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루마니아②창문 너머로 시간이 내려앉다

피나얀 2006. 5. 24. 20:25

 

시비우의 의회 탑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

루마니아 한복판에 중세 서유럽 스타일의 건물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살펴보려면 부득불 역사를 뒤적거려야 한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지배하고자 했던 헝가리 국왕은 특이하게도 헝가리인이 아니라 독일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도시를 건설토록 했다.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 시비우와 시기쇼아라였는데, 근면했던 독일인들은 훗날 길드를 조직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고 번성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루마니아 곳곳에 중세 유럽의 진향(眞香)이 배어나게 됐다.

 

루마니아 속의 작은 독일, 시비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루마니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시비우는 2007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돼 도시 미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시 전망을 살피기 위해 구시가에 있는 의회 탑에 올랐다. 나선형의 좁은 통로를 통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동굴에서나 감지되던 한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소설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천천히 밟아나가야 했다. 꼭대기로 향하는 동안 좁은 창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시내 전경이 막연한 불안함을 설렘으로 치환해주었다.

 

시내를 시원스레 굽어보려면 역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야 하는 것일까. 삐죽삐죽 고층건물이 솟아 있어 굴곡이 심한 대도시들과는 달리 고딕 냄새가 물씬 나는 교회와 눈앞에 보이는 색색의 집들을 빼면 빛바랜 붉은색 지붕밖에 눈에 띄질 않아 경치가 언뜻 단조롭기도 하다.

 

중세 권력의 중심이었던 교회만이 위풍당당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나머지 건물들은 바짝 엎드린 채 복종하는 듯한 형국이 '중세'라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풍겼다.

 

1520년에 완성된 복음교회는 뾰족하게 솟은 수직 첨탑과 직선구조로 미루어 단번에 고딕양식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물러간 독일인의 유적인 셈이다. 의회 탑에서는 다른 건물에 가려 고독하게 뻗어있는 한가운데의 시계탑만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양옆으로 올망졸망한 식구들이 많이 딸린 널찍한 교회였다.

 

교회 내부는 웅장했고, 그 탓인지 엄청나게 추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매주 예배를 드리러 찾아오는데, 겨울이면 기온이 -15℃까지 떨어질 만큼 냉랭하다고 한다. 대형 아치 아래로는 예수가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여과된 햇빛을 받으며 홀로 십자가에 박혀 있었다.

 


아담하고 차분한 고도, 시기쇼아라

 

시비우에서 시기쇼아라로 가는 길은 차로 1시간 30분 정도. 산도 없고 수목도 없는 밋밋한 트란실바니아의 초원 풍경을 감상하며 콧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도착할 만한 거리다.

 

시기쇼아라는 시비우처럼 독일인이 건설한 도시로 중세에는 시비우와 쌍벽을 이룰 만큼 융성했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도시로 변모해 있다. 두어 시간만 걸으면 대강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하고 차분한 고도(古都)다.

 

몽환적인 중세 유럽으로의 탐험은 그 동안의 수많은 자취로 반질반질하게 닳아져버린 바닥의 돌을 따라 진행됐다. 성채의 중심에 서 있는 높이 64m의 시계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치 여럿을 지나야만 한다.

 

 

 

시계탑의 시계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시침과 분침을 밀어내며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강을 건넌다. 시계 옆에서는 올리브 잎을 품에 안은 평화', 천칭을 들고 있는 '정의', 칼을 휘두르는 '법' 따위의 가치를 상징하는 목각인형들이 도덕적 선(善)을 강조하려는 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회전하고 있었다.

 

짓궂은 상념에 잠겨 유물 전시실을 대충 훑어보고 나니 어느새 탑의 꼭대기다. 건너편 산중턱부터 내려앉은 도시엔 말 위에 올라탄 기사나 검은 수도복을 입은 성직자, 신비로움을 조장하는 희뿌연 운무가 없었다. 훼손되지 않은 건물에만 중세의 형적이 남아있을 뿐, 500년 뒤로 밀린 인간의 삶은 현세에 머물러 있었다.

 

 

 

 

 

 

 

 

 

사진/김병만 기자(kimb01@yna.co.kr), 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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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르페르 2006-05-24 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