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프라하는 더 행복해졌을까?

피나얀 2006. 9. 1. 20:42

 

출처-[오마이뉴스 2006-09-01 12:35]

 

 

▲ 체코의 수도 프라하와 전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 전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성과 건물을 지니고 있는 프라하가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은 국민총생산의 6퍼센트로, 총 수출액의 10 퍼센트에 달한다.
ⓒ2006 강인규
오늘 그녀를 만난다. 꼭 13년 만이다. 나는 기차가 멎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역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간다. 햇살이 눈부시다. 오랜만에 옛 사랑을 만나는 연인의 마음은 상대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어리석은 바람이 또 있을까.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아니,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다. 오래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밀짚모자를 수줍게 눌러쓰고 앉아 있었다. 긴 머리 사이로 드러난 화장기 없는 뺨에 반했던 나는 짙은 (하지만 경박하지 않은) 화장에 화려한 옷을 입고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녀의 새로운 차림이 어울리지 않아서도 아니고, 변한 모습이 실망스러워서도 아니다. 그래, 이제 그녀는 나와 같은 '촌놈'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분이 되었다는 당혹감이었을 것이다. 긴 속눈썹 아래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프라하가 입을 연다.

"이제 난 부자야. 뭐든지 사 줄 수 있어. 말만 해."

 

▲ 프라하의 시내 중심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적 개혁은 프라하를 서구 어느 도시에 못지 않은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다. 프라하 시민의 평균소득은 유럽연합 평균의 1.5배에 이르지만 점차 커가는 빈부격차와 높은 실업률은 체코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2006 강인규
13년 만에 프라하를 찾았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박'으로 막 분리된 1993년이었다. 당시 체코는 사회주의국가들의 교역시장이 침체에 빠짐에 따라 서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충격요법'에 따라 서구자본주의의 중력권에 막 진입한 상태였다.

동공이 활짝 열린 눈동자 속으로 활기 넘치는 거리가 들어왔다. 모델처럼 화사하게 차려 입은 남녀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도로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상점가의 진열창에는 가격표를 보지 않아도 가격이 짐작될 만한 (다시 말해 짐작할 수 없는 가격의) 화려한 물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 찰스다리 위의 거리화가. 일부는 사진을 찍을 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2006 강인규
옛사랑 그녀의 노랫소리가 비싸졌다

내가 그토록 체코를 사랑하는 것은 도시에 흘러 넘치는 (따라서 값싼) 음악 때문이다. 나는 숙소에 짐을 던져 놓고는 황홀한 추억이 담긴 시민회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공연장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그 앞에 늘어선 호객인들에게 팔을 붙잡혔다.

땀에 찌든 청바지에 면셔츠를 걸치고 낡은 운동모자를 눌러 쓴 이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공연표를 팔고 있었다. 이들로부터 전단을 받아들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대로변에서 경쟁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전에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가격대였기 때문이다.

 

▲ 프라하의 대표적인 공연시설 가운데 하나인 시민회관과 내부의 스메타나홀.
ⓒ2006 강인규
분명히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메뉴' 하나를 살 가격으로 체코 필하모니의 공연을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당시에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값비싼 공연이 없던 것은 아니나, 그것조차 이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처음 체코에 왔을 때, 너무 싼 공연가격에 놀라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돌아온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체코는 문화활동을 일종의 '복지혜택'으로 간주한다. 국민들이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 공연가격을 낮게 측정해도 공연단체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가 보상을 해 주는 것이다."

지금 프라하에서 맥도날드의 세트메뉴가 99코루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5000원 정도에 공연을 즐겼던 셈이다. 좌석에 따라 차등적인 가격을 받는 일도 없었다.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면 남들보다 먼저 공연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됐다. 그야말로 '능력에 따라 구입하고, 열정에 따라 좌석배치를 받는' 가격체계였던 셈이다.

휴식도 없이 진행되는 한 시간짜리 공연

나는 과거에 공연장의 대부분을 채운 백발의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행복해 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의 전단에는 '좋은 좌석'이 1300코루나, 가장 싼 뒤쪽 좌석이 700코루나였다. "다른 곳 가격을 알아보고 오겠다"고 말하며 돌아서자, 등 뒤에서 "학생이면 600코루나로 해주겠다"고 미끼를 던진다. 나는 반나절동안 음악회 가격을 물으며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 길거리에 호객행위를 하는 공연외판원들. 자본주의의 영향은 체코의 공연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
ⓒ2006 강인규
한참이 지나서 나는 그 600코루나짜리 표를 사러 되돌아 와야 했고, 얼굴이 갈색을 탄 그 운동모자 아저씨는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가벼운 한숨을 쉬며 600코루나를 내밀자, 그는 나를 공연장 계단 앞의 작은 사무실로 데려간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졸고 있던 '보스'와 무슨 말을 주고 받더니 내가 낸 돈 가운데 500코루나를 보스에게 건네고, 100코루나는 자기 주머니 속에 찔러 넣는다.

손님을 한 명씩 데려올 때마다 100코루나를 받는 모양이었다. 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오자 극장에서 고용한 예닐곱의 '영업사원'들이 관광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중에서 일부는 고전적인 의상을 갖추고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공연이 시작된 후에 밝혀졌다. 공연이 한 시간(정확히는 50분)짜리였다는 것을 나중에 안 것이다.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등 체코인들에게는 숨쉬는 것과 같이 익숙한 곡들이었기 때문에 연주는 훌륭했다. 그러나 쉬는 시간도 없이 한 시간 안에 공연을 서둘러 끝내는 연주단을 보면서 체코가 13년 만에 자본주의 공부를 단단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연포스터와 함께 붙어있는 "공산주의 박물관" 광고와 레닌의 이미지를 패러디한 포스터.
ⓒ2006 강인규
음악회 후 구두를 자갈 도로 위에 끌며 걷고 있자니 음악회 안내전단과 함께 벽에 붙어 있는 '공산주의 박물관(Museum of Communism)'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전단 아래 쪽에는 '맥도날드 매장 근처에 있다'는 자상한 위치설명이 달려 있다.

이 박물관의 존재는 이제는 더 이상 '옛날의 그녀가 아닌' 프라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박물관이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의 변화를 되새기 위해서가 아니라 맥도날드(그리고 음학회)처럼 팔기 위한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프라하는 더 행복해졌을까

체코는 13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경제 규모가 작아 총생산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만, 1인당 총생산은 2만불에 가까와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로 편입된 후 소득격차와 실업률이 크게 늘어 프라하 시민들의 소득은 다른 지역의 두 배가 넘으며, 실업률은 1990년대 완전고용상태에서 서서히 증가해 현재는 10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2006 강인규
며칠 뒤 프라하 이외의 다른 곳을 더 둘러보기 위해 브르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움직인 후 얼마 되지 않아 프라하의 화려함은 한적한 농촌의 풍경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검표사가 기차표를 확인한 후 다음 칸으로 건너갈 때, 기차는 인적이 드문 낡은 농가를 지나고 있었다. 얼마 후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표사가 화장실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검표사는 빨리 나오라고 다그치는 듯했고, 안에서는 불안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실랑이가 오가고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몇 자례 더 들린 후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아마도 여자가 표를 사지 않고 기차를 탄 모양이다.

머리를 붉게 물들인 여자였다. 배가 많이 부른 것으로 보아 임신 말기인 듯 했다. 검표사가 거친 목소리로 여자를 다그치자 여자는 주머니 속의 동전 몇 푼을 모두 그에게 내놓는다. 검표사는 다음 역에서 여자를 내려놓았다. 기차는 그 여자를 뒤로 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점차 멀어져가는 프라하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13년, 프라하는 더 행복해졌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그녀는 변함없는 내 사랑이므로.


덧붙이는 글
강인규 기자는 지난 6월 24일부터 27일까지 프라하에 머물렀습니다.


기자소개 : 강인규 기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같은 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기호학으로 세상 읽기> (소명/공저)와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문학과 경계/공저)가 있다.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