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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내 보이지 않던 왜가리들이 동네 근처 강가에는 물론 새로 삶아 놓은 논에도 나타났습니다.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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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득한 논을 이렇게 삶아 놓고 며칠쯤 지나면 겨우내 보이지 않았던 다리가 길고 몸통이 하얗거나 잿빛인 새들이 여기저기서 찾아듭니다. 꺽다리처럼 기다란 다리를 가진 새들은 휘적휘적 걸어 다니며 길쭉한 부리로 젓가락질을 하듯 뭔가를 콕콕 쪼아 먹었습니다. 장난삼아 '훠이'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커다란 몸집을 가뿐하게 챙겨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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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두렁 속을 들여다보니 밤톨크기만한 논우렁기가 있었습니다.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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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두루미들이 잡아먹거나 쪼아 먹던 것은 올챙이나 미꾸라지일 때도 있었지만 논우렁이일 때도 많았습니다. 그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우렁이를 어떻게 꺼내 먹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논엘 들어가 보면 심심치 않게 껍질뿐인 논우렁이가 발견되니 알맹이만을 꺼내 먹는 그들만의 기술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새들이 어떤 논에 모여들어 그렇게 뭔가를 쪼아 먹는 것을 보면 꼬맹이들은 작은 종다래끼를 하나씩 허리에 꿰차고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 올린 채 그 논으로 들어가 색시걸음을 하며 둘레둘레 주변을 살핍니다. 텀벙거리면 흙탕물이 일어 물 속이 보이지 않으니 휘적휘적 걷던 새들처럼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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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우렁이가 어떻게 몸집을 뒤집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손을 대니 자라목처럼 뚜껑 속으로 쏙 몸집을 감추더니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뚜껑 속에서 목처럼 기다 몸집이 나왔습니다.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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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란 목을 비틀어 빨판을 땡에 대더니 으랏차 몸집을 뒤집었습니다.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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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우렁이를 잡다 다리가 근질거려 보면 발등이나 발목 근처에는 시커먼 거머리가 찰싹 달라붙어 포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이런 상황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대개의 꼬맹이들은 크게 호들갑떨지 않고 손바닥으로 거머리를 톡 때립니다. 그러면 거머리는 피 빨아먹던 몸뚱이를 동그랗게 웅크려 말며 똑 떨어집니다. 그러면 익숙하게 침을 퉤 뱉어 거머리가 붙었던 곳을 쓱쓱 문지르면 흐르던 피도 멈추고 가려움도 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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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집을 뒤집고 난 논우렁이는 빨판을 땅에 대고 뭔가를 먹고 있는 듯 했습니다.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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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를 겨우 몇 마리만 잡았을 때는 소죽을 끓이느라 땐 사랑채 아궁이의 잿불에다 구워먹었지만 많이 잡았을 때는 엄마가 부엌으로 가져가 깨끗하게 닦아 한소끔 삶아 알맹이만을 꺼냅니다. 강가에서 줍는 올갱이(다슬기)야 원체 그 크기가 콩알만하니 알맹이 하나로는 먹고 자시고 할 게 없지만 논우렁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렁이 자체가 밤톨만큼 크기 때문에 알맹이 살이 제법 됩니다. 이렇게 삶아낸 논우렁이는 달래 듬뿍 넣어 끓이는 된장에 넣거나 국을 끓이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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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해 보이기만 하던 논두렁 속에서는 움직임 없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06 임윤수 | |
ⓒ2006 임윤수 |
논이나 논두렁을 따라 만들어진 수렁에서는 이렇듯 논우렁이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올챙이와 방개도 있었고, 가을이면 보양식을 만들 수 있는 미꾸라지와 메뚜기도 있었습니다. 반찬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달래나 냉이, 개떡이나 쑥버무리에 들어가는 쑥들도 논두렁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 논우렁이나 개구리, 미꾸라지나 메뚜기는 아직은 밭일을 하기 어려운 꼬맹이 사내들이 잡았지만 봄나물을 뜯는 것은 누이나 엄마, 나이어린 계집애들의 몫이었습니다.
논두렁길을 걸으며 옛일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논두렁을 따라 만들어진 수렁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직도 시골 수렁에는 예전에 보았던 것들이 고스란히 다 있었습니다. 발자국 소리에 놀라 흙탕물을 일으키며 도망을 가는 미꾸라지도 보이고, 바글바글 모여 있는 올챙이 무리도 보입니다.
물동이를 이느라 머리에 말아 올리던 똬리처럼 동그랗게 환을 그리고 있는 도롱뇽알도 보이고 흡혈귀처럼 찰싹 달라붙던 거머리도 보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파릇하게 돋아 오른 새싹 그늘에는 논우렁이도 있었습니다. 밤톨만큼 커다란 우렁이도 있고 콩알만한 새끼 우렁이도 있습니다.
어릴 때 잡았던 우렁이, 꼬독꼬독한 맛이 좋아 열심히 잡았던 그 논우렁이들은 다리도 없이 어떻게 움직이고, 팔도 없는데 어떻게 뒤집혀진 몸을 똑바로 세우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우렁이 한 마리를 잡아 뚜껑이 위로 오도록 뒤집어 놓고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갈색을 띤 논우렁이 뚜껑에는 사람들의 지문처럼 동그라미가 촘촘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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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두렁 아래서는 올챙이들도 바글대고 있었습니다. ⓒ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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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느라 손을 대니 고슴도치처럼 잽싸게 껍질 속으로 몸집을 감췄던 우렁이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조심스럽게 몸집을 드러냅니다. 몰래 여는 대문짝처럼 손톱처럼 생긴 녹갈색 뚜껑이 슬금슬금 위로 올라옵니다. 뽀얗게 드러나는 몸집이 점점 길어집니다. 하얀 목덜미처럼 길쭉해진 몸집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껍질조차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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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 뿐 아리나 물 위에서도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2006 임윤수 |
ⓒ2006 임윤수 |
일단의 뒤집기를 끝낸 우렁이는 서두르지 않고 다시금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껍질을 움직였습니다. 드디어 달팽이처럼 생긴 몸집을 드러내고 수렁바닥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다리가 없었지만 우렁이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팔이 없었지만 뒤집혀진 상태에서 원래대로 몸집을 뒤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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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도 논두렁을 찾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2006 임윤수 |
ⓒ2006 임윤수 |
어느 집인지는 몰라도 저녁밥상에는 논두렁에서 뜯어온 봄나물에서 우러나는 봄맛이 푸짐하게 차려질 듯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오금이 저려옵니다.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켜듯 양팔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며 먼 산을 바라봅니다.
눈을 들어 보니 청명한 날인데도 기껏 백리 안팎이 보일까 말까 합니다. 인간의 눈이란 게 이렇듯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기에도 급급합니다. 솥단지 걸려 있는 아궁이 속을 들여다 보면 시커먼 숯검정만이 보이고, 진달래꽃 만개한 꽃동산을 바라보면 알록달록한 꽃들만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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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눈으로 보니 훨훨 날던 왜가리도 보이고 천리 떨어진 고향마을도 보입니다. ⓒ2006 임윤수 |
ⓒ2006 임윤수 |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나마 옛 시간, 먼 거리를 더듬을 수 있는 마음에 눈을 뜰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마음에 눈으로 보니 천리 길 무릉도원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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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5-15 13:21]![](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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