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오스트리아①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 산다!

피나얀 2006. 5. 11. 00:32

 


2006년은 불멸의 천재이자 신이 선택한 예술가로서 기억되는 모차르트가 탄생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다. 전세계 음악계는 '모차르트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밤은 골목마다, 건물마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간밤에 왈츠를 추던 여신은 미쳐 불도 끄지 못하고 긴 치맛자락을 끌며 사라져버렸다. 짧고 아름다웠던 무도회가 끝나면 고단한 방랑자도 구두축을 꺾고, 바위도시의 귀퉁이에 짐을 푼다. 뮤즈의 옷자락이 너울너울 넘어와 발등을 덮었다.

 

신의 사랑을 받은 악동과 달콤한 입맞춤

 

어느 날 모차르트광장을 지나가던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시의 위대한 아들, 모차르트의 동상이 400여 개의 거대한 쇼핑카트 더미에 파묻혀 가고 있었다. 시민들의 경악은 곧 분노로 바뀌었고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비난이 높아져갔다. 1991년 예술가 안톤 투스발트너(Anton Thuswaldner)는 이 작업을 통해 잘츠부르크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차르트에 대한 과장된 우상화와 끝이 보이지 않는 상업화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지만 예정보다 일찍 쇼핑카트를 철수해야 했다.

 

잘츠부르크는 그런 도시다. 음악을 사랑하고 모차르트를 흠숭하는 사람들이 오감으로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나친 상업주의가 모차르트는 물론 도시의 품위마저 앗아가 버린 듯 거부감이 들 때도 있다. 어쨌든 모차르트는 25세에 잘츠부르크를 떠나 버렸고,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비엔나에서의 가난하고 불행했던 시절에 작곡된 것들이다. 잘츠부르크 사람들은 이에 대한 약간의 섭섭함마저 갖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일상이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우스 테오필리우스 모차르트(Johannes Chrisostomus Wolfgangus Theophilius Mozart)라는 긴 이름의 아이가 1756년 1월 27일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9번지 집의 4층에서 세상을 향한 첫 울음을 울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250년간 줄곧 그러했다. 4살 때 피아노를 연주하고 5살 때 작곡을 한 신동에 대해 고향 사람들이 애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1842년경에도 이미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 파이프, 모차르트 객실, 모차르트 빵, 모차르트 와인 등 모든 것이 모차르트 일색이었다. 당시 잘츠부르크 일간지의 한 기자는 ‘모든 것에 모차르트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매일, 수도 없이, 모든 곳에서 모차르트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모차르트는 매일 매일의 패스워드가 되었다’고 썼다.

 

지금도 이런 풍경은 여전하다. 1996년 모차르트 생가 바로 정면에 '모차르트랜드'라는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다. 2층으로 된 가게에서는 초콜릿은 물론, 구두약, 목욕 소금에 이르기까지 '모차르트'라는 이름 하에 5000여 가지의 기념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부진한 영업과 비난 여론 속에 문을 닫고 말았지만 아직도 온갖 해괴한 모차르트들이 이곳저곳에서 팔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모차르트 생가 바로 왼쪽에 'Next to Mozart'라는 이름의 상점이 성업 중이다.

 

모차르트 생가(Mozart Geburtshaus)는 여러 차례 개보수 되면서 건물의 앞면은 고딕양식으로, 뒷면은 로코코 양식으로, 야누스의 얼굴을 갖게 됐다. 내부는 모두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2층부터 다양한 관련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4층 내부에는 모차르트의 친필 편지와 악보, 그가 연주했던 악기들, 사용했던 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모차르트가 어렸을 때 사용했다는 1746년산 바이올린이 유리상자 안에 국보급 보물처럼 모셔져 있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성찬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어린 모차르트가 초상화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1773년까지 살다가 강 건너편의 탄츠마이스터하우스(Dance Master's House)로 이사했다. 이 집은 1944년 폭격을 받아 절반 정도가 무너졌었지만 모차르트 음악실은 용케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89년에 현대적으로 개보수를 마치고 지금은 박물관과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잘츠부르크에는 천재의 실존을 입증하는 생생한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는 그가 세례를 받은 성수함과 연주했던 오르간을 볼 수 있다.

 

모차르트는 더 넓은 세상을 찾아 잘츠부르크를 떠났지만 가족들을 일생을 잘츠부르크와 인근 마을에서 마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소였을 만큼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 장크트 길겐(St. Gilgen)은 모차르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두 여인이 살았던 곳이다.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이 곳에서 태어났으며 모차르트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던 누나 난네를(Nannerl)은 결혼 후 이 마을에 가서 정착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잘츠부르크의 탄츠마이스터하우스에서 생을 마쳤다. 1791년 12월 5일 비엔나에서 35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모차르트의 시신은 그 정확한 행방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모차르트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끝내고 나면, 역시 관광객에게는 기념이 될 만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누가 뭐라 해도 모차르트를 체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온갖 잡동사니 중에는 골프공이나 접시, 샴푸처럼 쓸만한 것도 있지만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오리지널 악기로 녹음된 3장의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CD세트 만한 기념품은 어디에도 없다고 봐야 한다. 50유로가 넘는 이 CD를 사고 돈이 남으면 모차르트 초콜릿을 추천한다.

 

달콤한 모차르트 초콜릿은 1890년 파울 피어스트(Paul Fuerst)라는 제과사에 의해 개발됐다. 둥근 초콜릿을 반으로 가르면 지구의 단면처럼 마지판(아몬드를 으깨 설탕과 버무려 만든 과자)과 누가 크림이 드러난다. 모차르트 초콜릿은 금박포장과 은박포장 두 가지가 있다. 오리지널 모차르트 초콜릿의 진미는 금이 아닌 은박 포장 속에 숨어있다.

 

자동화된 공정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조리법을 고집하며 모두 수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모양은 좀 거칠지만 맛은 일품이다. 모차르트가 이 맛을 보았더라면 자신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김병만 기자(kimb01@yna.co.kr), 글/천소현(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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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2006-05-10 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