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창덕궁, 가슴까지 먹먹해지는 ‘마지막 황족’의 여운

피나얀 2006. 6. 6. 18:12

출처-[헤럴드 생생뉴스 2006-06-06 10:05]

 


“방 구경, 마루 구경하러 오는 거지.” 창덕궁 지킴이의 얘기다. 맞다. 16일부터 일반에 공개될 창덕궁 낙선재엔 격동의 근대사가 흐른다. 단아한 외관에만 홀리면 곤란하다.

 

방과 마루를 훑어야 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들의 발걸음이 스치고 탄식이 맴돌았던 생활공간에는 아직도 여운이 감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한제국 황족들은 최근까지 낙선재 권역에 머물렀다.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 일본 귀족과 정략결혼에 떠밀리고 정신질환에 시달린 덕혜옹주는 한많은 이승의 삶을 낙선재에서 마감했다. 지금은 영친왕 둘째아들인 이구 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이번에 공개될 부분은 낙선재 옆으로 뒤에 붙어선 석복헌을 비롯한 수강재와 취운정, 한정당, 상량정 등이다. 역사의 슬픔이 어린 낙선재 권역은 아기자기하다. 오밀조밀하다. 한국식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이 숨쉰다. 웅장한 볼거리를 기대했으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낙선재 뒤편으로 올라가면 육각형의 누각 상량전을 만난다. 상량전에 서면 낙선재 권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이 시원하다. 지붕의 선들이 잇대고 맞댔다.

 

봄 햇살이 지붕 마루에 고였다가 흘러내려 추녀에 멈춘다. 그 너머로 웃자란 갈대처럼 현대식 빌딩들이 비죽비죽 봉우리를 이룬다.

 

낙선재 북쪽의 후원은 아담하지만 단아하면서도 화사하다. 창덕궁 전체 면적은 약 15만5000평. 후원이 10만평을 넘어선다. 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오솔길 양켠에 우거진 나무가 내린 그늘이 상큼하다. 그렇게 걷다 보면 부용지와 부용정에 이른다. 이곳은 후원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

 

네모진 연못 부용지 가운데 동그란 섬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맞춰 조성됐다. 땅이 하늘을 가뒀다. 연못 수면 위에 무성한 연잎 사이사이로 하늘을 뜻하는 둥근 섬이 차오른다. 땅에 갇힌 하늘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부용정은 두 집게발을 부용지에 담근 채 물을 움켜쥐었다. 부용정을 위에서 바라보면 연꽃모양이라니, 연꽃의 뿌리가 연못에 내리는 모습일 거다. 부용정 반대방향에 부용지 일대가 한눈에 잡힐 듯한 주합루가 있다.

 

주합루를 마주보고 부용지 오른쪽 모서리에 서면 누구든 관광엽서 한장을 만들 수 있다. 카메라로 풍경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된다. 풍광이 참 수려하다.

 

부용지 일대를 빠져나오면 다시 연못과 정자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애련정이 다소곳이 연못가에 앉아있다. 부용정을 보고온 터라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자그마한 몸집 때문이다. 하지만 정취가 판이하다.

 

애련정이 호젓함을 안겨준다면, 부용정은 화사함이 빛나고, 애련정이 여성스럽고 부드러움을 지녔다면, 부용정은 남성스럽고 자기 품새를 뽐내려 든다. 음양의 조화를 강조했나. 한 정원에 어찌 이토록 다른 정자를 세웠을까.

 

인근엔 불로문과 금마문이 있다. 불로문을 지나가면 장수하고, 금마문을 거쳐가면 총명해진단다. 미혹한 마음이 발동해 두개 문을 여러 번 오갈 경우 ‘굵고 긴’ 인생을 살 수 있을 듯 싶어 발길이 절로 바빠진다.

 

겹지붕이 특이한 존덕정과 효명세자가 책을 읽던 폄우사를 지나 옥류천까지 올라가려면 땀샘과 발바닥이 고생이다. 나무가 무성해 땀방울이 송글거렸다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옥류천은 소박하다.

 

커다란 바위 사이로 물이 졸졸 흐르고 짚으로 지붕을 이은 청의정 등 정자가 옹기종기 주저앉았다. 여기서 왕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단다. 후원의 마지막까지 찾아온 ‘백성’들은 흐르는 땀에 완상미를 북돋워 감탄사나 토해낼까나. 왕이 부럽지 않은 음풍농월이다.

 

◇여행메모=드넓은 창덕궁에는 화장실과 매점이 단 두 군데뿐이다. 입장 장소인 돈화문과 후원의 부용지 옆에 있다. 창덕궁 내에서는 음료수를 마실 수 있지만 음식은 먹을 수 없으니 식사시간을 고려해 관람해야 한다.

 

15일부터 매주 목요일 창덕궁을 자유관람할 수 있다. 27년 만이다. 1000명에 한해 안내원 없이 자유롭게 창덕궁을 돌아볼 수 있다. 시간 제약도 없다. 기존 일반관람의 경우 인기 코스에서도 자유시간이 5분가량만 주어졌다.

 

현재 특별관람 구역인 옥류천 일대도 드나들 수 있다. 단 자유관람일지라도 숲 속, 건물 내부, 명허정, 신선원정, 복원된 궐내각사 등은 관람이 제한된다.

 

특별관람지역인 낙선재는 들어갈 수 없고 가격은 1만5000원으로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낙선재 권역 특별관람은 1일 2회, 한 회당 20명으로 관람객 수가 제한되고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가격은 5000원이다.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는 기존의 일반관람(입장료 3000원)은 자유관람일인 목요일과 휴무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