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붉게 물든 한강물에 '황홀'... 강 건너 관악산이 내 품에

피나얀 2006. 9. 1. 20:19

 

 

출처-[오마이뉴스 2006-09-01 09:28]

 

 

▲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2006 이정근
9월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들어보려면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회색빛 콘크리트 숲에 갇혀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이럴 때 전철을 타보세요. 짧은 시간이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구간이 있습니다.

확 트인 시야에 한강물이 출렁이고 강 건너 관악산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옵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고 철썩이는 강물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유일한 전철 구간입니다.

청춘소설 배경이었던 '중앙선'

 

▲ 강 건너 관악산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2006 이정근
용산역에서 청량리역을 가려면 지하철 1호선을 타게 됩니다. 익숙한 노선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하 구간 외에 지상으로 달리는 전철 구간이 있습니다. 예전엔 용산선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중앙선이라고 불리는 국철 구간입니다. 예전에 지하철 노선에 밀려 천대받던 화물노선이었지만, 전철 구간으로 탈바꿈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1906년에 개통되었으니 꽤 오래된 철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을 달려온 철마입니다. 강원도 탄광에서 영등포와 인천 공장지대에 석탄을 공급하기 위한 철도였습니다. 1929년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마포 구간과 왕십리 구간으로 분리되었지만 이름은 용산선이었습니다.

 

▲ 옥수역에 내리고 타는 승객들
ⓒ2006 이정근
암울했던 일제시대.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남산공원이나 삼청공원을 걷던 이 땅의 선남선녀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데이트 코스였습니다.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을 지나 왕십리까지 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환상의 길이었습니다. 연결해서 청량리 의정부 동두천 연천을 지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꿈의 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한남대교를 비롯한 5개의 다리가 걸쳐 있고 나란히 가는 강북강변도로가 경관을 해치고 있지만 탁 트인 한강과 강 건너 반포에 펼쳐진 갈대밭. 강남 구릉에 이어진 호박밭과 배밭 과수원을 바라보며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그 시절 청춘소설에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자동차가 많이 보급된 현대의 연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휘리릭 교외로 빠져나가지만 1950년대 말까지 젊은 연인들이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서울역에서 교외선 기차를 타고 신촌역을 지나 백마, 송추, 일영으로 나갔던 세대가 있었고 다음 세대들은 통기타 하나 달랑 매고 강촌으로 가는 경춘선 열차를 많이 탔습니다. 모두가 추억 어린 철길입니다.

 

▲ 중앙선 표지판
ⓒ2006 이정근
종점이자 시발점인 용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기차길옆 오막살이~' 노랫말처럼 지붕이 야트막한 동네를 지날 무렵 순간적으로 조명등도 꺼지고 조용해집니다. 승객들도 숨이 멎는 듯합니다. 좋은 곳을 보여주기 위한 예비 동작이려려니 생각하지만 전철 구간과 지하철 구간의 변전 때문에 무동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동부 이촌동에 밀집한 아파트 숲을 헤집고 새로 이전한 국립박물관이 있는 서빙고역을 벗어나면 한강을 마주합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미군 막사가 눈에 거슬리지만 꽉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입니다. 강 건너 관악산이 가슴에 안기듯이 다가옵니다. 철길 아래 한강변에 마련한 자전거 길에서는 조깅하는 사람과 자전거 타는 시민들이 운동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서빙고역 벗어나면 한강과 관악산이 내 품에

 

▲ 잠수교에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06 이정근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가 있고 그 아래 아치형 교각 사이로 유람선이 지나갑니다. 강가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찌를 보지 않고 지나는 전철을 바라봅니다. 한강과 철길 사이에 우람한 고목나무가 서 있습니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노거수입니다.

540년 전이라 하면 세조 12년으로 칠삭둥이 한명회가 수양대군의 장자방이 되어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후입니다. 궁지기에서 '비서실장'이 된 한명회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말없이 서 있는 저 나무는 한강의 모레 섬에 압구정(狎鷗亭)을 지어놓고 유유자적했던 한명회(四友堂)를 지켜봤을 것입니다.

 

▲ 응봉산 아래 한강변을 달리는 전철
ⓒ2006 이정근
지금이야 개발광풍 때문에 훼손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한남, 옥수, 응봉으로 이어지는 한강변은 한강 절경중의 절경이었습니다. 때문에 장안의 내로라 하는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며 일반 백성들도 야유 장소라면 으뜸으로 치던 곳입니다.

진안대군이 유하정을 지어 만년을 보냈으며 연산군이 황하정을 짓고 한강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또한 중종 때 간신 김안로는 보락당이라는 별장을 지어놓고 호사를 부렸던 곳이 두모포(豆毛浦)입니다.

 

▲ 동호대교
ⓒ2006 이정근
남한강 물과 북한강 물이 합수되는 두물머리(양수리)가 그러하듯이 두모포는 한강물과 중랑천 물이 합수되는 지점을 이르는 말입니다. 본디 두뭇개라고 불리던 두모포는 두 개의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두물개→두뭇개→두무포→두모포로 소리 빌림 된 지명입니다.

용산→청량리, 붉은 빛 물들어가는 한강물에 '황홀'

 

▲ 두모포에서 바라본 한강의 노을
ⓒ2006 이정근
세종 원년(1419년) 5월에는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하여 이종무 장군이 임금의 환송을 받으며 발진했던 곳이며 남한강을 타고 내려오는 강원도와 경상도 세곡선이 집결하는 나루터였습니다. 마포 삼개나루터가 서호라 불리며 경강상인들의 본거지라면 두모포는 동호라 불리며 한강상인들의 주 무대였습니다.

한강진이 군항이었다면 두모포는 상업항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장물로 폭리를 취하던 삼개 나루터 객주를 유인하여 매수한 포졸을 앞세우고 골탕을 먹이던 장소가 두모포입니다.

두모포(豆毛浦)에는 정사에 지친 선비들이 심신을 충전하던 독서당이 있었고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는 달맞이의 명소였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 위에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용산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전철 길은 낮에도 훌륭하지만 야경은 더욱 좋습니다. 한강물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전철 길이 바로 이곳입니다.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할 때 이 길을 지나보세요. 가슴이 후련할 것입니다. 행운이 함께 한다면 아름다운 노을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붉은 빛 노을이 물들어 가는 한강물은 황홀하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