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8-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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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면에서 태백은 최고(最高)인 지역이다. 말 그대로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한 가장 높은 도시이자 가장 높은 도로와 훈련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전국에서 철도역이 가장 많다는 점과 제일 높은 역인 추전역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빠지지 않는다.
'철도의 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태백시 이곳저곳에서는 쉽게 역과 만날 수 있다. 가장 큰 태백역을 비롯해 철암역, 추전역, 백산역, 동백산역, 문곡역, 통리역, 동점역 등 역이 8개나 있다. 태백에 이렇듯 역이 많은 이유는 한때 전국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했던 석탄 때문이다.
충청북도 제천에서 갈라져 나온 중앙선은 태백에서 영동선과 만나 태백선이 된다. 제천-영월 구간을 시작으로 조금씩 길이를 늘려나간 태백선은 정선의 함백, 고한을 거쳐 태백의 백산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 20년의 세월이 걸렸고, 태백선 건설 후인 1975년부터 태백은 크게 성장하게 된다. 무연탄을 취급하는 산업선로였던 태백선은 지금도 화물 발송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동선 역시 초기부터 석탄 운반을 목적으로 개발됐으니, 이 지역에선 사람보다 석탄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삼척에 속해 있던 황지읍과 장성읍을 합쳐 1981년 태백시가 태어난 것 역시 광산 개발로 인한 인구 증가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석탄과 태백시는 나란히 쇠퇴의 길을 걸었고, 시내에 뻗어있던 철도도 이용자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차는 달린다
작년에 신축했다는 태백역에는 하루에 기차가 50여 대 정도 오간다. 그나마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지만 매점 아주머니는 "요즘엔 사람 없어요. 작년이랑, 올해랑. 차도 많고 길도 잘 돼서 버스 타요."라며 하소연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태백까지는 무궁화호가 대부분이고, 기차가 버스보다 1시간이나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차는 부지런히 역을 들락날락거렸다. 먼저 육중한 몸집을 과시하는 화물차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역에 멈췄다. 제천에서 동해까지 가는 이 열차는 태백에서 승무원이 교대한다고 했다.
화물차는 기관사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구간을 나눠 돌아가며 운전하는 방식으로 운행된다. 잠시 후 "18시 18분에 제천, 원주, 청량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2번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란 안내방송이 울리자 길손들이 채비를 서둘렀다.
미끄러지듯 도착한 열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깨를 포갠 연인이나 퇴근해서 집으로 향하는 듯한 중년의 신사는 창가 너머 단절된 세상을 응시했다. 경적을 울린 기차가 덜컹거리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역에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태백에서 가장 유명한 역은 아무래도 추전역일 듯싶다. 정선에서 정암굴을 통과하면 나오는 추전역의 이름은 '싸리밭골'에서 유래했다. 과거에는 화전민이 거주하는 자연부락 9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싸리나무만이 남아 있다. 10여 년 전부터 여객 업무를 중지해 세간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추전역은 환상선 눈꽃열차로 생기를 얻었다.
역 근처에서는 아직도 석탄을 캐는 작업이 한창이었고, 역사에는 직원 서너 명 외에는 인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해발 855m'라는 비석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역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근무했다는 직원의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장난스런 투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역을 지나갈 예정인 열차가 무선 연락을 하면, 이에 응답하기만 할 뿐 특별히 깃발을 흔들거나 승객을 통제할 일이 없었다.
다른 지역보다 겨울이 빨리 오고 늦게 가는 탓에, 사무실 연탄난로는 여름에도 불을 지피고 있었다. 겨울은 눈이 1m까지 쌓일 정도로 춥지만, 여름은 선선하고 녹음이 울창해서 최적의 근무환경을 제공할 듯했다.
백산역 역시 여객 취급은 거의 하지 않는 역이다. 통근을 위해 영주와 제천 방면으로 출퇴근 열차가 정차할 따름이다. 부역장은 한 달에 고작해야 10명 정도가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간이역'은 아니고, 일반 역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보통역과 간이역은 역장의 유무로 결정되는데, 보통 간이역은 역무원이 한 명에 불과하다.
다른 역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부터 석탄을 위해 탄생됐으니, 지금은 효용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열차는 철로 위를 달리고, 또 달린다. 그래서 역도, 사람도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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