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6-07-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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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입구 매표소 문 |
ⓒ2006 유진택 |
선운사 하면 고창, 고창 하면 선운사가 떠오를 정도로 방방곡곡 잘 알려진 고창 선운사, 이름만 알고 지내다가 막상 회사직원 18명과 함께 지난 1일(토) 선운사를 밟게 되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선운사 입구까지 이어진 계곡은 잘 닦여진 도로와 어깨동무를 하고 몽실몽실 물안개를 피어 올리고 있었다.
한창 연분홍 꽃술을 매단 채 죽은 듯이 꿈을 꾸고 있는 자귀나무꽃과 검은빛으로 농익은 열매가 군침을 돌게 하는 복분자밭, 그리고 울창하게 들어찬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단풍나무숲길은 한 번씩 몽실몽실 스쳐 지나간 물안개 때문에 더 싱싱하게 보였다.
절 마당을 환하게 불 밝힌 접시꽃과 불두화
계곡의 물안개를 마음에 담고 사천왕문을 거쳐 선운사 마당에 발을 디뎠을 때 관음전, 명부전 뜨락앞에 한창 꽃불을 사르고 있는 꽃들에 눈길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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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전 앞 뜨락에는 연분홍 접시꽃이 제 철을 맞아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
ⓒ2006 유진택 |
줄기마다 접시처럼 잎을 벌린 연분홍 꽃들이 흩뿌리는 빗물에 젖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꽃들 때문에 절 마당은 한결 더 환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명부전 옆에서 주먹만한 꽃을 소리없이 터뜨리고 있는 불두화도 눈길이 멎기는 마찬가지였다.
꽃잎이 주름살처럼 자글자글 뭉쳐 꼭 부처의 머리를 닮아 이름 붙여진 불두화, 명부전 안의 지장보살은 그 불두화가 얼마나 자신의 머리를 닮았는지 궁금증을 못 이겨 자꾸만 몸을 뒤척이는 것 같았다.
대웅보전 뒷산의 동백숲엔 미당의 시 한 구절이 떠돌고
그러나 대웅보전 뒤의 동백숲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많은 동백꽃이 언제 다 졌을까. 숯불처럼 불살라 오르던 꽃들은 뚝뚝 모가지 째 꺾여 지고 두터운 잎들만 남아 늦은 봄날의 영화를 알려주는 동백 숲, 조금만 더 앞당겨 왔어도 빨간 기운으로 불덩이 째 타오르던 동백꽃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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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를 에워싼 담장의 쪽문으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 |
ⓒ2006 유진택 |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동백을 보지 못한 미당의 마음도 나처럼 내내 쓸쓸했던 모양이다.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 속에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시의 행간에 들어있는 고운 시어들이 활활 동백꽃으로 타올라 온통 내 마음을 흥건한 꽃물로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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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암굴이 꼭 짐승의 아가리처럼 보인다 | |
ⓒ2006 유진택 |
어찌 보면 대전에서 2시간 반을 달려온 선운사까지 와서도 흔하디흔한 꽃에만 탐닉하다 돌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이 바로 어리석은 중생들이었다. 내가 꽃에만 정신이 팔린 사이 고개를 돌려보니 정갈한 담장에 뚫린 작은 쪽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일행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상사화처럼 서로 그리워하는 선운사와 도솔암
말이 그렇지 도솔암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왜 한 절에 속해있는 암자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까. 선운사 옆 어디 한적한 곳에라도 자리를 틀고 있으면 잠깐 잠깐 둘러보는 맛도 있어 좋으련만, 가도 가도 끝없는 거리에 있다 보니 지치기 마련이었다.
창건당시엔 89개의 암자가 산속에 흩어져 있었지만 현재는 도솔암을 포함 3개만 남아있어 더욱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비는 왜 그리 퍼붓는지, 선운사를 둘러볼 때만해도 비는 견디기 좋을 만큼 흩뿌렸는데 도솔암을 향해 산길을 오를수록 비는 더 거세게 쏟아졌다.
우산이 필요 없다고 큰소리치며 걷던 나도 어쩔 수 없이 일행의 우산 속에 몸을 맡겨야 했다. 도솔암은 평지에 있는 선운사보다 더 산속을 향해 굽이굽이 들어가는 바람에 기온부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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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마당에 들어서있는 만세루가 아주 편안한 느낌을 준다 |
ⓒ2006 유진택 |
그러나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산벚나무 단풍나무가 빽빽이 들어차있는 산길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상사화 군락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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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 장장 600년, 높이 23미터인 장사송이 우산처럼 보인다 | |
ⓒ2006 유진택 |
잎이 트면 꽃이 지고 꽃이 피면 잎이 져서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상사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솔암과 선운사도 상사화처럼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상사화의 그리움을 않고 도솔암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도 도저히 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몇 백 미터 전방에 도솔암을 남겨두고 결국 하산
그 와중에 도착한 곳이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다. 짐승의 아가리처럼 떡 벌리고 있는 굴에 얼른 들어가 비를 피했지만 굴속도 습기가 차고 무덥기는 매 한가지였다. 어둠이 고여 있는 굴속엔 누가 예불을 드렸는지 그 흔적들이 역력하다. 도저히 비기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산을 서두르기로 했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몇 백 미터 전방에 도솔암을 남겨두고 돌아서야 하는 길이 아쉬웠지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간다는 것도 그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진흥굴 옆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장사송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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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전(우측)과 그 옆 명부전이 아주 정갈한 느낌이다 |
ⓒ2006 유진택 |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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