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태백② 고원에 펼쳐진 야생화의 천국

피나얀 2006. 8. 4. 21:14

 

출처-[연합르페르 2006-08-04 09:56]

 

 


야생화는 작지만 강인하고, 볼품없는 듯하지만 아름답다. 길섶에 늘어서 있어도 행인의 눈길 한번 잡아끌기 힘든 들꽃은 김춘수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을 가린 신부'와 같이 항상 신비롭고 순수하다.

 

수줍은 듯 프로포즈를 하며 건네는 장미꽃 한 다발이 남자의 손을 떠나 여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주위의 이목이 집중된다. 미(美)와 절정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든, 사랑과 맹세를 의미하는 핑크빛 장미든 청혼과 함께 장미를 받은 여성은 너무 기쁜 나머지 황홀경에 빠진다.

 

부러움과 시샘이 섞인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들지만, 들뜬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장미가 사랑을 이어주는 훌륭한 매개체이자, 황금 화살을 여인의 가슴에 명중시킨 에로스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알아보고 반기는 장미는 행복한 꽃이다. 나리나 튤립, 프리지어 역시 꽃에 대해 잘 모른다는 문외한도 이내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친숙하다. 관상용 꽃은 이미 생활의 일부로 다가와 평상시에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솔나리, 하늘나리, 눈개승마 등 야생화들은 이름도 억세고 유별나다.

그러나 근본은 같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첩첩산중이나 외딴 곳에 피어 있는 야생화는 쓸쓸하다. 바구니 안에 소담스레 포장된 꽃에 비하면 화려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능선을 뒤덮은 야생화의 물결은 시중에 유통되는 동종의 녀석들보다도 생명력이 넘치고 싱그럽다.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줄기나 이파리 끝에 가녀리게 매달려 있는 꽃들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장미가 통닭으로 사용될 목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먹이만 먹고 자란 브로일러라면, 야생화는 대지의 기운과 공기, 수분을 한껏 누리며 큰 튼튼한 토종닭이라 할 수 있다.

 

금대봉에 범꼬리가 활짝 피었네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는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이다. 환경부는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를 비롯해 한계령풀, 가시오갈피 등 희귀한 동식물이 많은 이곳을 '생태보호지구'로 지정해 놓고 있다. 두문동재에서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평탄한 편이지만, 평일이라 등산객이 많지 않았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가장 흔하게 눈에 밟히는 꽃은 '개망초'였다. 가운데 노란 꽃술과 가장자리의 흰 꽃잎이 계란 프라이를 닮아 '계란꽃'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실 개망초는 한 세기 전 외국문물이 유입될 무렵 함께 들어온 이국의 꽃이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녀석이라 눈에 익지만, 고유의 야생화는 아닌 셈이다.

 

싸리재에서 헬기장을 지나 금대봉으로 향했다. 정상은 아담한 초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방향을 꺾으며 낙동정맥의 산줄기와 만난다. 능선을 따라 계속 발길을 옮기니, 나무도 없는 곳에 풀만 무성했다.

 

고목나무샘에서 분주령까지는 '들꽃숲길'이란 명칭이 붙어 있다. 태백산에서 처음 발견된 노란색 '태백기린초', 가늘고 길쭉한 줄기 때문에 명명된 '꿩의다리', 미색의 작은 꽃들이 열매처럼 달린 '눈개승마'가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모양새는 벼이삭 같고, 색깔은 고운 분홍인 범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기도 했다.

 

 

많이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작 실체는 파악하지 못했던 꽃도 있었다. '엉겅퀴'는 가시가 많아서 가시나물이라고도 하는데, 홍일점처럼 초록빛 들판에서 홀로 붉은색을 발산했다. 벌도 꽃의 매력을 알고 있는지, 몸을 꽃잎에 파묻고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하산하는 길에는 보라색 용머리, 국화를 닮은 가는잎구절초, 꽃잎이 잘게 찢어져 하늘거리는 술패랭이 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꽃과 조우했다.

 

식물도감을 지참하거나 야생화에 해박한 사람과 동행하지 않으면 꽃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산중에서 야생화와 만나다 보면 수많은 보물을 한꺼번에 찾은 것처럼 기분이 행복해진다.

 

환상의 드라이브 길을 따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선수촌 태백분촌은 영월과 정선을 거쳐서 가야 한다. 물론 시가지를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잠깐 거칠 뿐이다. 강원도 특유의 꼬불꼬불한 길을 힘겹게 올라가면 고도가 1330m인 만항재에 이른다.

 

작은 매점 하나가 전부인 이곳에서도 범꼬리와 꿀풀, 노루오줌이 만개해 있었다. 짙게 낀 안개가 영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이 천국을 연상케 했다.

 

이번 여름에는 인파로 북적이는 바다에서 부대끼는 것보다 조용히 야생화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발버둥이 치며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 꽃들에게서 '희망'을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들이 망울을 터뜨린 것만도 신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