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저출산, 묘수가 없다

피나얀 2006. 9. 14. 05:31

 

출처-[경향신문 2006-09-13 15:39]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잘 살아보세’ 의 한 장면. 산아제한시대의 해프닝을 그려 우리 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를 보여준다. <사진제공/굿플레이어>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란 구호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결혼과 자녀 출산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로 변하는 데 단 한 세대가 흘렀다.

 

최근 정부의 저출산 대책과 그에 따른 출산 촉구 분위기는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작게는 자녀 없는 맞벌이 가정에 세제상 불이익을 준다는 불만으로부터 크게는 여자가 국가의 요구에 따라 애 낳는 기계냐는 항변까지…. 한 세대 전 아이를 적게 낳으라는 국가 시책에 부응했던 여성과 가족은 획기적으로 변했다. 국가의 가족계획 시책도 이에 맞춰 유연화됐지만 상대적으로 국민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저출산 대책에 여러가지 목소리가 얹히는 건 이 때문이다.

 

#여자가 아이 낳는 기계인가요?

 

2005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08명. 홍콩(0.94명)에 이어 두번째 저출산 국가이며 이 추세대로라면 2018년 고령사회(노인비율 14%)에 접어들고 2020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 이런 위기의식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인 ‘새로마지 2010’(오른쪽 기사 참조)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지난 7월 확정된 이 계획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별로 구체적인 실행일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같은 로드맵을 놓고 여성계는 세 갈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 ‘출산이 애국’이라고 주장하는 이 단체는 출산 및 건강가정 운동을 주요 사업으로 정하고 “출산의 주체로서 여성들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내용의 캠페인 및 회원단체 지도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는 직접적인 출산율 제고보다 출산을 저해하는 사회환경을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공립 보육시설을 2010년까지 이용아동 대비 30%로 늘리고, 취학전 아동의 보육정책에 초점이 맞춰진 기본계획을 개선해 취학후 아동 양육비용까지 지원하라고 주장한다. 육아휴직 중 일부를 아버지가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아버지 육아휴직 할당제’ 도입도 제안해놓고 있다.

 

한편 영페미니스트 그룹은 저출산 대책 자체에 의혹의 눈길을 던진다. 국가·사회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관리하는 것은 독재시대의 잔재라는 것이다. 백영경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출산율 저하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우려하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의 증가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며 “한국에서 태어나는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앞으로 한반도에 산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무조건 저출산 위기의식을 조장하기보다 위기담론에 깔린 전제를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엄마·아빠·자녀 셋인 가정이 최고인가요?

 

싱글맘이나 재혼가정, 동성애 커플, 계약동거 등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결혼과 가정이 등장했다. 이들은 일부일처제 결혼에 기반한 정상가족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편부편모나 의부의모에 대한 편견 등의 사회적 관습과 싸우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는 건강한 가정’을 상정한 출산 캠페인은 정상결혼에 의한 부모와 자녀라는 이상적 그림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비혼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진보간 갈등이 첨예하다. 여협은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발의한 ‘가족지원기본법’과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이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들 법안이 혼인 없이 동거하는 사실혼의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저출산 문제를 겪은 유럽의 경우 프랑스·스웨덴·덴마크 등 상대적 고출산 국가들은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상대적 저출산 국가에 비해 가부장제의 구속력이 느슨하고 비혼가정에 대해 관대하다. 이 때문에 저출산 대책의 성공 여부는 사실혼의 법적 인정 여부와 무관하지 않다.

 

#돈 준다고 아기 낳나요?

 

직접적 지원에 대한 논란도 많다. 저출산의 경우 ‘인간은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공식은 깨진다. 몇백만원의 지원으로는 꿈쩍하지 않을 만큼 양육비와 사교육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 역시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다.

 

보건복지부가 성인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있으면 아이를 더 낳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불과 2.7%만이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47.5%는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많은 재원을 투입하더라도 중산층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상대적으로 적다.

 

재정지원을 계속 확대할 경우 늘어나는 세부담도 큰 문제가 된다. 인구감소가 사회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이 낳지 않는 사람의 돈을 거둬 아이 낳는 사람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출산장려정책이 아니라 출산을 선택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고 충고한다.

 

#형평성 어긋나는 건 어떡하지요?

 

재정경제부의 세제개편안에 따라 가족수가 적어 그동안 소수공제자 혜택을 받던 근로자 4백30여만명이 내년부터는 추가공제를 받지 못한다. 1인 가구나 무자녀 가구의 세부담을 늘리고 다자녀 가구에 공제혜택을 줘 출산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자들은 “정부가 먹고살기 바빠 아이를 안갖거나 늦게 갖는 추세를 고려하지 않고 이런 제도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제도적 강제로는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저출산대책 가운데 ‘몇년 몇월 이후 태어난 셋째 아이에 대해 지원금을 준다’는 형식의 지원제도 역시 수정돼야 한다. 첫째든 셋째든 저출산시대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에 진정한 가치를 두는 가정친화적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