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신의 조각품 블라이드 리버 캐니언

피나얀 2006. 8. 2. 20:17

 

출처-[경향신문 2006-08-02 15:12]

 

 


호스푸르잇(Hoedspruit) 공항에서 로지(lodge)까지 가는 길은 지루했다. 사바나 초원 사이로 가끔 덩그러니 바오밥 나무만 눈에 띌 뿐이다. 그래, 여기는 아프리카였지. 남한의 5분의 1에 달하는 국립공원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듯 달리고 있다. 그녀석들을 보기 위한 3만리 여행.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루거 국립공원은 초보 사파리 여행자들에게 적당한 곳이다. 짧은 일정으로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말아톤’의 조승우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곳이지만-에 갔다간 자칫 코끼리 엉덩이도 못보고 올 수도 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닿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겐 크루거가 최고의 선택이다. 게임리저브(사설보호구역)에 비교적 동물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지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곤 내미는 서류 하나. ‘본 로지는 게임드라이브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사자에 물려죽어도 자기 책임이란 얘기다. 이것이 게임의 룰이다.

 

오후 4시, 랜드로버를 타고 초원으로 나간다. 동물은 지천에 널렸다. 왼쪽엔 코뿔소, 오른쪽엔 임팔라. 모두들 무심코 우리를 지켜보다 자기 갈 길을 간다. 이곳을 추천해준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아따, 그놈들 자연산이라 싱싱하더구먼.”

 

초원에 오면 ‘빅 파이브’란 단어를 계속 접하게 된다. 빅 파이브란 사자,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펄로다. 레인저(ranger·국립공원 감시인으로 관광객을 안내하는 사람)가 말한다. “이틀동안 빅파이브를 모두 만날 수 있다면 행운이지요. 하지만 최소한 이곳을 지배하는 ‘킹’만은 보여드릴 겁니다.”

 

눈이 밝은 줄루족 트래커(tracker·배설물이나 발자국으로 동물을 추적하는 사람)가 조그맣게 나 있는 삼각형 발자국을 하나 발견했다. ‘킹’의 자취였다. 한시간여를 헤매다 결국 발견한 사자. “날이 저물어 더 접근하면 위험할 것 같다. 내일 새벽에 보러오자”는 레인저의 말에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로지로 돌아가는 길에 코끼리 떼를 만났다. 하나, 둘, 셋, 넷…. 코끼리가 끊임없이 몰려오더니 호수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때 무리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온 버펄로 한마리. 덩치가 제법 되는 코끼리 두어마리가 나무를 흔들며 위협하자 버펄로는 물맛도 못보고 발길을 돌린다. 목이 타기는 녀석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한참 달려 조용한 벌판에 이르자 레인저와 트래커는 테이블을 펴고 ‘자연속 바(bar)’를 열었다.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들. 누군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불평을 했다. 그러자 레인저가 입을 뗀다.

 

“몇년전 이탈리아 단체 관광객이 차 두대에 나눠 탔어요. 첫날에 내 차에서 표범을 보고 다른 차는 아무것도 못봤죠. 그러자 다음날 저쪽 차에서 9명이 우르르 이 차로 몰려오더군요. 그런데 다음날은 내가 허탕을 쳤어요. 그러자 다시 저쪽 차로 우르르 몰려가더군요.” 난 피식 웃었다. 조삼모사는 한국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기에.

 

레인저가 팔에 있는 30㎝의 흉터를 보여줬다. “몇년전 독사에 물렸는데 팔이 퉁퉁 부어 올랐어요. 그래서 제가 칼로 물린 부위를 찢어버렸어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지만 동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여기 있을 수 없을 거예요.”

 

다음날 왕을 영접하기 위해 새벽같이 나섰다. 트래커는 똥을 집어 냄새를 맡더니 한시간 전쯤 이곳을 통과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2시간의 방황. ‘못보고 가는거 아냐.’ 마음은 점점 초조해진다. 갑자기 트래커의 조용한 외침. “근처에 있어요.” 순간 느슨했던 신경세포들이 활을 당기듯 팽팽해진다. 드디어 녀석이다. 저멀리 어슬렁거리는 그림자가 보인다.

 

동물들은 털털털 기름냄새를 풍기며 움직이는 차를 그저 ‘움직이는 돌덩이’쯤으로 생각하지만 누군가 차에서 내려 발을 디디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레인저가 얘기한다. 엉덩이를 들썩이지 말라구. 놈이 당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

 

숨을 죽이고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철컥철컥 필름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다. 놈은 역시 왕이었다. 사람을 봐도 도망가기 바쁜 여타 동물들과는 달리 품위가 보였다. 카메라 세례에 익숙한 대스타처럼.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땅 위에 나는 랜드로버 위에. 그는 나를 구경하고 나는 그를 구경한다. 내가 그와 같은 공간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그는 내게 달려들어 내 통통한 허벅지를 물어뜯을 것이다.

 

고독하니. 그래 고독해, 그리고 무료해. 그럴리가. 우리나라엔 니 친구가 철장안에서 살고 있단다, 너는 행복한거야.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녀석은 슬그머니 일어나 초원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여행 길잡이

크루거 국립공원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로 한시간쯤 걸린다. 호스프루잇(Hoedspruit), 팔라보르와(Phalaborwa), 크루거 음푸말랑가로 불리는 넬스프루잇(Nelspruit) 등 세개의 공항에서 자동차로 이동한다.

 

국립공원 캠핑장과 로지들은 인터넷(www.sanparks.org/parks/kruger/)으로 예약 가능하고 사설보호구역 내 로지들은 식사와 하루 두 번의 게임 드라이브를 포함해 1박 20만원 이상이다. 크루거 국립공원 패키지를 취급하는 여행사도 있다.

 

남아공은 지금 겨울. 맑은 날 한낮엔 반팔도 가능하지만 게임 드라이브를 나설 땐 두툼한 옷을 갖추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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