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오스트리아② 잘츠부르크와 사랑에 빠진 에브리맨

피나얀 2006. 5. 11. 00:33

 


부유한 한 남자가 어느날 사신(死神)의 부름을 받게 된다.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우기는 그에게 사신은 동행할 친구 하나를 허락한다. 하지만 기꺼이 도와주리라 생각했던 '우정'이나 '의리' 등은 모두 그와의 동행을 거절한다. 남자가 가장 크게 의지했던 재산도 그를 외면했고, 힘과 아름다움, 지혜 등도 마지막 순간까지는 함께 해 주지 않았다. 대신 관계가 소원했던 '선행'만이 그와 마지막 동행이 되어 주었다.

 

이 남자, '예더만(Yederman)'은 오스트리아 극작가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이 중세에 유행했던 영국의 도덕극 '에브리맨(Everyman)'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이 연극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공동 프로듀서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에 의해 1920년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돔광장에서 공연됐고, 80년이 넘게 페스티벌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예더만'은 매년 잘츠부르크를 찾아온다.

 

예더만이 그랬듯 잘츠부르크를 직접 방문한 장삼이사(張三李四),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은 누구나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고딕과 바로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 사이를 날씬하게 가로지르는 잘자흐강의 매혹적인 자태가 그림엽서처럼 또렷하다.

 

호엔잘츠부르크(Hohensalzburg) 요새는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오스트리아를 '유럽의 심장'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잘츠부르크를 '심장의 심장'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도시를 방문해 보면 그런 찬사에 이견을 달 수 없다. 유네스코는 1997년부터 잘츠부르크 올드시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에 해마다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유다.

 

 

소금과 대리석의 도시

 

잘츠부르크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백색의 금'이라고 불릴 만큼 가치가 높았던 소금광산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는 '소금성'이라는 뜻이며 지금도 전국에 소금을 공급한다. 유럽의 옛 무역로가 이 도시를 통과했으며 지금도 시내를 20~30분만 벗어나면 독일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다.

 

잘츠부르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재료는 대리석이다. 천연 대리석의 무늬와 색감을 그대로 살린 미라벨 궁전의 바로크풍 대리석홀은 금장식과 어우러져 더욱 황홀하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아기천사들이 차례로 길을 열어 준다. 이 아름다운 장소는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이벤트 장소로 사용된다. 막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커플, 이제 곧 결혼식을 올릴 커플들이 대리석 계단을 분주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매일 저녁 실내악 연주회가 개최된다.

 

시내 곳곳에서 마주치는 조각상이나 고건축에서도 당대의 부와 미적 감각을 읽어낼 수 있다. 레지덴츠 광장의 대리석 분수도 놀라운 장관이다. 말이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한 15m 높이의 분수조각은 알프스 이북에서 최대의 규모를 가진 걸작이다. 대주교의 별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됐던 헬브룬 궁전은 개보수로 인한 예술양식의 혼재 없이 르네상스 시대의 순수 혈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내부에는 6천 개의 파이프로 된 유럽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어서 성상들의 웅장함을 압도해 버린다.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도 크다. 작은 돌정원과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있는 거리의 풍경은 로마시대의 도시를 되살려 놓은 듯 하다. 건물 사이 통로를 잇는 아치형 입구나 묀히스베르크 터널은 도시의 지반을 구축하는 콩그라마트라는 암반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소극장으로 변신한 승마학교도 거친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각 빌딩의 외부에는 건축된 해와 개보수한 해를 숫자로 표시하고 있어 도시의 오래된 나이를 알 수 있다.


잘츠부르크의 또 다른 아이콘은 독특한 모양의 금속 공예 간판들이다. 모차르트의 생가를 중심으로 많은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게트라이데가세에는 상점마다 고유의 모양으로 제작한 간판이 내걸려 있다. 문맹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빵, 가위, 물고기 등이 상형문자처럼 사용됐다. 맥도날드는 조그만 'M'자를 만들어 내걸었다. 이 거리는 연중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거리의 무명 예술가들이 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오리인형을 만들어 파는 중년의 아줌마와 바닥에 엎드려 분필화를 그리는 화가는 그들의 청춘을 이 거리에서 보냈다.

 

묀히스베르크(Moenchsberg)에 올라가면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곳에는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와 현대미술관이 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요새는 1077년부터 1681년까지 계속해서 증축돼 지금과 비슷한 규모를 갖추게 됐다. 현존하는 유럽의 요새 중 가장 큰 규모다.

 

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작은 도시에는 교회가 무려 42개나 된다. 이 중 40개가 가톨릭교회이고 1개가 개신교 교회, 나머지 하나는 회당이다. 잘츠부르크는 774년 처음으로 주교청이 설치됐고, 1803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도시를 점령할 때까지 1천 년 이상 대주교의 통치를 받는 독립된 공국이었다.

 

잘츠부르크가 합스부르크 제국에 편입된 것은 불과 1816년의 일이었다. 교회의 발달은 교회음악의 발달을 동반했고 많은 음악가들은 주교의 후원을 받으며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그 수혜자 중 하나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였다.

 

 

 

 

 

 

사진/김병만 기자(kimb01@yna.co.kr), 글/천소현(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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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2006-05-10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