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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살짝 맛보고 옆으로 톡… ‘디지털 메뚜기족’ 는다

피나얀 2006. 6. 10. 20:26

 

출처-[동아일보 2006-06-10 14:45]

 


《게임도… 6일 오후 5시. 친구 5명과 PC방을 찾은 대학생 김보람(27) 씨. 자동차 경주게임 ‘카트라이더’를 시작해 8분 만에 끝내고 1인칭 게임 ‘워록’으로 옮겨가 15분을 즐겼다.

 

다시 농구 게임 ‘프리스타일’을 시작해 10분간 한 뒤 이어 5분간 고스톱 게임. 마무리는 롤플레잉 게임 ‘마비노기’로 했다. 김 씨가 5가지 게임을 즐긴 시간은 1시간. 김 씨는 “요즘은 한 게임을 오래 하기보다 1시간에 평균 5∼6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게임을 ‘맛보기’식으로 즐기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

 

음악도… 최근 30GB(기가바이트)짜리 MP3 플레이어를 구입한 대학생 한상훈(26) 씨. 집의 데스크톱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던 MP3 파일 1000여 개와 200여 장의 CD 수록곡을 MP3로 변환해 총 3000여 곡을 MP3 플레이어에 담았다.

 

 이는 대략 앨범 300장에 해당하는 분량. 요즘 한 씨의 음악 감상법은 CD 플레이어를 사용할 때와 다르다. “양이 많다 보니 한 곡을 끝까지 듣기보다 도입부나 하이라이트만 듣고 다음 곡으로 빨리 넘긴다”는 것.》

 

○우리는 ‘디지털 플리퍼’족

 

TV 채널을 1분에 두세 번씩 바꾸며 재미있는 것만 골라 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플리퍼(flipper)족’. 최근에는 이런 ‘메뚜기’식 감상법이 MP3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 휴대형 멀티미디어 재생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대중문화 콘텐츠를 ‘살짝 맛보기’하는 디지털 플리퍼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루니아전기’를 개발한 게임사 ‘올엠’의 김영국 개발이사는 “요즘 게이머들은 짧게 해보고 안 되면 바로 떠나는 경향이 있다”며 “다중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 업체조차 게임 시작 10분 내에 자극을 주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음악 역시 긴 곡이나 느린 발라드보다는 쉽고 간결한 미디엄 템포 곡들이 인기다. 이들 곡의 특징은 도입부, 앞부분을 듣고 넘기는 디지털 플리퍼족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곡의 하이라이트를 앞부분으로 이동시켰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대부분 발단-전개-절정-결말의 구조가 아닌 앞부분 30초에 승부를 걸고 있다”며 “이는 대량으로 노래를 ‘소비’하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도 나타난다. 방대한 뉴스가 쏟아지다 보니 갈수록 제목과 앞부분만 훑고 지나가는 ‘뉴스 플리퍼’족이 늘고 있는 것.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경우 개인당 뉴스 클릭 횟수가 지난해 5월 평균 150건에서 올해 4월 170건으로 늘었다.

 

대학원생 김은진(25·여) 씨는 “인터넷에서 뉴스를 볼 경우 4줄 이상 읽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리꾼들의 눈길을 잡기 위해 뉴스와는 동떨어진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살짝 맛보기’의 미학? 대안적인 ‘생존 방식’?

 

디지털 플리퍼족의 ‘살짝 맛보기’는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진다. 대학생 신정순(25·여) 씨는 “학기마다 강의, 스터디그룹 등 3, 4개의 소모임을 만들지만 조원들과의 친분은 그때뿐이고 학기가 끝난 뒤엔 만나도 겨우 눈인사나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 가입과 탈퇴가 엄격했던 동아리의 인간관계도 느슨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디지털 플리퍼족의 행동은 △빠르게 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대량의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관념 △한 가지 능력보다 ‘멀티 태스킹’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를 ‘향유’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디지털 세대의 의식 반영 등으로 풀이된다.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정보의 바다에서 특정 부분에만 오래 빠져 있으면 경쟁에서 뒤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퍼져 있는 것이 원인”이라며 “‘오래 주목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디지털 플리퍼족 문화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