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완도③ 장보고, 위인인가 악인인가

피나얀 2006. 6. 9. 22:05

출처-[연합르페르 2006-06-08 10:11]

 


완도 장좌리에서는 하루에 2번, 바닷물이 빠졌을 때만 갈 수 있는 섬이 있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도'다. 이곳에서는 조사 결과 당시의 유물로 사료되는 토성과 기와의 파편, 우물 등이 발굴됐다. 또한 지름이 50㎝에 달하는 목책들이 해안가에 늘어서 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이곳에서는 청해진 유적지 복원사업이 한창이었다. 공사를 위해 쌓아놓은 자재와 흙더미 위로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망루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1000년도 훨씬 전인 신라시대에 동북아시아 3국의 바다를 호령했던 해상왕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듯했다. 기나긴 세월과 수많은 인간들이 모든 것을 지워버린 탓이다.

 

꼭대기에 위치한 정자에 올라 굽어보니 크고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어 시야를 가린다. 망망대해와는 거리가 먼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다. 장엄하면서도 온화한 경치가 군사 진지였음을 잊게 했다. 어쩌면 그가 꿈꿨던 왕국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깊이 묻힌 도구들의 잔해뿐일지도 모른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완도 사람들의 장보고 사랑은 조금 특별한 데가 있다. 경향 각지를 막론하고 상호에 '청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횟집이나 어물전이 '청해'라면 열에 아홉은 주인이 완도 출신이다. '청해'는 완도의 옛 이름일 뿐더러 장보고가 만든 '청해진'과도 관련이 있다.

 

삼국유사에 '미천한 해도인(海道人)'이자 반란을 꾀했던 인물로 기록된 장보고는 지난해 방영됐던 드라마 '해신'으로 재조명됐다. 단숨에 역적에서 왕조를 지켜내려 한 충신이자 노예로 팔려간 신라인을 도운 구국의 영웅으로 격상된 것이다.

 

반대파들에게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장보고는 이미 일본의 역사서에서는 '신라명신'으로 신격화돼 있었지만, 자신의 고향에서는 사후 한동안 간웅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해신' 덕분에 완도는 새로운 관광 상품을 얻었다. 드라마를 찍으려고 건립했던 세트가 그대로 남은 것이다. 당나라 시대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신라방'과 청해진의 모습을 재현한 '청해 포구마을' 세트장은 완도의 동서에 위치한다.

 

'신라방' 세트장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한가운데 작은 운하가 나 있고 양옆으로 목조가옥이 도열해 있다. 처마 끝에 달린 새빨간 연등이 중국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건물 앞에는 처량하게 묶인 나룻배 한 척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대 중국의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중국인 목수들이 현지에서 공수해 온 재료로 건설했다고 한다.


조금 더 안쪽에는 신라인을 노예로 거래하던 '이도형 상도'와 '정화여각’ 등이 자리한다. 장보고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장면을 찍은 곳이다. 건너편과는 대조적으로 돌로 된 건물이 다수다.

 

'빈자인서부(貧者因書富)', '부자인서의(富者因書義)'라는 현판이 설주에 걸린 문에 입장했다. 가난한 사람은 글을 통해 글을 통해 부유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글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글귀다.

 

내부에는 장소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드라마에만 국한돼 있었다. '해신'을 시청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선 장보고의 생애에서 어떤 가치를 지닌 곳인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청해진이 눈앞에 현재하다

 

바다 옆에 지어진 소세포 세트장은 비단 '해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이전을 배경으로 삼는 최근의 드라마라면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 갔다. '서동요', '신돈'을 비롯해 배용준이 주연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던 '태왕사신기'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곳에는 사박거리는 흙길을 따라 초가집과 청해진 본영이 설치돼 있다. 바다가 지척에 있어서인지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소세포 앞바다에는 소품으로 활용했던 무역선 몇 척이 떠 있다.

 

돛도 없고 승무원도 없는 배에는 '장(張)'자가 새겨진 깃발이 태양 아래서 펄럭였다. 장도의 유적지가 과거에는 아마도 이러했을진대, 군인 없는 병영에는 '소리 없는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강한 바람에도 파도는 잔잔했다.

 

장보고의 삶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를 뒤집어도 보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항상 즐겁다. 권력자의 시각에서 서술한 정사 뒤에 숨겨진 야사가 흥미로운 까닭도 마찬가지다. 학자가 아니라면 인물의 삶을 소설처럼 읽고 배울 점만 취사선택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