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루마니아①누가 드라큘라를 모함했는가

피나얀 2006. 5. 24. 20:24

 

드라큘라 성이라고 불리는 브란 성

관 속에 누워 있다 밤이 찾아오면 인간의 피를 흡수하는 마귀, 드라큘라 백작은 브람 스토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소설의 무대는 루마니아의 중부에 위치한 트란실바니아 지방과 영국으로, 두 지역은 악과 선을 대변한다.

 

침침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알려진 런던이 선한 지방이라면 뱀파이어가 산다는 트란실바니아는 잿빛 흑운이 일년 내내 하늘을 가리기라도 한단 것인지 의뭉스럽기만 했다.

 

드라큘라의 모태가 됐던 인물이 루마니아에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흡혈귀도 아니었고 수백 년 묵은 퀴퀴하고 섬뜩한 혼령도 아니었다. 루마니아 옛 왕국 중 하나인 왈라키아의 왕자였던 그는 자국을 사랑한 지도자였을 뿐이다.

 

15세기 중반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왈라키아에서 태어난 '블라드 테페슈'는 어렸을 때부터 터키와 헝가리에 인질로 끌려가 성장한다. 청년이 되어 돌아온 그는 왕위계승자의 칭호를 얻고 터키의 침략에 대항해 나라를 비호한다.

 

볼모로 잡혀있는 동안 애국심과 적국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키워온 왕자였던 만큼 터키인 포로를 처형하는 방법은 매우 잔혹했다. 그의 이름인 테페슈는 꼬챙이나 가시를 지칭하는데, 긴 막대나 가시 달린 바퀴를 사용한 무자비한 살인방법 탓에 얻은 것이다.

 

왕자 테페슈가 서유럽에서 흡혈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은 밀수와 무관세 무역으로 부당하게 돈을 거둬들인 색슨족 상인과 충돌이 일어났을 때 그들을 무참하게 살육한 것과 관련이 있다.

 

결국 색슨족 연대기에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한 이방민족의 우두머리'쯤으로 기록되어 공포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불운을 맞게 됐다. 하지만 루마니아 사람들만은 그를 '외세의 압력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한 영웅'으로 인정하며 숭앙하고 있다.

 

테페슈가 '드라큘라(Dracula)'라는 별칭을 얻게 된 사연은 이렇다. '드라큘(dracul)'은 루마니아어로 용을 의미하는데, 그가 전쟁을 수행하면서 내걸었던 문장(紋章)이 용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헝가리의 왕으로부터 '용'이란 작위를 받아 자신도 '드라큘'이라 명명했다는 것. 드라꿀의 말미에 'a'가 붙어서 드라큘라가 되었고, 이는 드라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드라큘라 성'으로 불리는 '브란 성'

 

'브란 성'은 회색빛 암벽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아직 잎이 나지 않아 엉성한 나뭇가지가 얼키설키 얽혀 있는 수풀의 뒤쪽에 위치한 복마전은 음산한 자용(姿容)을 뽐내며 검은 눈의 이방인이 입장하는 것을 목도했다. 때마침 먹구름과 스산한 바람이 몰려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고, 드라큘라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도 함께 찾아왔다.

 


그런데 브란 성 초입에는 드라큘라를 이용해 한몫 잡아보려는 장사치들이 기념품을 질펀하게 늘어놓고선 흥겹게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드라큘라'나 '뱀파이어'라는 브랜드가 붙어있는 와인, 이를 드러낸 채 괴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드라큘라 백작이 가슴 부근에 박힌 티셔츠, 뭉크의 '절규'에서 괴로운 인상을 짓고 있는 인간을 연상시키는 기괴망측한 가면까지 면면은 화려했으나 한데 묶어놓으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러니한 모습들을 뒤로 하고 천천히 드라큘라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을 위쪽으로 고정하고 비탈진 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다홍빛 삼각지붕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브란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알파벳이 어지러이 새겨진 정문 내부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했다.

 

안쪽에선 다시 한 번 기대가 허물어졌다. 놀이동산 구석을 차지하는 '유령의 집' 따위에서 피어나는 음습함을 상상했던 사람들은 산뜻하게 칠해진 흰색 벽과 아담한 아치가 그려내는 아름다움의 '반전'에 긴장의 끈을 풀고 만다. 성체 내부는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따스하게 비추는 은은한 아침햇살 덕분에 마음만은 온기로 충만해졌다.

 

기분 나쁜 관이나 고문기구 같이 악마 드라큘라와 연관 지을 만한 도구는 전혀 없었다. 1920년부터 브란 성을 여름용 별장으로 사용했다는 메리 여왕은 서유럽에서 들여온 고가구로 회의실과 침실을 소담하게 꾸며놓았다.

 

회의실과 위층을 연결해주는 '비밀의 계단'은 유일하게 드라큘라의 공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로 폭이 좁은 계단은 바위를 직접 뚫어서 만든 동굴처럼 거칠고 가팔랐다. 30초간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탁 트인 주랑에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관람을 마친 뒤 아래로 내려가도록 설치된 복도를 따라가며 여러 각도에서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성과 대면하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도대체 드라큘라는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방명록에 '드라큘라야, 어디 있니?'라고 쓴 루마니아 사람도 같은 기분을 느꼈나 보다. 그래도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드라큘라가 없어도 브란 성은 충분히 매혹적'이라고.

 

 

 

 

 

 

 

 

사진/김병만 기자(kimb01@yna.co.kr), 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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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르페르 2006-05-24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