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8-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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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이 숨을 막히게 할 때도 있나보다. 베 적삼 걸친 아낙네가 쭈그려 앉아 콩밭 매던 칠갑산 자락에서라면 어디에 내려서든지 짙푸른 초록빛깔에 숨이 턱 막혀온다. 온통 푸른 빛깔과 기운에 이내 정신마저 어질어질해진다. 산과 들이 이룬 초록의 향연에 몸과 마음이 흠뻑 물들어버린 탓에 눈은 더 이상 색깔의 감지마저 거부해버렸다.
'청양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것일까?'라는 자문처럼 누구나 궁금해했다. 맵기로 소문난 고추가 유명하긴 한데 도대체 이 땅 어디쯤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경상도나 전라도 혹은 강원도의 어디쯤일까? 칠갑산이 그 곳에 있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여도 보지만 아직 정확한 위치는 파악할 수 없다.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유명 관광지도, 공업이나 상업이 발달한 도시도 아니고, 고속도로를 타고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을 향하다 잠시 멈춰서 보지도 않은 그런 곳. 청양은 고요하고 무겁게 침묵하고 있어,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저 그런 곳으로 느껴졌다. 청양에 숨겨진 청정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청양은 대전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서해안의 대천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옛 백제의 도읍인 공주의 서쪽과 부여의 북쪽, 그러니까 충남 한복판의 내륙지대가 바로 청양인 것이다. 얼기설기 도로가 지나지만 그 흔한 고속도로 하나 이곳을 관통하지 않는다. 도로에는 자동차도 별로 없다. 그래서일까? 청양은 문명과는 격리된 채 시간을 잃어버린 곳으로 느껴졌다.
칠갑산을 둘러 난 도로를 자동차로 돌아보는 코스는 천장호(天庄湖)에서 시작한다. 국도 36번의 칠갑산 휴게소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오른쪽으로 향하자 울울창창 한 숲 사이로 하늘빛을 닮은 푸른 호수가 눈망울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농경지 관개용 저수지라고 하지만 호수와 그 안으로 빠져 들어가는 산자락이 이루는 풍광은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산과 호수가 멈춰 있고, 인적도 드물어 구름이라도 지나지 않으면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가끔 안개와 구름이 호수를 뒤덮을 때는 신령스런 분위기마저 연출한다고 한다.
청정 상쾌 옛길 드라이브
칠갑산 옛 도로 드라이브의 명성이 높아 국도를 버리고 칠갑산 옛길로 접어들었다. 공주 방향에서 지금의 국도를 잇는 대치터널에 조금 못 미쳐 진입할 수 있는데 경사를 오르자 이내 숲의 터널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구절양장으로 산허리를 감은 도로를 달리자 양쪽으로 소나무, 참나무, 벚나무 등 온갖 나무들이 울창하게 하늘을 가린다.
속도를 늦추고 차창을 내리자 초록바람이 몸 속까지 파고들며 청량감을 더한다. 차를 멈추고 잠시 나무 그늘 아래 주저앉아 살포시 눈을 감자 고요한 옛길에는 청아한 산새들의 지저귐과 싱그런 바람소리만이 귓가를 울려온다. 길가에 앉아 풀과 나무와 바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이내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칠갑산에서 콩 밭 매는 아낙네는 보기 어려웠지만 도로가에 세워진 호미를 든 아낙네의 조각상은 옛길이 다 끝나가도록 ‘콩 밭 매는 아낙네야~’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최익현 선생상이 있는 옛 도로의 정상은 칠갑산 등산로의 기점으로 울창한 옛 도로의 미려한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시야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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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을 빠져나와 645번 지방도를 타고 남으로 향하다 도로가 천을 가로지르는
까치네유원지에 이르자 칠갑산 서남쪽을 굽이굽이 흐르는 지천(之川)이 나타났다. 청양에서 가장 풍광 좋은 물놀이장소로 아직도 사람들의 물장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물 건너편을 바라보자 커다란 바위가 넘어질 듯 벼랑을 이루고 있고, 바닥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린 듯한 바위들이 박힌 듯 널브러져 있다. 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뤄 '지천구곡(之川九曲)'이라 불리는 곳. 굽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칠갑산을 휘돌자 초록의 넓은 들이 시야를 확장시킨다. 청양에서 초록빛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사위를 온통 물들인 초록은 대기 중의 공기처럼 그곳에 있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항상 그곳에 있어왔지만 없는 듯 고요하게 있는 청양처럼. 도시의 삭막함과 번잡함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초록 숲의 바다 청양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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