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다른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제가 사는 '남도'를 찾아오면 꼭 데리고 가 구경시켜 주는 곳이 있습니다. 차 안에서 남도에서 손꼽히는 '명찰'이니 기대하라는 말과 함께 잔뜩 기대에 부풀도록 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데려 가는 곳이 화엄사, 송광사, 백양사, 대흥사, 선암사 등을 꼽으며 그곳이 아니냐며 이미 가 봤노라고 지레 짐작하기 일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말한 절들은 어렸을 적부터 수학여행이다 체험학습이다 하여 줄기차게 다녔던 곳이고 보면 남도의 명찰 중의 명찰이고, 명성으로 보나 보유한 문화재의 양으로 보나 전국에서도 내로라 하는 절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유명한 탓에 찾아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 산사 고유의 고즈넉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느끼기란 어렵게 돼 버렸습니다.
비산비야의 정겨운 남도의 들녘에 뽐내지 않고 다소곳이 들어앉은, 숨은 보물과도 같은 절들을 소개합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삼형제와 같은 절입니다. 화순의 쌍봉사와 장흥의 보림사, 그리고 나주의 불회사가 그곳입니다. 하나 같이 여느 곳 못지않은 값진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조금도 요란스럽지 않고 아늑한 분위기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제가 남도의 명찰로 주저함 없이 꼽는 이유입니다.
비록 천 년에 가까운 시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곳엘 가면 당시 남도에 살았던 석공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을 만나게 되는데, 투박하고 정감어린 것들로부터 너무나 정교하여 감히 쳐다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작품들까지 다양하여 외려 불상이나 화려한 전각들보다 찾는 이들의 눈길과 관심을 더 끄는 절의 보배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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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2006 서부원 |
ⓒ2006 서부원 |
큼지막한 화강암 바윗돌을 정이 엇나가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깎아 세웠다는 것은 -곁에 서 있는 문화재 안내판의 글귀처럼- 석공의 정성만으로도, 또 기술만으로도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한다면 '불가사의'하다고 밖에는.
바로 곁에는 비문이 적혀 있었을 몸돌이 사라진 '철감선사 부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느 곳에 있었다면 꽤나 대우 받았을 정교한 조각 작품이지만, 워낙 출중한 '놈' 옆에 더부살이를 하다 보니 무척 데면데면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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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한 철감선사부도로 인해 소외받는 듯 데면데면한 철감선사부도비 ⓒ2006 서부원 |
ⓒ2006 서부원 |
곰치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으면 보림사에 닿습니다. 산자락이 절터를 휘감고 있어서 이르는 길은 좋지 않아도 아늑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곳에도 신라 말 우리나라에 선종이 처음으로 뿌리내린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들이 많습니다.
듣자하니 절 마당 한 가운데에서 샘솟고 있는 약수가 한국의 10대 명수로 지정되었다 하니 이것도 볼거리-이자 먹거리-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사천왕상과 신라 말 철불(鐵佛) 조성의 편년에 기준이 되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으니 이들 역시 자랑이랄 수 있겠으나 누가 뭐래도 절터 안팎에 널브러진(?) 석물들을 빼놓고는 보림사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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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림사 경내의 괘불대. 뒤로 보림사 3층석탑과 석등이 보인다. ⓒ2006 서부원 |
ⓒ2006 서부원 |
두 석탑의 가운데 권투 시합에서의 심판처럼 서 있는 세련된 석등과, 그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버려진 듯 놓인 석탑 앞의 배례석, 또 바로 곁 부끄러운 듯 외따로 놓인 거뭇거뭇한 괘불대에 이르기까지 보림사 안마당은 좁아 보입니다. 한편 절의 경내 뒤편 비탈진 곳에 우뚝 선 보조선사부도와 탑비, 절을 조금 벗어난 좌청룡 우백호의 위치에 수호신처럼 자리한 십 수개의 부도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석조물을 지니고 있고, 이들은 곧 보림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보림사를 나와 이태 전에 완공된 장흥댐과 탐진호를 돌아가면 봄 햇살 가득한 나주 들녘이 펼쳐집니다. 곧추 선 보리들의 흔들거림이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정경입니다. 이 지방에서는 드라이브 코스로 제법 알려져 있는 나주호를 따라 돌아 가다보면 휴게소가 자리한 법한 곳에 불회사가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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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살스러운 시골 촌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불회사 입구 할아버지 장승. ⓒ2006 서부원 |
ⓒ2006 서부원 |
오히려 불회사의 '보물'은 따로 있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절의 입구 천왕문에 이르는 300여 미터의 삼나무 숲길이 그 하나이고, 숲 내음 그득한 그 길 중간 쯤 익살스럽게 마주 선 돌장승 두 기가 또 하나입니다. 사실 족히 이십여 미터는 돼 보이는 곧게 뻗은 삼나무들은 황톳빛 길마저 초록으로 덮어버리는데, 그 깊은 향은 코와 가슴을 펑 뚫어주는 듯 시원합니다.
몇 걸음 오르지 않아 절의 수문장처럼 듬직하게 버티고 선 두 기의 돌장승이 있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친숙한 얼굴입니다. 크기만 하지, 조각 솜씨가 정교하지도, 그렇다고 세련되지도 않은 졸작(?)이지만 왜 그리 정겹고 수더분한 표정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말 그대로 시골 촌부의 소박함과 따스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분명 불회사의 사찰 장승으로 드는 악귀를 막고 쫓는 수호신으로 조성된 것일 테지만, 그런 기운은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이 고장 사람들의 얼굴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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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회사 할머니 장승. 뒤로 그리 길지않은 삼나무 숲길이 펼쳐져 있다. ⓒ2006 서부원 |
ⓒ2006 서부원 |
기술로만 보자면 '걸작'인 철감선사부도부터 '졸작'인 불회사 돌장승에 이르기까지, 한 나절의
짧은 여행으로 이름조차 다 기억 못할 만큼의 많은 '돌'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마는 정교함은
정교함대로, 투박함은 또 그렇게 투박함대로 그 나름의 멋을 지니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것이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재된 것이든, 아니든, 보는 이에게 감동과 웃음과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이 국보 몇 호인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남도의 '숨은' 명찰 세 곳을 소풍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 변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조차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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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5-15 09:35]'♡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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