사는 회원들은 밤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올 정도로 열심이다.
#음식 선물 어때요
이번 전시는 혼담이 오가고 혼례식을 치른 뒤 신랑·신부가 각각 처가와 시댁에서 큰상을 받기까지, 혼례 절차에 맞춰 옛날 방법대로 상차림을 제시했다. 이바지 상은 우선 떡·주안상·한과 이바지 등 올라가는 음식에 따라 나누고 그 안에서 다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지역별로 세분했다. 폐백상도 서울, 충청도, 개성 등으로 따로 차려 차이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지역 특징에 따라 주 메뉴도 달라진다는 사실. 부산과 통영처럼 바다가 가까운 지역은 이바지 상에 해물산적, 해물꼬지, 통해삼 지짐처럼 해산물이 많다. 전남 지역도 특산물인 생홍어, 상어찜, 상어전 등을 상에 올린다. 반면 강원도는 메밀떡, (역시 메밀가루로 만드는) 빙떡 등을 만들어 대접한다.
그러나 이바지를 간소화하고 폐백을 생략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 혼례 음식을 제대로 하는 게 다소 번거롭고 사치스러운 건 아닐까. 한원장은 ‘음식의 선물화’를 해답으로 제안했다. “음식을 보내는 건 서로 돕자는 뜻이잖아요. 우리가 ‘이바지’라고 해서 한꺼번에 보내기도 하지만 1년에 걸쳐 조금씩 상대에게 음식을 선물하는 것도 전통 음식을 생활화하는 방법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전통음식을 복원하고 현대화하는 건 지난한 작업일 것이다. 연구원 사람들은 ‘전통이 최고’라고 아집 피울 생각은 없다. “모든 사람이 옛날 방식대로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폐백과 이바지 음식을 직접 하는 가정이 줄수록 기능을 가진 사람이 더 필요해집니다. 그래야 사먹을 수 있으니까요. 문화 면에서도 전문가들이 계속 만들어서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한원장의 말이다.
5월은 청첩장이 오가는 때이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을 챙길 일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작고 예쁜 개성약과를 곱게 포장해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하는 건 어떨까. 알고 보면 우리 전통음식만큼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내는 아이템도 드물다. 옛것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선입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혼인·결혼·혼례의 차이점
혼인, 결혼, 혼례. 쓰임새가 비슷해 섞어쓰고 있지만 각각 의미가 다른 말이다. 혼인(婚姻)은 남자와 여자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저녁에 만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다. 혼인할 혼(婚)은 남자 쪽에서 저녁에 여자를 만나 장가든다는 뜻이고 혼인할 인(姻)은 여자 쪽에서 여자 중매인을 통해 남자를 만나 시집간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혼(結婚)이란 글자에는 남자가 장가든다는 의미만 있다. 따라서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일은 혼인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혼례(婚禮)는 남녀가 행하는 혼례식뿐만 아니라 두 집안이 사돈 관계를 맺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부부가 되는 의식 절차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글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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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2006-05-03 15:36]'♡피나얀™♡【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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