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6-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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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는 아무나 들어서지 못한다. 신의 허락을 얻은 자만이 평온하고 안전한 바닷길을 달려 고도(孤島)의 대지를 밟을 수 있다. 파고(波高)의 위협이 상존하는 그 곳에서는 자연도, 사람도 어리석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섬이 낭만적인 이유가, 아름다울 것이라 동경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도로 떠나기 전에는 항상 준비를 단단히 하곤 한다. 특히 남서부 해안가를 가는 길은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꽤 멀고 지루하다. 차가 막히지 않아도 최소한 6시간은 걸리니, 아침 먹고 출발하면 저녁나절에나 도착한다.
그래도 남도 여행이 좋은 것은 곡식이 푸르게 자라나는 광활한 들녘과 조촐하고 모나지 않은 산세가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여느 식당이든 푸짐하게 내오는 밥상에 행복해진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게 되는 많은 유적과 사찰에 놀라고, 천진스레 뛰노는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에 정감이 가기도 한다.
바다 건너 땅끝에 이르다
전라남도 완도. 따뜻하고 푸근한 남쪽 지방이다. 어린 시절 완도에 간다고 하면 반응은 한결같았다. 다소 걱정 어린 말투로 '배 타고 가느라 힘들겠다'는 것이다. 해남과 완도를 잇는 다리가 놓인 지 한참이 지난 뒤였는데도 그들의 인식에는 낙도로 각인된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시민이 자동차나 자전거로 여의도를 들락날락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완도군은 본섬인 완도를 비롯해 201개의 주옥같은 섬들을 총칭한다. 완도 자체는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해도 나머지 섬을 가려면 항구에서 배를 타야 한다. 지난해 말 신지대교가 놓여 신지도 역시 편하게 오갈 수 있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
완도대교를 건너자 도로가 바다 곁을 벗어나지 못했다. 섬을 일주하는 길은 언제나 짙푸른 바다를 끼고 있다. 청해진 유적지에 닿기 전 이름 없는 마을에 차를 댔다.
물때가 맞았는지 갯벌 위에서 어선이 뒹굴고 있었다. 지탱할 곳을 상실한 배는 축 늘어진 밧줄에 묶여 물이 다시 차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펄에는 진흙부터 자갈, 커다란 돌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무질서의 전형을 보여줬다.
파도가 훑고 지나간 갯벌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아로새겨졌고, 군데군데 질펀하게 고인 웅덩이 속에서는 초록색 해초들이 기생했다.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한적한 어촌 풍경이었다. 다소 쓸쓸하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평정을 되찾은 듯 평화로웠다. 나체가 된 갯벌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생물은 거대한 자연의 흐름에 육신을 맡겼다.
청해진 수석공원과 신지대교를 지나 완도읍에 다다랐다. 가장 먼저 횟집과 모텔이 눈에 띈다. 휴가철이 되면 북새통을 이룰 테지만 아직은 수선스럽지 않고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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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맞댄 고기잡이배들 뒤로 동그란 섬이 보였다. 더 이상 뿌리 내리기 힘들 정도로
수목들이 빽빽했다. 구슬 같이 생겨서 '주도(珠島)'라고 불리는 이 섬은 130여 종의 상록수가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이다. 벌채를 금하는
봉산이라 원시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섬에서 시작해 섬으로 끝나다
완도에 2박 3일 이상 머무를 생각이라면, 배를 타고 뭍을 나서게 된다. 완도를 돌아보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남쪽과 동쪽으로 흩어져 있는 섬들은 특색이 다르고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아서 모두 가볼 만하다. 완도보다도 때 묻지 않은 곳이다.
보길도의 통리해수욕장에서는 이방인을 눈여겨보는 이도, 훔쳐보는 이도 없었다. 양탄자처럼 푹신한 모래를 밟고 바다로 나아갔다. 물이 빠지는 시간인지 바다가 닿았던 언저리에 작은 돌멩이와 조개, 소라 껍데기가 널렸다. 멀리 보이는 곳에선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손을 놀리고 있었다.
"바지락 캐는 거제. 여기 게 맛이 좋다 안 하요. 캔 곳을 나중에 보면 또 있응께 캐고 캐고 하는 거지라. 아직은 작은 거 같은디 한번 가 보쇼. 먹을 만한 놈으로 줄 텐께." 구수한 사투리에 인정이 묻어났다.
마지막 행선지는 신지도였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완도의 전경이 오른편으로 스쳐갔다. 이 섬도 유명한 것은 해수욕장이다. 곱디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있고 밤마다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해서 '명사십리(鳴沙十里)'라 하는 곳이다.
모래를 한 움큼 쥐었더니 손가락 틈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조개껍데기가 부서져 모래가 됐는지 색이 하얗고 반짝거린다. 일군의 젊은이들은 그 위를 뛰어다녔고 파도 소리는 여느 때처럼 청량했다. 완도를 떠난 이후 더 이상 바다를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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