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6-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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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고립무원한 곳이다. 그래서 고독하지만 반대로 편안하기도 하다. 작은 섬으로 낙향한 이는 이미 심신이 찌들어 있는 상태다. 그가 무한한 욕심을 버린다면, 소박하게 안거하고자 한다면 섬은 그 자체로 휴식처가 된다.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지라 방문하는 외부인도 드물고, 인사치레를 위해 누군가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그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자연과 대화하고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조선시대의 학자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도 그러했다. 치열한 당쟁에서 밀려나 유배지를 떠돌던 그는 병자호란 직후 제주도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들른 보길도의 매력에 사로잡혀 이곳을 거처로 선택했다.
그는 부용동에 은둔하며 세연정, 낙서재, 동천석실 등의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살아갔다. 물아일체에 빠진 고기잡이의 심정을 노래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이곳에서 잉태됐다.
세연정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묘한 구석이 있는 정원이다. 서양의 화려한 중세 건축물에 비하면 일견 초라해 보이지만 물과 나무가 그려내는 풍정은 고즈넉하고 포근하다. 자연을 해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살려냈다.
인간의 눈을 의심케 하고, 정신을 압도하는 거대함은 없지만 작은 세계 안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술과 책을 벗삼아 화조풍월을 감상하기엔 더 이상 좋은 장소가 없을 듯했다. 이곳에서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자연스레 사라지고 편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유난히 잎사귀가 싱그러운 동백나무와 사시사철 앙상한 대나무가 입구에서 길손을 맞았다. 봄볕을 받고 돋아나기 시작한 이파리들은 여름을 맞이해 한껏 녹음을 뽐냈다.
나무를 배경 삼아 정원을 휘돌아 나가는 못에는 청록빛 물이 세차게 흘러내렸다. 윤선도가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시(時)를 논했다면, 훗날의 방문객은 바람의 흐름 속에서 수목이 빚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과 교감한 나무는 저마다 다른 음색의 소리로 노래를 했고, 연못은 파동을 치며 굴곡을 만들었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정자 앞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드리워져 있었다. 윤선도는 절개를 상징하는 거목을 심어놓고 권력에서 배제된 자신을 위무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실제로는 주연을 열고 흥을 돋웠다. 그는 다도해의 소도에서 세상을 잊어갔고 안빈낙도하는 삶에 만족하다 숨을 거뒀다.
세연정에서 더 올라가면 윤선도의 거주공간이었던 낙서재, 사색과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던 동천석실이 있다. 전망이 뛰어난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동천석실은 현실에서 탈피해 신선이 되고자 했던 윤선도의 마음을 대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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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이 풍류를 즐겼던 국내 최고 정원
역사적 아이러니는 윤선도의 정적이었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왕세자 책봉 문제로 관작을 삭탈 당한 뒤 보길도에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던 중 경치가 좋은 바위에 올라 씁쓸한 심정을 노래했다.
바위에 시구를 새긴 '글씐바위'는 거뭇거뭇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선명했다. 그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물리쳤던 윤선도와 같은 처지로 전락해 인생무상을 탓할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보길도가 제주도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는 곁다리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고귀한 섬이다. 특히 섬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해수욕장과 해변은 저마다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또한 보길도는 윤선도가 '산들이 둘러 있어 바다 소리가 들리지 않고 물과 돌이 절승하니 물외의 가경이라'고 칭했던 것처럼 산행하기 좋은 곳이다. 차를 몰고 항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늑하다. 어딜 가나 자연과 함께하기 때문에 즐겁고 넉넉한 섬이 바로 보길도다.
▶여행정보 = 완도 화흥포항에서 보길도까지 1일 10회 운항한다. 노화도와 소안도를 거치며 1시간 10분 소요된다. 배편 요금은 개인 7천 원, 차량은 운전자 포함 2만 원이다. 061-55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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